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힘인지 약의 힘인지 몰라도,
어느새 머리 속으로부터 빠져나와 있습니다.
눈은 내 몸 밖을 보라고 있는 것인데
머리 속 세상에서 실재하지 않는 것들을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바깥 세상을 보고 있음을
시간이 꽤 지나서야 깨달은 것 같습니다.
밖을 보고 있다고 착각한 것은 아닌가 걱정도 했는데
확실히 착각은 아닌 듯 합니다.
요즘 유정이 생각을 안 하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얼굴도 모르는 딸내미
마음 속에서 같이 살았다고 착각해 봤자 나만 힘든 걸
예전엔 퇴근하고 집에 와 아내 얼굴을 보면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리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아마 꿈 속에 빨려들어가지 않게 잡아준 아내 덕분에
지금 이렇게 정신차리고 살 수 있겠지요.
다음 주에 팀에 신입이 옵니다.
이름이 유정이입니다.
몇 번을 들어도 기억에 안 남아서
신입 이름이 뭐라고? 하고 몇 번을 물었습니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이름이었는데 어째서 귀에 안 들어온 걸까
머리 속 다른 세상에서 부르던 이름이라
현실에서는 그렇게 어색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곧 휴양림으로 휴가를 갑니다.
아내와 같이 맛있는 것도 먹고
또 몇 시간씩 물멍 풀멍 하다 올 생각입니다.
내가 이제 현실을 살고 있음을
분명하게 눈에 새기고 올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