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지방 여행 첫날이다. 나리타 호텔을 출발한 버스는 하코네로 향한다. 버스에 오르자 우리 두 부부를 너무 반가워하는 분이 있었다. 인천에서 출발한 부부. 단체여행에 합류하니 여자가 달랑 1명. 자기들은 부부 동반이었는데 단체 관광객 11명은 경기도 어느 초등학교의 남자동창들. 더구나 인솔 가이드도 젊은 청년. 13명의 남자와 청일점인 여자 1명. 아무리 나이 든 아줌마라고 해도 심리적으로 불편했다. 그러다가 우리 두 부부를 만났으니 여자가 3명. 너무 반가워한 이유였다. 여행을 하다 보면 늘 여자 여행객이 많은데, 이번엔 남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아 내심 걱정 되었다. 전날 술 한잔 걸치다 보면 기상이 어려울 수도 있고, 모이는 시간에 늦을 수도 있고. 이런 나의 선입견을 뒤로하고 버스는 풍경을 따라 흔들린다.
가이드에 따르면 창밖으로 후지산이 보이면 올 해는 말 그대로 행운이 가득한 것이란다. 낯선 여행객들에게 자태를 잘 보여주지 않는 후지산. 모두에게 로망인 명산. 요즈음은 오버 투어리즘으로 몸살을 앓고 하루 등산객의 숫자까지 제한한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여행객들이 오르고 싶어 하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다행히 우리 일행은 선명하게 그 자태를 눈에 담을 수 있었고, 사진으로도 근사한 컷 몇 개 건질 수 있었다.
도착한 하코네 국립공원. 내린 곳은 삼나무 숲의 입구. 숲은 쭉쭉 뻗은 나무기둥들 사이로 그림자를 드리우고 초록은 하늘로 오른다. 역시 숲의 초입에서 만나는 토리이. 그 주홍색의 선명함이 초록과 어울리며 낯선이 들을 반긴다. 피톤치드를 흠뻑 맞고 돌아 나오자 너른 호수가 펼쳐진다. 호수의 이름은 아시노 호(Lake Ashino). 후지산과 하코네산의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자연호수다. 호수의 크기로 봤을 때 화산 폭발의 위력을 느낄 수 있다. 웅장한 후지산의 완벽한 전망을 즐길 수 있는 곳이며 일본의 국립공원 가운데 방문객이 가장 많은 곳이라고 한다. 호수에는 엄청 큰 해적선을 테마로 유람선을 운행한다. 우리 일행들은 배의 맨 위층으로 올라가 핸드폰으로 자연을 담기에 바빴다. 돈을 조금 더 내면 선수의 지정된 공간에서 해적 옷을 입은 사람과 사진을 찍을 수도 있는데 아이들에겐 인기가 상당한 것 같았다. 배에서 멀리 보이는 하코네 신사의 토리이가 그림 엽서처럼 보인다. 역시 한컷. 하선한 곳에서 걸어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휴화산, 오와쿠다니(Owaku-dani Valley)를 만난다. 지옥 계곡이라고도 불린다는데 계곡의 모습 때문일까 아니면 유황냄새와 수증기가 올라오는 계곡의 형상 때문일까? 여기선 유황 온천물에 삶은 달걀을 꼭 먹어야 하는 것이 불문율.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이 검은 달걀 하나를 먹으면 7년을 더 산단다. 밑져야 본전이지 하며, 검은 달걀 하나를 먹었다.
돌아서 나오는 길, 평일인데도 진입 때만큼 트래픽이 심하다. 얼마나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지 알겠다. 겨우 다음 행선지로 향한다. 트래픽 때문에 도착 시간이 많이 늦었고, 입장 마감 시간이 거의 다 됐다는 설명. 어쩌면 우리 일행이 그날의 마지막 관광객이 아닐까 싶었다.
일본에서 가장 길다는 구름다리. 미시마 스카이워크(Mishima Skywalk). 길이 400M의 현수교. 약간의 흔들림과 아래가 드러나 보이는 철판들 사이로 아찔함을 느끼기에 충분했고 자연 풍광도 아름다웠다. 시원한 산세 사이 다리 바로 옆에선 짚라인 자전거를 탄다. 속도에 어울리는 그들의 소리조차 풍경으로 배어들어 가슴이 후련하다. 운이 좋으면 후지산이 보인다는데 우린 그런 행운까지는 없었다. 아까 보았던 후지산으로 만족하며 산중턱에 잔뜩 가라앉은 구름산을 보며 내려오는 수밖에.
다음 도착지는 오늘 일박을 할 이토 온천 지역. 단토엔 호텔. 호텔 입구에는 온천장에 갈 때 입는 목욕가운 유가타가 잘 준비되어 있다. 마음에 드는 예쁜 무늬의 유가타를 하나 골라 지정된 방으로 갔다. 가방을 방에 두고 모이라는 시간에 맞추서 식당을 찾았더니 일식 다다미 방에 잘 차려진 정찬. 작은 그릇들에 오밀조밀 색색으로 담긴 정성을 보며 감탄하고 음식의 맛과 멋에 놀라고. 한잔 곁들이지 않을 수 없어 아사히 골드를 시켜 반주를 한다.
적당히 피곤하고, 적당히 배부르고, 적당히 취한 채 호텔 안의 온천장으로 향한다. 어디를 파도 온천물이 나온다는 이토 온천 마을. 평균 분당 34000리터가 나온다는 곳. 일본 국내에서 3위, 전쟁 후에는 환락가 온천장으로 유명했다는 곳에서 원천수를 사용하는 뜨거움에 온몸을 풀고, 다다미 료칸에서 하룻밤이 깊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