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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Oct 22. 2024

최인희 문학상을 다녀와서

비 오는 창을 통해 바라본 시간

억수같이 퍼붓는 가을비. 조금 소강상태인가 싶더니 바람이 다시 분다. 우산을 펼 수 없게 휘몰아치는 바람을 마주하며 조심스럽게 운전을 한다.

얼마 전 미국에 있을 때 동해문협 회장님으로부터 ‘최인희 문학상’에 대한 연락을 받았었다. 마침 한국을 나와 있을 시간이라 기꺼이 참석하겠다고 답했다. 강릉에 도착하며 바로 연락을 드렸고, 행사에서는 최인희의 대표 시 ‘낙조(落照)’를 낭송하면 된 단다. 여러 번 읽어봤지만 많은 사람들, 더구나 문인들 앞에서의 낭송이라 공부하는 것처럼 외웠다. 조사와 부사가 헷갈리기를 여러 번, 동해로 가는 차 속에서도 혼자 속으로 웅얼거려 보았다.

여전히 비가 내리는 가운데 도착한 행사장. 수상자 가족과 지인 들뿐 아니라 동해시의 시의원들, 동해문협 회원들이 대거 참석했다. 행사는 최인희 문학상의 수상과 동해문학 협회의 축제였다. 아는 얼굴들 몇 분과 인사를 나누고 행사는 시작되었다. 행사의 진행은 더디었다. 지난 회장들을 대표해 연단에 나온 이의 필요 없는 회고사. 행사를 방해하는 듯한 느낌이 확 들었다. 그 상황은 슬프기까지 했다. 전국에 많은 문학상이 있다. 그 많은 문학상들이 수여되며 크고 작은 잡음들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미국에 살고 있는 나도 잘 안다. 소용돌이 속에서 홀로 꽃 피우는 상사화가 될 수도 있고 홀씨 하나 날리는 민들레가 될 수도 있겠지만, 초심을 잃지 않는 진실은 늘 제 자리에 있다.


최인희(崔寅熙)는 얼굴도 기억이 안 되는 내 아버지이다. 나는 56년생. 아버지, 최인희는 58년에 작고하셨다. 엄마 나이 29. 청상이 되어 딸 하나를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온 엄마. 생활을 위해 바로 복직을 했고 교장으로 정년퇴직을 했다. 퇴직금의 일부를 떼어 동해시에 맡기며 ‘최인희 문학상’을 제정했다. 그 몇 해 전에는 아버지의 유고집이 만들어졌다. 유고집은 <현대문학>이나 <문예>들을 통해 발표되었던 작품들과 엄마가 가지고 있었던 오랜 된 원고 박스에서 나와 햇볕을 보았다. 그 시절 아버지의 옥고를 모아 정리해 준 친구가 아니었더라면 어려웠을 일이다. 그 친구는 서울의 여러 대학교 도서관을 돌며 작품을 찾았고, 당시 혜화동 동성고등학교에 재직 중이던 황금찬 시인 등을 직접 찾아가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 노력으로 찾게 된 아버지의 글들을 모아 유고집, 여정백척(旅情百尺)이 만들어졌다. 이후 아버지의 후학들은 다시 뜻을 모아 동해시 무릉계곡에 시비(詩碑), 낙조(落照)를 세웠다. 그 시간 나는 미국에서 이민자로 생활하고 있어 정신적, 경제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엄마가 지아비를 기리며 했던 일이었다. 누구도 그 순수함에 시비를 걸면 안 되는 일이다.


행사의 2부에서 ‘최인희 시와 한국문학’이라는 제목으로 강원대 남기택 교수의 강연이 있었다. 교수의 강연에서 ‘미완의 정전’이라고 이름 붙인 아버지의 시 세계. 1952년 강릉지방에서 시작된 동인지 ‘청포도’는 정식으로 인쇄 발간된 동인지. 한국 전쟁 시기에 자생적인 문학 단체가 성립되고 매체 활동을 실천하였다는 점은 한국 문학사적 관점에서 주목해야 할 성과라고 말하고 있다. 20여 페이지에 실려 있는 최인희의 시 세계. 아직도 미완인 채 있단다. 아버지의 시 세계를 완성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순간 휙 지나갔다. 그러나 딸의 욕심일 뿐인 이 상황이 가슴 아프다. 번뜩이는 시어를 건질 수 없는 나의 현실 안에서 시간이 되면 남기택 교수님과 연락해 아버지의 시세계를 좀 더 배워 볼까 싶다. 모자랐던 시간을 채워봤으면…

무릉계곡의 시비에는 세월의 이끼가 끼었고, 한정판이었던 유고집은 미국 집 나의 서재에 1권, 강릉집에 1권 남아 있는 것이 전부다. 엄마가 그렇게 소중히 간직했던 아버지의 친필 원고는 어느 날 사라졌다. 몇 분의 논문 속에서 ‘최인희 연구’가 남아 있고, 내가 쓰는 글 속에서 아버지의 이름이 아주 가끔 언급되는 것 말고는 기억은 점차 희미 해진다.


최인희 문학상이 23회가 되었다. 사는 일이 다 그렇듯이 잡음이 있었다 하더라도 새롭게 정비하고 다듬어 이어가는 동해문협에 감사를 드린다. 동해시가 자랑한다는 아버지, 최인희의 이름이 오래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유족의 한 사람으로서 머리 숙여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젠 천상에서 다시 만나 해로하고 있을 두 분께 누가 되지 않기 만을 바라고 또 바라며 가을 들꽃이 되어 흔들리는 아버지의 시상을 기억한다. 남 교수는 최인희의 시세계는 ‘창’을 통해 무구의 세계와 소통을 노래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했다. 아버지가 열어 놓은 창을 통해 사물을 보고, 창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창을 통해 익어 가는 세월 속의 나를 바라본다.


최인희 문학상을 수상 한 구금자 시조 시인의 건승을 빌며, 돌아오는 길. 밤은 어두웠지만 외할아버지를 좀 더 깊이 알게 된 아들과 절친과의 동행은 참 감사한 일이었다. 가을 비로 씻어 내릴 문학상의 얼룩들. 더 이상의 불협화음은 안된다는 생각을 한다. 가을 비속으로 어둠이 흔들리는 창을 타고 내린다. 멀리 도시의 불빛들. 흔들리는 불빛에서 나의 아버지 최인희를 생각해 본다. 가슴속엔 아린 눈물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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