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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은달 Sep 13. 2023

날카로운 개고기의 추억



삼복더위는 축산물 담당자들의 업무 성수기이다. 날씨가 덥고 습한 만큼 축산물 위생 관리가 어렵기 때문에 위생점검과 민원 업무가 늘어난다. 찌는 듯한 무더위에 가장 난감한 민원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개고기'이다.


개는 축산법으로는 가축이지만 개고기는 축산물 위생관리법상 축산물에 속하지 않는다. 개고기는 식품공전에 명시된 원료가 아니기 때문에 음식으로 볼 수 없다는 의견과 육견을 먹는 것은 일종의 풍습으로 먹을 권리를 존중해줘야 한다는 의견은 아직까지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법령이 만들어질 수 없고, 법으로 정해진 것이 없으니 공무원은 민원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민원 접수를 받아 현장에 나가기는 하지만 개고기를 팔지 말라는 말도, 맘껏 드시라는 말도 못 하고 어정쩡히 서있다 오는 것이 축산물 담당 공무원의 현실이다.






나는 88년생 서울올림픽 베이비이다. 88 올림픽은 전 세계인들이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던 시절, 625 전쟁으로 쑥대밭이 됐던 최빈민국이 일구어낸 역사적 쾌거였다. 이유 없이 들뜨고 왠지 자신감이 넘치던 올림픽 버프에 뜬금없이 철퇴를 맞은 업종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개고깃집이다.

80년대만 하더라도 복날에 개를 잡는 것이 추석 때 송편 빚는 것만큼이나 일상적이고, 사나운 개를 보면 된장을 발라버리겠다는 다소 과격한 농담이 통하던 시절이었다. 이런 시기에 정부는 올림픽을 앞두고 대대적인 개고기 소탕 작전을 벌이게 된다. 외국인들이 보기에 지나치게 야만적이고, 쉽게 말해 '후진국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당시 대한민국은 이미 86 아시아 게임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아시아 국가들에 한 차례 충격을 안겼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놀랍도록 발전된 서울을 보여줄 절호의 기회에 야만인처럼 보여서야 되겠는가.

때맞춰 프랑스 유명 배우 브리짓 바르도가 개고기 식용 문화가 야만적이라며 대한민국을 집중 공격하기 시작했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먹을 게 없어 개고기를 먹었던 대한민국은 어떻게든 과거를 세탁해야 했다. 이른바 '개고깃집 정비 사업'이 대대적으로 시행된 것이다. 서울에 있던 개고깃집들은 외곽으로 밀려났고 개고기는 보신탕이라는 말로 바뀌었다. 언발에 오줌누기 식으로 이루어진 주먹구구식 행정의 후유증은 지금까지 개고기를 둘러싼  첨예한 대립으로 남았다.






말복 더위가 지나니 개고기 민원이 사그라들었다. 올여름도 이렇게 어정쩡하게 넘어갔다.


내 나이가 만으로 35살이니 88 올림픽을 치른 지도 어느새 35년이 흘렀다는 뜻이다. 마치 불꽃놀이가 끝나고 그 잔해가 남은 여의도 한강공원처럼 세계인의 축제가 끝난 지 3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대한민국에는 잔해가 남았다.


나는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수의사라서가 아니라 개고기 말고도 먹을 게 많은 세상에 운 좋게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 취향과는 별개로 개고기를 먹는 것이 동물학대라면 모든 육식이 학대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그렇다고 개고기를 먹는 것이 전통이라기엔 과연 것이 온고지신해야 할 식문화인가 의문이 든다. 개고기를 먹느냐 먹지 않느냐는 몬테규 가문과 캐퓰렛 가문 사이만큼이나 골이 깊고, 덴마크 왕자 햄릿의 고뇌만큼이나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이다.




육식을 하는 이상 그 대상이 무엇이냐에는 전혀 차이가 없습니다. (중략) 개 식용 종식은 다른 문화권과는 관계없이 합의를 이뤄 나가야 하는 문제입니다. 외부의 시선이 시야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그에 의존해서만은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 제인 구달, 2022년 언론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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