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에서 애도란 무엇인가? 어떤 소중한 존재가 상실되었을 때, 인간은 슬픔이라는 감정에 빠진다. 슬픔이란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서, 대부분의 문명인들은 슬픔을 회피하고 즐거움만 누리려고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상실이 없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다. 무엇이든 영원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인생에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상실을 애도의 과정을 통해 잘 떠나보내면 정신건강에 유익하다. 그러므로 좋은 애도란 인생에 더없이 필요한 하나의 과정이다. 상실된 것을 떠올리며, 그것(ça)을 언어화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잘 된 애도란 잘 이루어지는 언어화의 과정이다. 그이는 나에게 더없이 소중한 사람이었지... 충분히 이야기하면, 더 이상 그에게 대상투자가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 새로운 대상에게로 에너지가 이동하고, 애도가 잘 수행된다. 언어화, 상징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상실이란 필연적인 일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낼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할 때는 누구나 그것이 영원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영원한 것은 없다. 언젠가는 이별이 찾아오고, 그 이별은 상실이 된다. 그리고 그러한 상실은 슬픔이라는 감정을 불러온다. 여기서 애도의 작업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그 슬픔은 이내 우울이 된다. 상실된 것에 대해서 충분히 자기의 언어로 말해지지 못했을 때, 슬픔은 우울이 된다. 그 소중한 사람을 빼앗아간 세상이 증오스러워... 우울의 과정으로 나아가면, 자기 자신을 증오하게 된다. 우울증자는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증오한다. 우울증자는 상실의 과정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기 자신을 증오한다.
애도와 우울, 이 두 가지는 어느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일들이다. 특히 애도는 일상적으로도 많이 일어난다. 그래서 슬픔이라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래도 된다. 슬퍼해도 된다. 인생에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은 즐거움과 슬픔이 같이 공존하는, 그게 돌고 도는 것이다. 그게 정상적 과정이지만, 거기서 애도가 일어나지 않고 계속해서 하나의 것에만 집중할 경우, 그것이 증오로 고착되면 자기 자신을 미워하게 된다. 자기가 자기를 어떤 언어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애도냐, 우울이냐가 결정된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주체의 입장이 달라지는 것이다.
정신분석은 우울증자에 대해서 사물의 본모습을 바라본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우울증자는 대상의 본질에 대해서 꿰뚫어 본 사람들이다. 우리는 흔히 세상의 사물들이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여긴다. 무언가가 의미가 있다고 여긴다. 의미가 있다고 함은, 사물들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있다는 것이다. 없으면 의미가 없으니까. 있으니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헤겔의 대표적인 주석가이자 라캉의 친구이기도 한 코제브는 말한다. 있는 것은 사실 없는 것이다. 금반지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금과 구멍으로 구성되어 있다. 금이 있고, 그 금이 구멍이라는 요소를 둘레로 구조화되어 있는 것이 금반지이다. 금반지의 본질은 금과 공백이다. 공백을 중심으로 금을 테두리 쳐놓은 것이 금반지이다. 모든 사물의 본질은 공백이다. 없음이다.
그 없음에 대해서, 더없이 의미없음에 대해서 아무런 환상 없이 그대로 목격한 사람들이 우울증자이다. 그 의미없음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증오한다. 그 앞에서 인간이라는 주체는 더없이 나약하고 아무런 능력도 없는 금치산자일 뿐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누구보다도 더 증오한다. 그 증오감이 나날이 쌓여가 정교한 의미의 체계를 구성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을 누구보다도 증오해...
정신분석은 이러한 증오를 구성하고 있는 주체의 언어사용을 다시금 욕망할 수 있도록 길트임해주는 작업이다. 증오한다고 하는 것은, 대상에게 쏟아야 할 에너지가 자기 자신에게 집중투사되고 있음을 뜻한다. 이를 다시 새로운 대상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물론 이는 분석가가 해주는 것이 아니다. 분석가는 앞서 말했듯이 침묵이나 구두점찍기를 통해서, 다시 말하면 침묵과 해석을 통해서 분석수행자가 그것을 수행할 수 있도록 기다려준다.
분석가는 우울증자의 우울의 세계를 마음껏 말하라고 격려한다. 정신분석은 말하기 치료이다. 의미없음, 공백을 목격한 사람에게, 우울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그 사람에게 마음껏 말하라고 격려한다. 공백을 마음껏 말함으로써 언어화했을 때, 우울의 세계는 다른 것으로 구조화될 수 있다. 말하기를 통해서 지금껏 구성되었던 언어의 체계가 다르게 말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가 말했듯이, 정신분석은 일하고 사랑할 수 있게끔 한다. 그러기 위해서 분석수행자는 무의식이 욕망하고 있는 것을 말해야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마음껏 말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심리내적현실에 대해서, 진실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분석가는 분석수행자가 말하기를 기다린다. 무의식이 무엇을 욕망하고 있음을 말하기를 한없이 기다린다. 말하기를 기다리는 것, 인내가 분석가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한 기다림을 통해 분석수행자가 자기의 말을 시작하면 그때 주체가 드러나며 그 주체는 말하기의 주체가 되고, 이는 그가 자기 인생의 이야기를 건네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정신분석의 치료는 그 인생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시점과 더불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