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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라양 Jul 16. 2022

퇴사를 위한 시간, 3개월

회사 입장에서 제일 가성비가 좋은 직급

입사한 지 2-3년이 넘은 주임에서 대리급까지가 일을 제일 많이 하는 직급이다.


특히 고객 플라자에서 많은 고객을 응대해야 하는

텔러라는 직급은 3년은 넘어야 모든 업무처리를 완벽하게 할 수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입사한 지 6년 차

퇴사라는 단어를 팀장님에게 뱉자마자 그 이후로 난 매일 다른 사람과 면담을 해야만 했고


"회사에 대한 불만사항이 있니?"

"왜 퇴사를 하고 싶은 거야?"

"다른 회사로 이직이 결정된 거니?"

"원하는 바를 말해봐, 다른 곳으로 발령을 내줄까?


공통적인 위의 질문사항에 답하고 난 뒤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어요. 전공을 살려서 여행사 오퍼레이터로 이직해보려고요"

이렇게 답하고 나면 여행사에 대한 본인들이 알고 있는 안 좋은 점을 최대한 나열하기 시작했다.


"여행사가 얼마나 일하기 힘든 회사인지 알고 하는 소리인 거야? 연봉은 지금보다 반 정도가 줄어들 거고 업무가 너무 많아서 매일매일 야근만 하게 될 거야!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다고? 여행은 휴가 때 돈 쓰고 다녀야 재미있는 거지 막상 밥벌이가 되면 더 이상 좋아하는 일이 아니게 된다?"


그 당시에는 너무도 듣기 싫은 말이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난 이미 여행사에 입사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상태였고, 어떠한 말도 내 귀엔 들어오지 않았으리라


내가 속한 지점의 팀장을 거쳐, 센터의 차장 그리고 부장까지 거쳐가며

면담을 하고 또 하고 매일매일 면담의 연속이었다


"텔러 직군은 사람 구하기 힘든 거 너도 알잖아. 이렇게 갑자기 관둬버리면 남은 사람들이 힘들지 않을까?"


초반에는 여행사에 대한 우려와 나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채웠던 면담은 사람을 구하기 힘들고, 남은 사람들이 힘들 테니 네가 마음을 바꿔주면 좋겠다 라는 내용으로 변경되었다.


솔직히 관두면 나하고 상관도 없는 일인데, 왜 그걸 나에게 말하느냐라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떠나는 마지막의 내 모습을 그렇게 남기고 싶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미소를 입에 걸고 나의 의견을 밀고 나갔다.


"19살에 입사해서 지금까지 텔러 업무만 했어요, 물론 여기 있으면 안정적이고 연봉도 올라가고 편하겠지만 한 가지 업무만 하면서 첫 직장에서 있으면 나중에 제 자신을 돌아봤을 때 실망스러울 거 같아요. 어느 정도 리스크가 있더라도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딱 봐도 험난한 길이지 않니? 네가 걱정스러워서 그래. 한번 퇴사하면 재입사도 안되는 거 알잖아"


재입사할 일 없습니다

라는 말을 뱉고 싶었지만 또 참아가며


"이제 제 나이 24살이에요, 험난한 길이지만 이미 해보고 싶어 졌고 걱정해주시는 마음도 너무 감사하지만 제 마음은 이미 결정했어요. 죄송합니다"


이 말을 끝으로 한 달간의 면담은 종료되었고 사람을 구하는 기간 2달만 더 근무하기로 협의한 끝에 퇴사를 확정 지을 수 있었다. 퇴사라는 말을 뱉고 3개월 뒤면 난 드디어 탈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퇴사


2년 차가 된 시점부터 종종 이런 기분을 느끼곤 했다.

출구가 없는 어둡고 긴 통로에 갇혀서 탈출도 꿈꾸지 못한 채 그냥 가만히 서있는 느낌


첫 직장이라 퇴사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도 컸고,

대기업에 입사한 딸을 바라보며 뿌듯해하시는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으며, 회사 이름을 이야기하면 부러워해주는 친구들의 시선도 나름 좋았다.


그렇지만 이제는 진짜 떠나고 싶어 졌고, 퇴사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고 나서야 나는 자유인이 될 수 있었다.

퇴사가 확정되면 훨훨 날아가고 싶은 기분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덤덤하고 아무렇지 않았다.


내가 정말 이곳을 떠나는구나.


선배와 동기, 후배들의 부러움과 걱정이 뒤엉킨 시선을 받으며 남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서 일했고, 퇴사하는 날까지도 플라자에서 고객응대를 한 끝에야 난 이곳에서 퇴사할 수 있었다.


송별회를 하고 작별인사를 하는데 눈물도 찔끔 났던 것 같다.

싫었던 만큼 정도 많이 들었던 이곳 나의 번째 직장.


신입사원 장기자랑부터 워크숍, 나에게 업무처리를 받고 스쳐 지나간 수많은 고객들

첫 발령지 성남에서부터 영등포를 거쳐 당산 사옥까지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모두들 건강하시고 자주 놀러 올게요! 연락드리겠습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긴 채 그렇게 나는 퇴사하였다.


안녕 안녕

이제 진짜 안녕


그리고 새롭게 다가올 내 인생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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