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 신부님의 영명 축일이다. 영명 축일은 가톨릭에서 자신의 세례 명으로 정한 성인의 축일을 기념하는 날로 자신의 영적인 생일이다. 이 날은 주변의 많은 신자들과 대부모님들의 축하를 받고 미사에 참석해 은혜를 받는 날로 가톨릭에서는 그 의미가 크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본당 신부님의 영명 축일.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날. 문헌에 따르면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내면의 방황을 많이 겪은 성인이다. 성인은 젊은 시절 방황과 갈등으로 힘든 청년 시절을 보냈고 그때의 경험을 토대로 하느님을 만나 어떻게 참회하고 변화하는가 하는 자신의 마음을 집필한 것이 그 유명한 신앙 서적 <<고백록, confessions>>. 젊은 시절의 방탕과 방랑과 방종을 회개하는 참회서를 썼던 아우구스티노 주교, 성인의 반열에 들었다. 그 성인의 이름을 영세명으로 갖고 있는 본당 신부님.
많은 신자들이 참례했다. 올해는 특별히 신부님의 신학대학 동기 신부님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한국에서는 마산 교구청에서 사목 하시는 분과 성지 관리를 하시는 분, 작은 본당을 맡고 계시는 분, 독일에서는 교포 사목을 하시는 분과 프랑스에서 신학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시는 길에 들리신 분까지 모두 다섯. 본당 신부님을 합하여 동기생 여섯 명이 주일날 이렇게 완전체가 된 것은 졸업 후 처음 있는 일이란다. 주일날 모여 합동으로 미사를 드리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고. 그도 그럴 것이 신부님들은 각자 본당을 맡고 있어 주일에는 맡은 본당의 미사를 집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성당에서 주일 미사를 집전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꼭 신부님의 영명 축일에 맞추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모이기로 한 일정이 여름휴가의 끝자락. 공교롭게도 신부님의 영명 축일 근처였고, 주일 미사를 우리 본당에서 함께 드리고 작은 축하연도 같이 하게 되었다.
본당이 생긴 지 거의 40여 년, 6명의 사제가 합동으로 주일 미사를 드릴 경우는 거의 없지 않았을까. 가끔 평일 미사에는 여러 사제들이 함께 미사를 드리는 경우가 있다. 사제들 회의나 특별한 피정이나 기념일 행사가 있으면 여러 신부님들이 공동집전을 하신다. 그러나 이번엔 주일 교중 미사. 끈끈한 정과 단단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을, 같은 신학 대학의 동기들. 같은 배를 타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이 손잡고 가는 길. 그 길 위의 신부님들을 동시에 만난 것은 말 그대로 그분의 은총이다.
6명의 사제가 합동으로 주일 미사를 드리는 무척 드물고, 영광스럽고, 은혜로운 날 안에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도록 시간을 허락하신 그분께 감사 기도를 올린다. 작은 공동체 안의 티끌 같은 한 신자가 만난 미사 시간. 그리고 하루. 평생에 한 번 만날 수 있을까 싶은 이런 주일 미사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있을까?
이 시간쯤, 뒤돌아보면 살아왔던 날들은 모두 그분의 품 안에서, 그분이 알려준 대로, 거부하지 않고 뚜벅뚜벅 갔던 길 아니었을까? 앞으로 갈 날들이 지나온 날보다 훨씬 짧을 것이 분명한 지금. 나에게 남은 소명이 또 있을까 생각해 본다. 열심히 살았다는 핑계를 대며 , 이젠 편하고 싶다는 이유를 앞세워 이대로 안주한다면 그건 분명 가장 보편적인 인간의 욕심이리라.
신앙 안에서 또 다른 쓰임이 있다면 그 또한 내가 해야 할 일일까? 하루에도 열두 번 바뀌는 내 마음을 잡을 길이 없다. 마음속 갈등으로 뒤척이는 시간들이 잦아진 요즈음. 답은 그분이 아실 것이기에 그 시간으로 미루어둔다.
미사 중에는 6명의 사제가 조금씩 짧게 강론 릴레이를 이어갔다. 여섯 배의 은총을 받는 느낌이었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릴레이 강론 후에는 신부님들의 중창. 사제들이 가는 길을 표현한 “목자의 노래”란 곡. 고운 화음을 넣어 불렀다. 노래의 화음만큼 어울리는 그분들의 마음이 지난 10년이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영원히 이어지길 진심 기도해 본다.
조금 길어진 미사가 끝나고 친교실에서는 ‘축하합니다’ 성가를 부르며 축하연이 시작되었다. 통돼지 구이, 양 갈비, 감자샐러드, 떡볶이가 준비되었고 촛불이 밝혀진 케이크도 있었다. 전날 예쁘게 무대 장식을 했다는 젊은 자매들의 정성에서 그들의 마음도 읽혔다. 아무런 도움을 주진 못했지만 마음은 늘 그들을 응원한다. 커다란 박수를 보내며, 노랫말을 다시 한번 음미한다. ‘어두운 밤에도 주님 함께 계시니 깊은 어둠 속에서 나에게 사랑 주시네……사랑으로 부르네 사랑으로 부르네.’ 사제들의 동행이 사랑으로 가득 차 폭풍이 온다 해도 그 안에서 평화이기만을…
매주 발행되는 본당 주보의 첫머리에는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를”라고 쓰여있다. 본당 신부님이 지향하는 사목 방침이다. 작은 한 마리의 양이 되어 그 길 위에서 서서 두 손 모으며 햇살 가득히 베어드는 스테인드 글라스를 바라본다. 황홀한 색감들 사이로 그분의 안온함이 베어 들고 가슴을 열고 사랑과 빛을 청한다. 계절은 가고 있고 마음엔 포근하고 따뜻한 바람이 불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