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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린 Aug 26. 2023

오늘을 사는 이름없는 영웅들 기억하시나요?

<하얼빈>을 읽고서

얼마전 광복절을 보내면서 목사님께서 주신 책을 꺼내보았다. 『하얼빈』이였다. 이책으로 인해 한 사건에 대해 두 인물의 시각 차이를 확인하며 역사는 누구의 시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의 차이가 발생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환상 속의 인물이 아닌 인간 안중근, 청년 안중근, 이토를 죽인 안중근은 어떤 사람이었는가에 대해 이 책은 답한다. 개인적으로 김훈 작가님의 책을 좋아하는데 이 책 역시 반복해 곱씹어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담백하고 정갈한 문체는 읽을 때 피로함이 없다. 나는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펴보는 법이 잘 없다. 그러나 하얼빈, 이 책은 특별하다. 선과 악 따위의 진부한 풀이로 역사를 담지 않았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두 인물의 인간성을 조명하고자 했다. 안중근 의사에 대한 존경과 감사, 마음에 품어온 감동, 그리고 역사 시간에 학교에서 배운 그의 업적은 늘 추상적이었다. 그러나 하얼빈을 읽고 어렴풋하게 남아있던 감동의 형체가 조금씩 선명해졌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중근이 이토를 죽이기로 마음 먹은 이유를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설 중 이런 문장이 있다.


 
  이토의 육신에 목숨이 붙어서 작동하고 있는 사태를 견딜 수 없어하는 자신의 마음이 견디기 힘들었다. 이토의 목숨을 죽여서 없앤다기보다는, 이토가 살아서 이 세상을 휘젓고 돌아다니지 않도록 이토의 존재를 소거하는 것이 자신의 마음이 가리키는 바라고 안중근은 생각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안중근이 원한 것은 이토의 '작동'을 중지시키는 것이었다는 점이다. 그가 '작동'하는 세계가 계속되는 것을 묵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즉, 개인적인 원한이 아니라 그의 ‘작동’에 의해 더는 세상이 어지러이 되지 않도록 막기 위해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려고 마음 먹었던 것이다. 안중근은 법정에 서길 원했다. 세상에, 전 세계에 왜 한국인 안중근이 일본인 이토 히로부미를 죽여야 했는지에 대해 말할 발언권을 얻기를 누구보다 바랬다. 단순히 이토를 죽이는 것이 안중근의 목표가 아니었다. 안중근은 한국의 슬픔, 한국의 고통, 이토가 만든 무질서에 대해 만국 모든 이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소설을 읽고 작품 해설까지 꼼꼼하게 읽는 가운데 새로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작품 해설에서 설명하길 안중근 거사 후 80년간 한국 천주교회는 안중근의 거사를 정당화하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교리상 살인은 용납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고, 꽤 충격이었다. 누가 안중근을 정죄할 수 있다는 말인가. 꽤 흥미로운 주제였다. 신앙의 교리와 현실이 충돌할 때 신은 무엇이 선이라고 이르실까. 분명한 것은 우리는 누구도 신이 아니기에, 안중근이 이토를 살해한 것에 대해 감히 정죄할 수 없음이다. 정죄의 대상으로 그를 떠올려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이 부분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그 후 생각을 정리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지점이었다. 평소에 안중근이라는 위인은 존경의 대상이었을 뿐, 그가 살던 시대에 영웅이 아닌 죄인으로 비난 당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인간 안중근을 둘러싼 당시 사회의 시선은 어떤 것이었는지 하얼빈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기억에 남는 구절이 정말 많지만 그 중에서도 마음이 울린 문장이 있다. 안중근의 말이다.


  제가 이토의 목숨을 없앤 것은 죄일 수 있겠지만, 이토의 작용을 없앤 것은 죄가 아닐 것입니다. 제가 재판에서 이토를 죽인 까닭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저의 복이고, 이토가 살아 있을 때 이토에게 말하지 못한 것은 저의 불운입니다. 신부님.


 


 이토를 죽인 것과, 그의 작용을 멈춘 것은 별개다. 그는 세상에 말하기 위해 이토를 죽였다. 왜 그가 이토를 죽이는지 세상이 듣고 알기를 안중근은 원했다. 하얼빈은 위인 안중근을 청년 안중근, 인간 안중근으로 생각하게 한 깨끗한 문체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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