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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은달 Feb 06. 2023

가끔은 내가 인공지능이었으면 좋겠어

     

  오늘은 민원인과 전화 상담을 하다가 언성을 높였다. 내가 수차례 설명한 내용을 민원인은 들은 적이 없다며 화를 냈다. 민원인은 내용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은 나에게 분개했고, 이미 여러 번 같은 내용을 설명한 나도 억울해 미칠 지경이었다.


  두 명의 억울한 사람 하나의 전화선. 이런 줄다리기는 마치 드라마 <오징어 게임>과 같다. 한쪽이 줄을 놓아야만 끝이 난다. 계속 붙들고 있으면, 이러다 다 죽는다.      


  나는 공무원이기에 먼저 줄을 내려놓고 사과를 드렸다. 여전히 원통하다. 거칠게 수화기를 내려놓고 씩씩거렸다. 한참을 씩씩대다가 보면 감정이 가라앉는다. 가만히 살펴보 나도 잘 한 건 없다.



  사람은 내가 아는 걸 다른 사람도 다 알거라 착각한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말이 딱 맞다. 모르는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다. 그러니까 나는 나대로 설명을 했을 거고, 민원인은 그 설명을 설명으로 듣지 못했을 거다. 황희 정승 말마따나 나도 맞고, 너도 맞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민원업무에도 챗봇이 도입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한다. 인공지능은 공무원 업무에 최적화되어 있다. 그들은 인간처럼 성마르지도 않고 지루해하지도 않는다. 업무의 보람이나 의미 같은 것을 찾지도 않는다. ‘내가 이런 일 할 로봇이 아닌데’라고 생각할 로봇이 어디 있겠는가. 다른 팀 로봇과 자신을 비교하며 괴로워하는 로봇도 없고, 야근을 하는 자신을 비관하는 로봇도 없고, 민원인과 언성을 높이는 인공지능은 더더욱 없을 테다.



  가장 기계적인 것이 가장 친절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나는 기계가 아니라서 똑같은 설명을 여러 번 하면 짜증이 난다. 주말에 갑자기 비상근무를 하게 되면 짜증이 난다. 한겨울에 손을 호호 불어 가면 제설 작업을 하면 짜증이 난다. 내가 한 일도 아닌데 내 책임이 되면 짜증이 나고, 일을 못하는 다른 직원의 일을 대신하면서도 월급은 똑같이 받을 땐, 짜증이 아니라 화가 난다.     



 회사에서는 로봇처럼 살지 못해 힘들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인간이라 먹고살기가 힘들다. 인간이기에 실수를 하고 인간이기에 감정에 휘둘리고 인간이기에 좌초한다. 휴머니즘을 장착한 인간으로 산다는 건 인생의 숙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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