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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Nov 03. 2024

두 번째 북 토크

소통이라는 이름으로

동해로 향하는 길은 조심스러웠다. 오랜만에 혼자 운전. 더구나 어스름이 시작되는 저녁 시간이었다. 늘 동행했던 절친은 서울에 일이 있었다. 빈자리가 꽤 크게 느껴졌다.


동해고속도로는 늘 한가하다. 나 같이 한국에서 운전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친절한 도로, 먼 시선의 산들, 단풍은 산정부터 내려오는 붉은 가을 색 계절의 옷을 잘 갈아입고 있다.


도착한 곳. <책방 균형>. 책방 앞에는 내 키보다 큰 플래카드가 입간판처럼 서 있다. 번개 북토크에 이렇게까지? 하는 감사한 마음으로 책방 문을 열었다. 준비에 바쁜 책방지기 님의 반가운 인사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선다. 가지런히 자리 정돈이 되었고 책도 나란히 놓여있다. 북 토크에 오는 손님들에게 대접할 차를 미리 준비하는 책방지기. 나도 향긋한 방아 차 한잔을 들고 책방 구경을 시작했다. 긴장을 풀기 위해 들고 갔던 내 책을 다시 펼쳐보며 이어갈 이야기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오후에 받았던 질문의 내용들도 다시 한번 살핀다. 어렵지 않게 풀어갈 수 있는 내용들이다.


예정된 시간이 되었고 하나 둘 반가운 얼굴들이 들어온다. 동해 문협, 동해시 의원, 동해 문화원, 강릉여고 선후배, 그리고 책방의 단골손님들. 자리는 꽉 채워졌고 축하의 꽃들도 넘치게 받았다. 브런치에서 만났던 분과 아버지, 시인 최인희의 사료를 가지고 계신 분도 만났다. 여고 졸업 후 몇 십 년 만에 만난 삼척에 산다는 친구 2명. 그리고 물심양면으로 응원해 주는, 너무나 든든한 나의 친구 강릉여고 동창회장. 책방을 좋아해 늘 <책방 균형>에 온다는 단골손님들. 간단히 나를 소개하며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미국에 사는 이유로 남편의 성을 따라 전지은으로 산 40여 년의 세월이 있었고, 그 안에서 좌충우돌 미국 생활도 가감 없이 이야기.


‘오롯한 나의 바다’로 이어졌다. 요양원은 현대판 고려장이 아니라, 살면서 알게 되는 참 고마운 곳이더라. 엄마를 그곳에 안 모셨더라면… 원장님의 세심한 배려… 사고 후에 수술을 받지 않게 하겠다며, No라 했던 나의 용기 등으로 이야기는 이어졌다.


<당신의 강릉>의 김민섭 작가와의 인연, 김민섭 작가가 책을 만드는 <정미소>에서 책을 만들게 된 경위, 지방 소멸 시대에 지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그 지방에서 해야 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나이가 들며 말이 많아졌다. 더 간결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들도 너무 장황한 설명을 이어갔던 것은 아닌가, 반성해 본다.


한 시간 반은 훌쩍 갔다. 이어 내 책에 사인을 하며 사적인 이야기들을 이어갔다. 아버지에 대한 사료를 가지고 오셨던 분과 꽤 긴 대화를 이어갔다. 동해문화원 사무국장님의 브런치에는 이미 북 토크에 대한 이야기가 실렸다. 친구들과 통화도 하고 메시지도 주고받았다. 따뜻한 마음과 응원하는 시선이 있어 더 열심히 글을 써야 할 것 같고 더 큰 숙제를 받은 느낌이다. 아버지, 시인 최인희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기 만을 기도하며.

축하 선물로 받은 많은 꽃들은 방문객들과 나누었고 가장 큰 것은 책방에 두었다. 그중 하나 챙겨 차에 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거리는 온통 어둠이다. 미리 준비한 물을 마시며 천천히 운전한다.


어둠 속에서 길라잡이이던 한줄기 헤드라이트의 불빛. 그 안에서 만났던 책에 대한 내 마음이 따라간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못 미치는 책 안의 내용들. 더 넣고 싶었던 엄마와 추억 에피소드. 엄마와 나의 관계. 엄마에게 나는 남편이고, 애증이며, 안타까움이었을… ‘엄마의 자리’에 더 많은 공간을 사용해야 했다는 아쉬움. 요양원 이야기와 미국과 강릉을 오가는 어려움만 너무 많이 풀어 놓은 것 같다. 죄스럽고 미안한 나의 마음을 표현하기에는 턱없이 역부족이었던 책. 엄마를 그리는 마음과 상실의 감정만 너무 쏟아냈다. 마음은 이미 개정판을 준비한다.


누구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삶의 경험이 얼마나 좋은 재료가 되느냐고, 다양한 삶을 살았으니 쓸 것이 많겠다고. 그 누구의 인생인들 한 권의 소설이 아닐 수 있을까? 평범하면 평범 그대로, 특별하고 다르면 또 그 다름 대로. 삶 속에서 만들어지고 엮어지는 이야기들은 나름의 모양을 하고 있다. 모양들이 다 화려할 필요는 없다. 소박하고 잔잔한 물결도 파도이고 집채만 한 파도도 파도다. 너르고 푸른 바다는 시시각각 물결의 모습이 다르고 물색이 다르다. 다름을 아는 시선, 다름을 인정하는 마음이 되어 모자란 책에 자성을 담아 변명해 본다.


어느새 남강릉 IC싸인이 보인다. 멀리 강릉의 불빛들이 보이자 집에 거의 도착했다는 안도감. 안도감 안으로 오늘의 책을 밀어 넣으며, 아쉬움조차 나의 몫이었음을 안다. 돌아온 집, 따듯한 차 한잔 마시고, 들고 온 꽃바구니를 식탁 옆에 놓으며 꽃들 하나하나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색이 다르고 향이 다르지만 어우러지는 꽃바구니 가득한 꽃들. 꽃 향기가 방안에 가득하다. 꽃 향기 속에서 또 다음을 준비한다.

아직 쓸 수 있음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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