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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Apr 19. 2022

예순,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에 아직 괜찮은 나이

부활 성삼일 전례를 준비하며

    


학창 시절 합창반도 안 했던 내가 ‘성가대에 들어 가볼까' 생각했던 것은 6년 전 즈음이다.


오랫동안 해오던 미사 해설이 약간 지루하기도 했고, 마침 변화가 있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시간이었다. 가깝게 지내는 자매가 성가대를 같이 하자는 말에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들어갔다. 악보를 보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능력은 없었지만, 초등학교 때 웅변을 잠시 했던 적이 있어서 목소리는 잘 나왔다. 오래 성당을 다녀서 성가도 귀에 익었다. 그렇게 성가대를 시작했다.

 

    


기존의 성가대원들은 성가 책이 너덜너덜할 정도로 열심히 성가들을 불렀던 베테랑들이었다. 난 그때 이미 60이었고 새로 도전하는 일이 잘 될까 싶었지만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  


'그래 해보자, 안되면 내 능력 밖의 일이구나라고 생각하면 되지'


그렇게 가볍게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뭐든 마음먹으면 열심하는 편이었다. 그날 이후, 열심히 불렀다. 발성 연습을 위해 유튜브도 보고, 새벽이든 한 밤중이던 시도 때도 없이 성가를 불렀다. 가게고 병원에서도 늘 노래를 불렀다.  


자동차 여행을 할 때면 운전하는 남편 옆에서 성가 책 1번부터 순서대로 쭉 부르기도 했다. 그런 목소리를 참아주는 남편도 신기했지만 열심히 성가를 부르고 나면 가슴은 후련했다. 쌓여 있던 가슴의 응어리들이 소리가 되어 밖으로 나오는 느낌. 스트레스를 확 날리기 위해 노래방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이해가 됐다면 과장일까.  열심히 성가 연습을 하는 나를 보고 나이 지긋한 자매님은 ‘성가는  신실한 기도’라며 격려해 주었다.



지난해 성지주일

               


목소리가 크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미사 전례 중에 해야 하는 화답송과 복음 환호성 솔로를 맡았다. 연습에 또 연습, 자나 깨나 연습… 그렇게 첫 몇 년은 성가대에 올인하며 지냈다.


우리 성가대의 평균 연령은 60대, 그리고 모두 여자. 성가 대장도 반주자도 음악 전공이 아닌, 아마추어들의 모임. 성탄이나 부활 같은 특별한 전례에 빠지면 안 되는 특송을 고를 때도 참 힘이 든다. 너무 높은 고음이 있으면 안 되고, 남자 파트가 주여서도 안된다. 악보도 좀 쉬워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롭다. 다행히 성가 대장은 아직 젊고 의욕이 넘쳐 우리들의 조건에 가장 적합한 곡들을 잘도 찾아온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열심히 연습해 지정받은 부분들을 잘 소화하기만 하면 된다.



올해 성지주일

                         


올해 부활주일은 지난 일요일이었다. 재의 수요일 이후 사순 5주일까지 지났고, 지지난 주일은 주님 수난 성지주일이었다.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는, 가톨릭 전례력에서 가장 중요한 성삼일은 목요일부터 시작된다.


만찬의 전례로 시작되는 성목요일 화답송과 복음 환호 송을 반주 없이 아가 펠라로 부른다. 이어서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던 예식을 재현하는 동안 ‘내 발을 씻기신 예수’도 반주가 없다. 완벽한 연습이 없이는 소리가 안 나올 것이 분명하다.


글을 쓰는 시간에도 난 악보를 펼쳐 크게 소리를 내 본다. 집에서 혼자 할 때는 고음도 잘 올라가고 호흡도 꽤 긴 것 같은데, 막상 그 시간이 되어 성가대에 서서 독창을 하려고 하면 엄청 떨린다. 나에게 집중하는 신자분들의 시선도 있고 전례의 중요한 부분이기에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다. 그러나 성가를 부르는 시간은 신실한 기도라고 믿기에 최선의 다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소리를 낸다.  연습에 연습을 하는 것은 매일의 기도이기도 하다.




콜로라도 봄의 소리

                 

         

지난 2년 동안은 거의 성가를 부르지 못했다. 코비드란 복병 때문에 집에서 유튜브로 미사를 봐야 했고, 다른 성가대원들과 음을 맞추는 일은 거의 없었다. 다행히 올해는 지난 2년간의 간편 전례를 끝내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왔다. 그러기에 더욱 마음을 다하여 한 부분이라도 실수가  없게 연습에 연습을 더 한다. 성악가 조수미도 한곡을 부르기 위해 몇 백번을 연습한다는데, 나 같은 아마추어가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그의 열 배 스무 배 이상은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닐까.


악기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 인간의 목소리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 아름다운 악기를 잘 갈고닦아 윤을 내어 주님 보시에 아름다운 소리가 기도가 되어 천상에 전해 질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 부활 주일이 될 수 있을까. 늘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는 말씀처럼,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노래 부르는 성가대원으로 오늘도 고운 소리, 아름다운 가사 전해 본다. 마음을 다하여….



올해의 성삼일 전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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