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버스를 타며 마음은 옛날로 돌아간다. 시간의 태엽이 천천히 풀리며 기억의 끈을 잡아당긴다.
신봉승 선생님은 내게 참 커다란 어른이셨다. 인연은 나의 어린 시절부터 또렷이 남아있다. 명절에는 과일 상자를 들고 우리 집에 오실 때도 있었고 나의 결혼식장에서는 맨 앞자리에서 따뜻한 시선을 보내 주셨다. 내 아버지인 시인(詩人) 최인희의 유고 시집, <旅情百尺>을 발간할 때도. 동해시 무릉계곡에 시비(詩碑), 낙조(落照)를 세울 때도 선생님의 주도하에 진행되었다. 내 아버지와 선생님의 인연은 강릉 사범 학교에서 스승과 제자 사이였다. 아버지는 국어와 독어를 가르치셨고 선생님은 아버지의 수제자. 선생님의 문학세계에 영향을 많이 미친 분 중에 내 아버지의 이름도 있었다고 감히 말해 본다.
스승은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스승의 미망인과 그의 피붙이였던 나에게까지 따스함을 나누어 주신 어른. 남들은 선생님의 눈이 매섭다고 하지만 나는 ‘따뜻했다’고 느꼈다. 나는 미국으로 떠난 후 선생님의 소식을 일간지나 TV드라마를 통해서 보았지만 마음은 늘 옆에서 보는 것처럼 함께였다.
그리고 오늘, 강릉문인협회가 주관하는 <신봉승 문화제> 행사에서 선생님을 다시 만난다. 가을의 문턱에서 만나는 선생님. 시인이고, 수필가이며, 소설가이고, 평론가이여 그 많은 대작들을 만들어 내신 극작가였던 분. 발로 뛰는 문학을 스스로 실천하셨던 분. 강릉을, 대관령을, 동해 바다를 사랑하셨던 분. 불세출의 강릉 작가. 감히 나 같은 미물이 선생님의 업적을 다 열거할 수 있을까 만은 내가 기억하는 선생님은 초록 물 들은 동해 바다 같아서…
문화제의 1부에서는 강릉 문협(회장, 김경미)에서는 시인으로 문학의 세계를 출발하셨고, 시인으로 불리기를 원하셨던 선생님의 시들을 모아 유고 시선집 <내 인생 초록 물들이며>를 헌정했다. 선생님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따라다녔던 초록 잉크의 만년필. 얼마나 많은 원고를 집필하셨는지 댁에는 몇 백개의 초록 잉크병이 남겨졌단다. 늘 초록 잉크의 만년필을 안 주머니에 넣고 다니셨던 분. 그렇게 인생을 오롯이 초록색으로 물들였던 선생님. ‘시는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인식이며, 역사이며, 인격이었다’라고 자신이 발행했던 시집의 서문에서 일갈하고 있다. 시 3편도 낭송되었고, 작사한 가곡, ‘대관령’과 진미령이 불렀던 대중가요 ‘하얀 민들레’도 글소리 중창단이 합창으로 들려주었다.
2부, 학술 세미나. 선생님의 넓은 스펙트럼을 심도 있게 이해하기 위하여 기조강연에서는 선생님과 명 콤비였던 표재순 원로 연출가가 먼 곳 마다하지 않고 참석해 주셨다. 간간히 메모를 보기는 했지만 어제 일처럼 풀어내는 에피소드들 중에서도 선생님 생전 모습은 그대로 드러났다.
이어 제1발제. 박덕규 교수는 “신봉승 이해의 밑자리를 펼치며”라는 주제로 초기의 선생님의 문학은 물론 선생님의 업적을 총체적 관점에서 정리해 우리들에게 알려 주었다. 방대한 자료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10페이지에 달하는 논문. 선생님의 문학 역사를 전체적으로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인다. ‘신봉승은 기록이 남아 있는 정사의 역사를 만든 분’이라고. 문학과 드라마를 연결하고, 역사와 드라마를 이어가는 가교 역할은 9년에 걸쳐 방영되었던 ‘조선 왕조 500년’과 ‘한명회’ 등에서 배우게 되었다. 100권의 저서가 선생님의 역량으로 대변 되다면 나의 시선이 너무 가벼운 것일까?
제2발제는 박용재 교수의 ‘문예 콘텐츠로서의 신봉승 시나리오’였다. 말 그대로 문학에 있어서 멀티 플레이어 작가였던 선생님은 시인이자 작사가였으며, 시나리오 작가이자 드라마 작가였고, 극작가였다. 탁월한 에세이스트이기도 했다는 한 줄 평에서 얼마나 넓은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어 활자 문학을 영상문학으로 변화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고 그 대표적인 작품이 시나리오 <갯마을>. 선생님은 ‘독특한 원작의 분석-해체-재창조로 이어지는 독창적 세계를 구축했다’ 고 쓰고 있다. 소설의 공간과 시나리오의 배경을 위해 발로 뛰는 작업을 수 없이 했던, 그것이 문학의 영화 콘텐츠 작업에 성공적인 전형을 만들어 냈다는 발제에 백 프로 동감했다. 선생님 작업의 진수를 볼 수 있는 <갯마을> 상영이 있어졌다. 시간관계상 전편을 감상할 수 없었던 아쉬움이 컸지만 주말 동안 너 튜브를 찾아 원작 이어 보기를 할 계획이다.
선생님이 작고 하신 지도 8년째. 그동안 선생님에 대한 학술 세미나 등은 간간히 있어 왔지만선생님의 이름을 딴 문화제가 열린 것은 처음. 이제라도 선생님의 이름으로 이런 문화제가 열리게 된 것이 감사하다. 더구나 이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음이 고맙다. 고향, 강릉에서 선생님 이름의 문화제를 만났고, 나에게 커다란 어른이셨던 선생님을 추억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만들어진 감사한 인연. 그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싶다.
선생님 스승의 딸인 이유였을까, 미국에서 왔다는 희소성 때문이었을까 즉석 인터뷰를 해야 했다. 전혀 준비되지 않았고, 너무 큰 선생님께 누가 될까 염려스러웠지만 나에겐 너무나 귀한 기억이들이 있었다. 그중 몇 개 끄집어 내 짧은 인사에 대신했다.
좋은 어르신, 신봉승 선생님. 선생님 이름의 문학제가 계속 이어지길 염원하며 선생님을 추억하고 업적을 기리는 후학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래 본다. 문향 강릉이 자랑하는 불세출 신봉승. 감히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거나, 쓴다는 것이 누가 되지 않기 만을.
긴 행사를 마치고 바다 바람 차가운 집 앞에는 어둠이 내린다. 어둠이 내린 가을 하늘에는 선명한 별빛 하나 환하게 빛난다.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별, 선생님은 그 안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계신다. 보시기 좋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