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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u pire May 23. 2023

분석가의 기다림

분석가의 욕망, 그것은 얻으려 해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불가능함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얻으려 한다고 함은, 요구한다는 뜻이다. 요구란 어떤 현실적 사물을 원한다는 뜻이다.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원한다. 외로울 때는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원한다. 몸이 피곤하면, 자양강장제나 그도 아니면 술이나, 휴식을 원한다. 이 모든 요구들은 여건만 된다면 해결이 가능한 것들이다. 그런데 욕망은 그와 다르다. 


배가 고파서 밥을 허겁지겁 먹는다. 그럼에도 해소되지 않은 무언가가 남는다. 타인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더라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무언가가 남는다. 몸의 피곤함을 해소하려고 꿀잠을 자보아도, 술을 마셔보아도 여전히 무언가가 해소되지 않는다. 이렇게 남아있는 것, 잔여물이 바로 결핍과 연결되어 있는 주체성 그 자체이다. 


욕망은 결핍된 대상을 추구한다. 주체는,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욕망의 대상을 향해 행동할 때 출현하는 무언가를 뜻한다. 이처럼 주체의 출현은 갑작스러운 것이다. 요구하는 자아와는 다르다. 주체는 욕망의 주체이며, 무의식의 주체이다. 분석가는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분석가의 욕망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분석가는 무엇을 욕망해야만 분석가일 수 있는가? 

분석가는 공백을 욕망해야만 한다. 텅 비어있는 것으로서의 진리, 그러한 공백을 욕망하기를 기다림으로써, 분석가는 분석가일 수 있다. 그렇다고 분석가가 어떤 초월적인 존재인 것은 아니다. 분석가는 다만 공백을 욕망할 뿐이다. 그것은 언어로 지칭될 수 없는, 불가능한 사건에 대한 욕망이다. 불가능, 무의미, 공백은 언어로 지칭될 수 없는 실재이며, 실재는 아주 작은 소리로 나타나므로, 그것을 언어로 포착하기란 불가능하다. 그것은 또한 실체가 아니라 사건이기 때문이다. 


분석과정에서, 분석의 주체인 내담자가 무엇을 결핍하고 있냐가 중요하다. 그 결핍의 지점이 그의 욕망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 내담자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내담자 안에서 재생되고 있는 타자의 목소리들이다. 그러므로 그 목소리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길도 여전히 내담자의 내밀한 지점에 있는 그의 무의식이며, 무의식으로서의 주체이다. 그 주체성이 온전히 회복되었을 때 그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러한 내적현실에 대한 깊은 깨달음, 스스로 가능한 이 작업에서 분석주체는 진리를 사건으로서 접하게 되고 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분석가가 기다리는 것은 이 사건이다. 불가능한 것으로서, 실재의, 무의식의 사건. 


불안, 머뭇거림, 갈팡질팡, 불신, 긴가민가함 등이 분석과정에서 끊임없이 반복된다. 확신을 가진 분석주체는 정신분석에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에 대해 모른다고 생각해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주체만이 무의식에 다가설 수 있는 것이다. 분석가는 침묵을 통해 구두점찍기를 도입하고, 그로 인해 내담자의 발화에서 중요한 점을 강조한다. 주체가 탐구할 수 있도록. 분석주체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미 진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분석가는 알고 있을 그 진리가 다시금 떠오를 수 있도록 침묵을 지킨다. 기다린다. 


분석가는 분석주체에게 욕망할 것을 강조한다. 무엇을 욕망하는가? 공백을 욕망할 것을. 무의식의 주체가 출현하기 위해서는, 분석가로부터 침묵이나 거절이라는 방식으로 공백이 선물되었을 때, 결핍의 지점이 드러났을 때, 거기서 언어화되지 않은 그것의 출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분석가는 그것을 기다려야 한다. 분석가는 공백을 욕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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