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를 떠나 이스탄불에 도착하다
호텔로비에서 주선해 준 공항 가는 벤은 200유로. 지난 이틀 동안 단독 차량으로 그리스 고린도, 수니온 곶, 델피를 돌아본 것은 합이 690유로. 대금을 지불할 때는 이렇게 많이? 하는 기분이었지만, 나쁘지 않은 딜이었던 것 같다. 우리끼리 움직였던 편리함이 장점이었다. 이제 나이가 있으니 이 정도의 사치는 눈감아 줄 수 있어야겠지.
비좁고 복잡한 아테네 공항에서 이스탄불행 비행기를 기다린다. 지난 5일 동안 그리스. 여행객의 눈으로 봐야 할 것만 보고 떠나면서도 느끼는 것은 많다. 유물들에 기대 현재까지 살고 있는 듯한 느낌. 산업과 경제 인프라가 어떻게 형성돼 있는지 잘 모르지만 쇠락의 길로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은 떨쳐 버릴 수가 없다. 몇천 년의 역사를 갖고, 세계 최고의 고대도시국가였고, 민주주의와 의회주의가 가장 발달한 나라. 복지와 무상교육을 최대 자랑거리로 삼는 나라. 그래서 국가 디폴트를 13번이나 선포했던 나라. 지금도 세계은행에 그 많은 채무들을 변제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여행객은 그냥 눈에 보이고, 마음으로 느끼고, 얼마의 기억으로만 담고 오면 되는 일인 것 같다. 어쩌면 이런 것들이 잠시 스쳐 지나가는 낯선 시선들의 장점 아닐까?
로마에서도 그랬지만 아테네 공항의 복잡함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앉을 의자하나 없고 앞의 가게에서 맥주를 사 왔다고, 앉아있던 자리를 비워달랜다. 황당함. 자신의 나라를 찾아온 손님에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그야말로 불청객이 되어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듯한 느낌. 서둘러 자리를 떠나야만 될 것 같은 곳에서 탑승하며 편안해진다.
한 시간 반 비행 후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했다. ‘와우’ 이렇게 큰 공항? 인천 공항 못지않은 규모에 그야말로 깜놀. 문헌을 찾아봤더니 에어터키는 전 세계에 가장 많은 노선을 갖고 있고, 튀르키에 공항은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 공항이란다. 2018년에 개장을 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신공항. 이스탄불의 외곽에 자리 잡아 도심으로 들어가는 전철이나 버스들을 이용해야 하는 불편이 상당하다. 공항 주위에는 아직도 인프라를 구축하는 중이라는 설명.
짐을 찾으러 가는 길에서 만난 수많은 기념품 가게와 카페들. 손님이 그리 많은 것 같지는 않다. 면세점을 통과해야만 입국 수속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된 공항에서, 장사 속을 눈치챘지만 이 넓은 곳을 유지, 운영하자면 그래야 할 것 같기도 하다. 편하게 입국장을 통과하고 짐을 찾고 우버 싸인을 찾는다. ‘바로 저기’ 라며 손짓을 하는 젊은 청년을 따라 부지런히 걸어갔다. 여기, 손짓을 하는 곳엔 택시 한 대, 우버 싸인은 없다. 무조건 타라고 해서, 그냥 탔다. 공항을 빠져나오며 가격 흥정. 많은 액수를 불렀는지, 앞에 탔던 남편이 ‘이건 아니지, 차 세워. 우버 불러서 탈께.’란다. 뒷 좌석에 앉아 있던 우리들은 일제히 ‘왜에? 뭐야?’라고 반응. 우버의 가격은 부른 사람의 전화기에 가격까지 다 뜨는데, 이 사람이 부른 값은 그보다 훨씬 많았다. 몇 마디 주고받으며 내린다고 협박 반 흥정 반 하자. 그 차의 젊은 기사는 우버 가격으로 값을 내려줬다. 가격 흥정이 끝나고 다시 차는 출발. 도심을 향하는 길에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다. 40여분 달렸을까, 조금씩 도시의 모습이 나타나고, 거의 50분이 되어서야 이스탄불의 신도심, 탁심(Taksim)의 숙소에 도착했다. 이렇게 멀리까지 와야 했으니 조금 비싸다고 느낄 정도의 가격은 어쩌면 당연한 것 같았다. 남편은 흥정을 하며 언성을 높였던 것이 미안한지 팁을 더 주었다. 고마워하며 떠나는 젊은 기사. 처음 여행을 오는 곳에서 정하는 숙소는 말 그대로 지도와 리뷰를 보며 감으로 예약. 도시의 한가운데. 편리할 것 같았고 리뷰들을 찾아보며 예약을 한다고 했지만 이번 숙소 주변은 복잡하고 시끄럽다. 며칠 동안 고생이겠구나 싶다. 체크인을 하고 가방을 놓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호텔 프런트에서 맛집을 물어봤고, 그가 가르쳐준 지도와 식당 이름을 들고 숙소의 뒤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갑자기 눈에 띄는 간판. <Taeback, 태백> 뭐지? 가까이 가보니, 한국식당(Korean Restaurant). 우리는 일제히, 대박…이 도심에 한국 식당이? 무조건 들어갔다. 식당은 꽤 넓다. 안에는 사람들이 많다. 단체 관광객들도 꽤 있다.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를 넘겨본다. 종류가 상당하다. 육개장, 오삼볶음, 돌솥비빔밥, 안주용 모둠 수육과 빠질 수 없는 소주. 모두들 신났다. 튀르키에 첫날밤에 만난 한국 음식. 괜히 편하고 신나는 느낌을 안고 또 새로운 곳에서 첫날밤을 지난다.
아직 동이 트지도 않은 이른 새벽, 고요를 흔드는 커다란 소리에 잠이 깼다. 이 기도는 ‘아잔(Adhan)’이라고 불리는 무슬림의 기도 시간. 하루에 5번 모스크에서 울려 퍼지는 기도 소리는 확성기를 통해 도시 전체에서 들을 수 있단다. 어스름 새벽, 기도 소리에 잠이 깨며, 일주일 이상이나 예정돼 있는 일정이 걱정스러워졌다. 기도 소리에 깨어나고, 기도 소리에 따라 움직이고, 이 기도 소리에 잠이 드는 도시 이스탄불. 내일은 이 소리가 조금은 익숙해져, 자장가가 처럼 들리려나. 이불을 머리끝까지 당겨 쓰고 다시 잠을 청해 봐도 기도 소리는 꽤 오래 이어진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마음을 바꾸어, 그들처럼 기도 하는 마음으로 이른 아침을 시작하기로 한다. 새벽 기도 소리는 신성한 울림이 되어 경건하게 다가온다. 울림은 따뜻한 여운이 되어, 차이(Cay) 한 잔처럼 온몸으로 퍼진다. 하루를 시작하는 느낌이 따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