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유럽 여행팀의 뒤풀이를 했다. 여행이 끝난 건 여름의 끝자락이었지만 다들 몸을 추스를 시간이 좀 필요해 많이 지체되었다. 그동안 나는 여행기를 마쳤고 사진 정리를 끝냈다.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와 준 친구들. 마침 덴버 브롱코스(Broncos)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게임 시작은 2시 5분. 접시에 음식을 담아 아래층 T.V. 앞에 모였다. 게임은 첫 쿼터부터 상당히 잘 풀렸다. 오랜만에 보는 내용이 충실한 경기. 맥주와 유럽의 추억을 되살리는 모히또 한잔과 음식들. 여행할 때만큼 신나고 즐겁다. 게임도 이겼다. 우리들의 추억은 하나의 묶음이 되어 브런치 앱과 내 컴에 저장되었고, 사진은 작은 디스크에 담겼다. 이제 다음 공모를 해야 할 시간.
게임이 끝나고 다시 모여 앉은 우리들은 이야기를 이어간다. 각자 내년의 스케줄과 다음 가고 싶은 곳들을 진지하게 상의. 이럴 땐 달콤한 디저트가 필수. 친구가 오며 한 박스 사 온 달콤하고 말랑하고 부드러운 홍시. 조금 더 익어야 할 것 같지만 올 가을 처음, 맛보는 것이라 아주 맛나게 먹으며 계획을 풀어간다.
‘홍시’하면, 나훈아의 노래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는 가사. 그래서였을까 지난봄 어버이날에는 젊은 여성 단체에서 ‘홍시’ 노래를 신부님의 기타 반주에 맞춰, 율동을 섞어가며 불렀다. 신자석에서 박수로 박자를 맞추었던 기억. 젊은 자매들의 율동과 노래를 들으며, 그야말로 울 엄마 생각이 났었다. 내 외갓집에는 감나무가 5그루나 있었다. 늦가을이 되면 붉게 익은 감을 따고, 깎고, 처마에 매달아서 곶감을 만들었다. 농익은 것들은 솔잎을 켜켜이 항아리에 깔고 조심스레 놓았다. 홍시 항아리는 부엌 옆에 붙어 있던 광 안에 보관했다. 한겨울이 되면 외할머니는 가끔 항아리 안에서 살짝 얼음이 언 홍시를 하나 꺼내 숟가락으로 퍼서 먹게 해 주었다. 가볍게 언 홍시. 요즈음의 샤벳 같이 차고 달고 부드럽고 맛났다. 외할머니의 무릎 옆에서 구수한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작은 숟가락으로 떠먹던 홍시. 외할머니도, 엄마도 이젠 안 계시지만, 추억은 어두운 광 안에서도 행복한 추억이 되어 달콤하게 다가온다. 여행이 힘들었지만, 좋은 추억을 만들었던 것처럼.
이제 홍시가 농익었다. 플라스틱 용기를 찾아 홍시를 2줄로 나란히 놓는다. 냉동고의 한쪽을 비우고, 홍시를 넣으며 그 옛날의 추억도 함께 넣는다. 겨울 어느 추운 날, 얼린 홍시를 꺼내 스푼으로 사각사각 떠먹으면, 외갓집과, 외할머니와, 울 엄마와 우리들의 유럽 여행과 신부님의 재롱 잔치가 소환될 것 같다.
‘이한치한’을 외칠 나를 상상한다. 홍시의 달콤 말랑 부드러움 안에 녹아 있는 시간들. 울 엄마와의 시간, 외할머니의 구전동화, 한 폭의 그림 같았던 여행 등등. 가끔은 너무 차갑고 시리고, 가끔은 달콤 부드러울 거고, 또 가끔은 손이 시릴 수도 있겠지. 그렇다고 하더라도 홍시는 홍시의 부드러움과 달콤함을 그대로 지닌 채 나의 입속에서 살살 녹을 것이다. 사라지는 것들을 아쉬며 하며, 또 속절없이 세월은 가겠지만 달콤 말랑하던 순간들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홍시를 꺼내 먹을 때마다 새록새록 다가 올 우리들의 여행과 그 옛날의 추억들을 하나씩 꺼내보는 새벽. 밖은 아직 어둡지만 갓 내린 커피 한잔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향긋함 사이로 다가오는 오늘, 따뜻함과 달콤함, 말랑 부드러움을 그 누구에겐가 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