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희 Dec 07. 2022

뇌절도 이만하면 예술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후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직 관람하지 않으신 분은 읽지 않기를 권합니다.


몇 년 새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들이 많이 줄어들면서 영화관을 확실히 덜 가게 됐다. 개봉작 수가 회복되고 있는 요즘에도 드라마든 영화든 영상을 집에서 보는 게 익숙해져서 사실 주요작이 나왔을 때 말고는 영화관에 잘 가지 않았다. 이 영화도 북미 개봉을 한지는 좀 됐는데 한국엔 VOD 출시가 아직이어서 영화관에서 봤는데, 보고 나니 첫 관람은 꼭 극장에서 하는 게 좋겠다! 싶을 정도로 일종의 경험에 가까운 관람을 했다.


이 영화의 기반에는 인류를 향한 애정 어린 시선이 있다.

내러티브 안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이 영화는 사람들과 그간의 상호작용을 다뤄내는 데 진심이다. 갈등 상황에서 열쇠가 되었던 메시지도 서로를 향해 친절하라는 것이었고, 오프닝은 사건이 벌어지기 전 세 주인공의 화목한 한때를 들여다보는 장면이다. 친절함은 굉장히 적극적인 행위이다. 그저 모든 일에 온화하게 구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 현실에 발생하는 문제에 눈을 감고 그저 고운 말을 쓰는 것보다 거칠게라도 연민하고 나서는 게 친절함이라고 생각한다.


A24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질문의 궁극적인 해답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SF적인 뇌절을 늘어놓는다. 영화를 보면서 더글라스 애덤스 냄새가 폴폴 난다고 생각했는데, 끝나고 찾아보니 초반 빨래방에서 눈알이 붙어 있던 빨랫감의 접수번호 42번이 일종의 오마주이지 않을까 싶다는 분석이 있었다. 42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영화/소설에 나오는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질문의 궁극적인 해답'으로 등장하는 수이다. 아주 발전한 외계 인류가 초월할 수 없는 슈퍼컴퓨터를 만들어서 몇 백만 년 동안 계산한 것인데, 당연히 그 외계 인류는 컴퓨터의 답을 듣고 굉장히 황당해했다. 슈퍼컴퓨터는 왜냐고 묻는 외계인들에게 '제대로 된 질문을 한 적이 없는데 왜인지 어떻게 알겠냐'며 질문은 자신이 계산할 수 없으니, 그 질문을 계산할 수 있는 다른 컴퓨터를 설계해주겠다고 하고 그 컴퓨터가 바로 지구와 인류였다는 설정으로 이어진다.

해답은 달랐지만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둘 모두 영화 속 이야기가 삶의 답을 찾는 여정이고, 그 답은 결국 사람에 있었다는 점에서 같다. 그런 의미에서는 이 영화가 더글라스 애덤스의 미완결된 시리즈에 최종적인 답을 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더글라스 애덤스는 소설 후속작을 쓰던 중 러닝머신에서 갑자기 닥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일부 SF 팬들은 외계로 돌아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금색 큰 머리가 42를 계산한 컴퓨터이다 | Walt Disney Studio Motion Pictures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