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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은달 Mar 10. 2023

내향인 공무원

먹고살기 힘들다


나는 보통 표정이 없고 말도 별로 없다. 생각이 많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보다는 한 가지에 몰두할 때 행복을 느낀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잘 알지도 못하는 무리 속에서 겉도느니 친한 친구 한두 명과 마음 편히 이야기 나누는 것이 좋다. 나만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런 시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걸어 다니는 시체, 즉 좀비가 된다.


분석 심리학의 창시자인 칼 융이 성격에 따라 내향인과 외향인을 처음 구분했다. 그는 자신의 판단 기준과 주관이 뚜렷한 사람을 내향인이라 했고, 주변인의 판단과 외부의 정보를 행동의 기준으로 삼는 사람을 외향인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자신의 내면이 자기를 향하느냐, 외부를 향하느냐로 구분된다.

- 조우관 < 예민한 너를 위한 까칠한 심리학 > 중



공무원 하면 사교적이고 생기발랄한 외향인보다는 차분하고 조용한 내향인들을 떠올리기 쉽다. 나도 그랬다. 그래서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공무원이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무원이야말로 외향인에게 적합한 직업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공무원의 인사와 승진에는 정치력이 중요하다. 윗분들은 조용히 묵묵하게 일만 하는 직원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회식자리에서 호쾌하게 소맥을 들이키며 국장님 과장님 기분을 맞춰주는 직원은 뇌리에 남는다.

물론 티 안 내고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직원을 밀어주는 상사도 있고, 아무리 정치질을 해도 유리한 보직 하나 받지 못하는 직원도 있다. 그런데 공무원 업무라는 게 군계일학이 되어 독보적인 일잘러가 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업무 처리 능력이 고만고만하다면 외향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이 유리한 게 현실이다.


모두가 ‘네’를 외칠 때 ‘아니요’를 외칠 수 있는 사람, 모두가 자장면을 주문할 때 볶음밥을 주문할 수 있는 사람은 외향인이 아니라 오히려 내향인이다. 외향인이 자신의 의견을 더 잘 피력할 것 같지만, 실은 내향인이 남들의 의견에 따르지 않고 자신의 느낌과 생각에 더 예민하며 자기주장이 강하다. 물론 이것이 덜 사교적인 이유라고 말한다면 조화와 동화의 뜻이 엄연히 다름을 배울 필요가 있다.

 - 조우관 < 예민한 너를 위한 까칠한 심리학 > 중



조직이 많이 바뀌고 있다고는 하지만 공무원 집단 내에서 개인에 대한 이해나 배려는 여전히 부족한 편이다. 나는 어지간하면 점심은 혼자 먹는다. 점심시간만이라도 세상의 갖은 소음, 불만, 부정적인 뉴스에서 멀어져 충전할 시간을 갖는 것이다. 지금 일하는 사무실은 파티션도 없이 긴 책상에 직원들이 나란히 앉아 있는 구조다. 여자화장실 칸이 아니면 혼자만의 시간을 조금도 가질 수 없기에 점심시간만이라도 사수한다.

유별나다고 욕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어쩔 수 없다. 나에게 개인시간은 고래가 숨구멍을 열어놓고 물줄기를 뿜어내는 시간과 같다. 죽지 않기 위해 살기 위해 나는 나만의 숨을 쉰다. 나는 멋쩍어하지 않는 내향인이다. 조근조근 할 말은 다 하는 좀 성가신 내향인이다.



때는 오전 11시 반, 계획대로라면 두 시간 전부터 일을 시작했어야 한다. 하지만 그래보려고 발버둥을 쳤다 한들 좌절하고 말았을 것이다. 거의 쉴 새 없이 전화벨이 울리고, 아기는 울어대고, 바깥의 길에선 전기드릴로 무언가를 뚫어대고, 계단에선 돈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발소리를 쿵쾅거리며 오르내렸던 것이다.

- 조지오웰 < 나는 왜 쓰는가 > 중



위 글은 조지 오웰이 서평가로 지내면서 그의 하루를 묘사한 글이다. 나는 이 글을 읽는 순간 공무원의 오전 일과가 떠올랐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해서 차분하게 일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공무원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직업이다. 아니면 전화와 수시로 찾아오는 민원 응대 업무가 없는 직렬을 잘 찾아서 응시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공무원 사무실은 보통 콜센터를 방불케 한다. 신고 전화, 문의 전화, 컴플레인, 잘못 건 전화로 매일 전화기 불이 난다. 찾아오는 사람도 많다. 보통 필요한 서류가 있거나 신청 혹은 신고할 것이 있거나 문의사항이 있는 경우다. 가끔 직접 대면하여 불만을 토로하는 민원인이 있다. 동사무소에서 혹은 전화 통화로도 해결이 안 돼서 시청까지 온 거다. 주의하자.




이번주 내내 전화와 민원, 보고와 회의, 출장과 점검에 시달린 나는 지금 파김치가 되었다. 그 좋아하는 글도 한 줄 쓰지 못할 만큼 지쳤다.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 말을 많이 하는 것, 하루종일 사람들 틈에 섞여있는 것, 갖은 소음과 방해로 정신이 산란한 것. 이 모든 것이 나에겐 혈관에 퍼지는 독과 같다.


역시 내향인은 공무원에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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