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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Mar 25. 2022

미국의 성당, 예비자 교리 시간을 함께하며

예비자 교리 시간

               

가톨릭 신자들 중 모태 신앙이 아니라면, 가톨릭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다. 예비자 과정이다. 입교식을 하고 매주 한번 교리 수업을 받는데 예비자 교리서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예전엔 1년 또는, 6개월 이상은 교리 공부를 하고 주일 미사에 참여해야만 했다. 그 과정이 그리 녹록지 않아 가톨릭에 관심이 있어서 문을 두드렸다가 중도 포기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좀더 편하게 종교를 알아가고 신앙의 문을 두드릴 수 있다면 하는 생각도 하지만 힘든 과정을 거치며 신앙이 견고해지고 훗날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도 이 나이쯤 되고 보니 알게 되는 일이다.


                 


미국에서 만나는 한인들과 종교의 모습은 한국과 그 결이 조금 다르다. 미사를 드리는 장소 외에 함께 모일 수 있는 사회적인 기능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민자로 살면서 모국어로 미사를 볼 수 있고, 기도문이나 묵주기도 한번 올릴 수 있고, 고백 성사 한번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또한 동네 아파트에서는 풍길 수 없었던 청국장, 된장찌개와 김치찌개 냄새도 마음껏 풍길 수 있다. 미사 후 한국음식을 서로 나누며 친교를 이어가는 한인들의 공동체.  이민자의 아픔과 외로움을 달래는 사교의 장소이다.  


미사가 끝난 후 함께 하는 점심과 삼삼 오오 모여서 일주일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곳. 남편 흉을 보고, 자식 걱정도 하고, 시내에 새로 생긴 빵집 이야기도하고, 한국 마켓 세일 아이템 이야기도 한다. 사람 사는 모습을 옮겨와 좋은 시간을 함께 하고 다음 주일을 기약하며 헤어진다. (이런 것을 못한 것도 이미 2년이 넘었지만. 그래도 요즘 이곳 콜로라도의 상황은 많이 나아져 어쩌면 올해 부활주일 이후에는 예전의 풍경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도 해 본다.)

               

이번 부활절을 맞아 우리 성당에는 4명의 예비자가 있다. 그중 한 명은 학생이어서 따로 교리를 받고, 성인 3명이 매주 교리 공부를 한다. 물론 본당 주임 신부님이 지도를 하시지만 가끔 출타를 하시거나 미사 후 회의가 있게 되면 신부님을 대신해 교리를 가르 칠 평신도가 필요했다. 


몇 달 전, 신부님은 나에게 “창조론”에 대해 준비를 하라고 하셨다. 한 번도 교리 교사를 해 본 적이 없고 성경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 것도 아니고 더구나 창조론 이라니… 그래도 뜻을 거를 수가 없어 나름 열심히 준비를 해서 한 시간 교리 공부를 같이 했다. ‘같이 했다’는 표현이 맞는 것이, 그 시간을 준비하며 참 많은 것을 깨닫고 스스로 배웠고 그 배움을 그분들과 같이 나누었던 것 밖에 없다. 반응이 나쁘지 않았는지 신부님께서는 당신이 부재하게 되면 다음에 또 부탁한다고 말씀해 주셨고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오늘은 “영원한 삶”이라는 교재의 마지막 부분이었다. 잘 죽는 방법과 죽음을 준비하는 자세 등을 많이 쓰고 이야기했기에, 편안하게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이번 교리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고 우리들은 아쉬운 시간을 끝내야 했다. 다음엔 시간을 좀 넉넉하게 잡아 좀 더 심도 있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한다. 아직 젊은 자매님들에게 이 무거운 주제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그분들에게는 어렵고 두려운 이야기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죽음이란 그 자체는 누가 뭐라 해도 부정할 수  없는 팩트이다. 그렇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마주 서서 열어보고 그 안을 들여다본다면 언젠가는 만나게 될 그 사실에 대해 좀 더 준비된 모습이 아닐까. 


가톨릭에서는 천국과 연옥, 지옥의 세 가지 개념이 있다. 그것들을 쉽게 풀이하며 함께 나누었더니 한 자매는 이제야 좀 이해가 되는 것 같다며 편안하게 웃었다.

            

난 그냥 평신도 일 뿐이다. 신부님께서 왜 나에게 이런 일을 가끔 맡기시는지 그 의중을 알 수는 없다. 모든 일에 다 그러하듯, “예” 하고 답을 했으니 그 부름에 맞게 준비를 했고 준비를 하며 다시 한번 나를 되돌아보는 은총을 흠뻑 받았다. 


어젯밤에는 책상에 앉아서 리허설 비슷한 것도 해 보았다. 이런 준비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날 묵상할 수 있었다. 이 미천한 우리가 무엇이기에,  우리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으셨을까.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구원 사업을 이루어내셨을까. 사순절 동안 나의 모습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미사 중 뉴멕시코에서 원주민을 위한 사목과 피정의 집을 운영하시는 소피아 수녀님이 짧은 강론이 있었다. 사마리아 사람과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를 하시면 자신의 아픔을 꺼내 놓으셨다. 그 고운 미소 속에 담겨 있던 그분의 아픔을 꺼내 놓으신 용기도 주님의 사랑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친한 자매님의 아버님 선종 소식을 듣고 몇몇이 모여 연도를 바쳤다. 발병 소식을 듣고 채 두 달도 안되었고 한국을 방문할 계획을 세우던 자매한테는 얼마나 힘든 소식이었을까. 우리들의 기도가 그녀의 마음에 작은 위로라도 되었기를 바랐다.

              

마음을 모아 기도를 하고 작은 위로를 건네고 예비자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하루. 얼마나 큰 은총이 햇살처럼 따듯하게 등에 내려앉았는지 모른다. 죄 많은 사마리아 여인을, 너무나 하찮은 존재에게 이렇게 넘치는 사랑을 주시는 그분께 뭐라고 답을 드려야 할지 알 수  없다. 그냥 햇살 가득한 곳에 등을 대고 서서 ‘보시기 좋았다’는 그 말 한마디만 되뇐다. 따듯한  사랑이 가득 내려앉는다.  따뜻함은 온몸으로 전해져 손끝까지 따뜻하다. 따뜻해진 손으로 자매님들의 손을 잡는다. 


이 따스함이 그들에게도 전해 지기를. 전해 진 따스함은 사랑이 되어 오래오래 간직되기를… 마음 바구니에 가득 넘치는 은총을 받아 들고 가슴이 벅차다. 이 은총의 여울, 조금씩 꺼내보며 오래도록 감사한 마음 잃지 않기를 기도하는 주일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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