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불행한 일이 좋은 사람들에게 생길 수 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2 드라마에서 좋아하는 대사 중 하나이다.
힘들게 생긴 아이를 잃은 산모에게 양석형 교수가 건넨 위로의 말
인상 깊었던 이 대사가 나에게도 일어나고 말았다.
회사에서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하고 신혼집 대신 친정에서의 하룻밤을 택한 나에게 엄마가 다가왔다.
"엄마, 유방암 2기래"
"응? 지금... 뭐라고?"
"건강검진 결과 나왔는데 2기라네, 수술해야 한대"
평생을 건강에 자신 있던 엄마였는데,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걸까?
TV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의 엄마가 이런 대사를 치면 기다렸다는 듯이 주인공이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데
이상하게 나의 눈에선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게 아닌가
엄마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덤덤하게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동네 병원 건강검진 결과에서 의사가 큰 병원을 가보시라고 제안한 것을 시작으로, 대학병원에서 접수하고 조직검사를 받은 일, 그리고 2기로 확진되어 수술 날짜를 잡은 이야기까지.
"다른 집 딸들은 이럴 때 엄마랑 껴안고 대성통곡을 한다는데, 우리 딸은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네"
약간은 섭섭한 듯 눈을 흘기는 엄마를 앞에 두고 어색한 듯 웃어 보였다.
왜 이렇게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일까
마치 TV에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것 마냥 아무 느낌이 나지 않았고 그저 머리가 멍할 뿐이었다.
다음 날 퇴근 후 신혼집으로 돌아가, 남편에게 이야기하려고 입을 떼는 순간 그제야 실감이 나는 게 아닌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가난한 아빠에게 시집와서 평생을 아끼며 살아왔던 우리 엄마
작은 일에도 소소하게 행복을 느끼며 매 순간을 긍정적으로 살아왔고, 손해 보더라도 남에게 싫은 소리도 잘 못하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소녀 같은 우리 엄마
왜 이렇게 불행한 일이 우리 엄마에게 생긴 걸까?
나쁜 사람들도 잘만 살던데 하필 우리에게 불행한 일이 찾아온 걸까
억울했다.
억울하지만 그 누구에게 이 억울함을 토로할 수 있을까
불행한 일은 언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거니까
그저 수술을 끝내고 항암치료를 앞두고 있는 나의 엄마가 조금만 더 힘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이번에 불행한 일이 찾아왔으니, 언젠가 또 좋은 일이 올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지금을 버텨내 본다. 이렇게 또 하루하루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