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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유정 Dec 14. 2022

마침표

한 달 후면 결혼기념일입니다. 12주년입니다. 한 갑자는 멀었지만 한 간지는 돌았습니다. 세월 참 빠릅니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대체로 순탄했습니다. 잘못은 내가 하고 참는 건 아내가 하니 그랬을 것입니다. 환경이 박하지 않았던 것은 복입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우리의 결혼 일기는 계속되지만, 난임 일기는 지난 주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호르몬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기 위해, 앞으로의 건강을 위해 불임 시술을 했습니다. 조그만 칩을 몸에 심자 지나온 세월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느껴집니다. 아이를 갖는 것은 그렇게 힘들었는데, 아이를 포기하는 것은 이렇게 간단하구나. 쉽구나. 빠르구나.


마음은 나도 모르는 새 정리되어 있었나 봅니다. 항우울제 용량을 크게 줄였는데도 눈물이 안 났습니다. 아내의 건강의 댓가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내 마누라, 한 명만이 제일 소중했습니다. 모르는 얼굴을 어찌 잊나 싶지만, 어쨌든 유정이 얼굴은 잊었습니다.




내게 브런치는 글을 쓰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앞으로 더 올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사람에 관한 얘기와 개똥철학을 재미있게 들어 주던 아내는, 그동안 했던 얘기들을 써 보라고 했습니다. 알았다고는 했지만 이상하게 손이 안 나갑니다.


사실 가장 최근에 발행한 글, ‘아는 사람’은 아주 오래 전에 가시가 돋쳐 홧김에 쓴 글입니다. 브런치가 마냥 포근한 곳이라고 착각하던 와중에 생긴 일이라 더 그랬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발행하지 않으려 했는데, 일단 저것부터 발행해놓고 다음에 더 써야지, 하고 덜컥 발행을 했습니다. 역시 보기 좋은 글은 아닙니다. 남 욕은 피곤하고 지칩니다. 나까지 굳이 하나 보탤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미 썼으니 앞으로 나 챙피하라고 지우지 않고 놔두기로 합니다.




누구에게 작별인사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웬지 인사처럼 써야 할 것 같습니다. 단어가 별로 떠오르지 않습니다. 음...... 세상의 많은 난임 부부들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애 키우기 힘든 세상이라지만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선배는 먼저 갑니다. 졸업식이 없어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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