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을 살았어도 여전히 모르는 미국의 문화들
시청에서 온 우편물을 받았다. "뭐지?" 하며 열어 보았더니 가게 건물 밖의 조경에 관한 것이었다. 시 조례에 따라 건물 실외 조경을 보충하라는 안내였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시청 조경과의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 말에 따르면 건물이 지어질 때의 조경 마스터플랜이 있었고, 그 계획에서 어긋나면 안 된다는 것이니 계획에 맞게 보강을 하라는 것이었다.
지금 건물이 지어진 건 5년 전쯤이다. 첫 해엔 그런대로 잘 자라는 것 같았던 나무들과 오래 살이 꽃과 덤불들이 해를 거듭할수록 비실 거렸고, 나의 한국행이 잦아지며 손볼 시간이 없게 되자 반이상이 죽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흉했던 죽은 나무와 덤불들은 뽑아냈고, 단정하게 관리를 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작년 가을엔 잔돌들과 멀취(mulch 뿌리 덮개)들로 잘 덮어 놓았는데도, 시 조경과에서 보기에는 이웃들과의 조화에서 맞지 않는다는 것이 설명이었다.
경고장에 따르면 시일 내에 처리가 안되면 시 조경과에서 임의로 처리하여 건물에 부채가 있는 걸로 명시된다 되어 있었다.
일단 동네에서 가장 크고 종류가 많은 소매상 식물원을 찾았다. 기록해간 나무와 덤불, 꽃의 이름을 컴에 쭉 넣자, 예산서가 프린터 되어 나왔다. 9890불, 거의 10,000불에 가까운 가격이었다. 그것도 흙과 인건비를 제외한 순수 플랜트들의 값만이…두 번째 ‘깜놀’이었다. 시간도 없고 안 하고 버틸 재주도 없고, 울며 겨자 먹기로 주문을 했다. 다행히 배달이 된다고 하여 날짜와 시간을 정해 주었다.
배달된 나무와 덤불, 꽃들을 보며 주말 내내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확 들었다. 200그루가 넘는 것을 우리끼리 심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남편이 빠르게 함께 일해줄 사람을 구해주었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조감도를 보며 일일이 묘목이 심긴 화분을 놔주어야 했고, 구멍은 충분히 깊게 팠는지, 구멍을 파면서 생긴 흙들을 치워 주며 영양 흙은 충분히 넣었는지, 나무를 심은 윗부분은 충분히 덮었는지 일일이 확인해야 했다. 채양이 긴 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재킷을 입고 나갔지만 온 몸은 흙 투성이었다. 플랜트를 심고 나면 그 위에 흙을 덧 뿌리는 일은 남편이, 물을 주는 일은 내가 했다. 아들과 며느리는 마침 캘리포니아에 가 있어, 이 힘든 일을 면했다.
미국에 이렇게 오래 살았는데도 아직도 모르는 것들이 있었구나 싶다. 내 건물 주위도 내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조경조차도 이웃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기 위해 누군가의 수고가 있어야 한다는 것도. 건물 하나하나의 조감도가 실외의 조경도까지 포함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 모든 것이 예리하고 섬세한 시선과 전문성에 의해 이루어지는 동네들. 그 동네들이 모여 도시를 이룬다. 전문가가 만들어 놓은 조감도에 의해 건물 주위에 봄은 다시 심어졌다. 우리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기를 바라며 피곤을 풀기 위해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근다. 아주 오랜만에 노동의 수고를 다시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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