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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은달 Mar 12. 2023

출근하기 싫습니다.

일요일 저녁


일요일 오후 5시가 훌쩍 넘었다. 딱히 뭐 한 것도 없는데 주말은 롤러코스터처럼 빠르게 질주하고 평일은 회전목마처럼 느리게 돌아간다.



예전에 월요병을 치료하는 방법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기억나는 치료법이 몇 개가 있는데 세 가지 정도만 소개하자면 이렇다.


첫 번째, 직장을 그만둔다. 월요일에 출근할 곳이 없으면 걸릴 월요병도 없다. 당장의 생계보다 출근이 더 큰 일이라면 일단 그만두는 것을 추천한다.


두 번째, 퇴근 후의 행복을 미리 심어둔다. 퇴근하고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간다든지, 좋아하는 사람과 약속을 잡는다거나 진짜 좋아하는 야구팀 경기를 보러 가는 것처럼 무엇이든 좋다. 행복한 일을 미리 준비해 두면 정해진 시간을 견딜 수 있다. 이른바 <어린 왕자> 여우 전법이다


말하자면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더욱더 행복해지겠지. 4시가 되면 나는 네가 너무 보고 싶어 져 안절부절못할 거야. 이런 행복이야말로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

- 생떽쥐베리 < 어린 왕자 > 중에서



세 번째, 일요일에 출근한다.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여기엔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 주말 내내 늘어져있던 육체와 정신으로 월요일을 맞이하면 마치 준비운동을 하지 않고 경기장에 오르는 운동선수와 같다. 일요일에 출근을 해서 몸과 마음을 예열시키면 월요일에 대한 부담이 덜어진다는 이론이다.


세 번째 이론은 아마 사장님이 만드신 게 아닐까 의심이 든다. 나는 일요일에 출근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토요일 점심부터 우울하다.




출근하기 싫은 이유가 뭘까. 내가 사장이면 매일 출근이 하고 싶을까.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으면, 내 적성에 딱 맞는 일을 하면 매일 콧노래를 부르며 출근할 수 있게 될까. 일요일 밤에는 마치 소풍 가기 전 날밤의 아이처럼 출근할 생각으로 설레 잠 못 드는 날이 올까.


하루 최소 9시간을 직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60살에 은퇴한다 가정해도 30년을 일해야 한다. 이 긴 시간을 일하면서 매일매일 행복해 미칠 것 같다면 도파민 회로가 고장 난 거다.

심지어 내 적성에 딱 맞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고, 나와 손발이 척척 맞는 동료와 일할 확률도 거의 없으며, 보통 업무는 한 번에 몰리고 상사와는 충돌하기 마련인 생계의 장에서 스트레스받지 않고 일을 한다는 것 미션 임파서블이다.


산업화된 가축사육 시스템에서 닭들은 몸이 꽉 끼는 케이지에 갇혀 사료만 먹다 도축된다. 태어나서 햇빛 한번 본적 없이 날기는커녕 제대로 걸어보지조차 못한 닭들은 감기를 달고 산다. 밀집사육 시스템이 없다면 갖은 전염병도 없고 매해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수십만 마리의 닭을 죽일 필요도 없다.


나는 가끔 저 닭들의 처지가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성냥갑 같은 건축물에 밀집해서 일을 하는 인간들도 병을 달고 산다. 현대인들에게 월요병은 평생 달고 살아야 하는 고질병일지도 모른다.


월요병 때문에 회사 때문에 출근 때문에 너무 힘들다면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거나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거나.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고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기 위해선 인내가 필요하다. 둘 다 어려운 일이다.


나는 좀 용기가 없고 인내심이 없는 사람이라 출근이 지옥이다. 이 지옥에서 탭댄스를 추는 방법을 일요일 저녁마다 궁리 중이다.



나는 살아 있는 인간 실험실이자 시험장이었던 강제 수용소에서 어떤 사람들이 성자처럼 행동할 때, 또 다른 사람들은 돼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내면에 두 개의 잠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중 어떤 것을 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본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
- 빅터프랭클 <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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