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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은달 Jun 07. 2024

돈과 직장 생각에 뇌세포가 터질 것 같아서 쓰는 글


갑자기 내가 위험업무 수당 부정수급자라며 지금까지 받았던 돈을 모두 토해내란다. 달라고 한 적 없는 수당, 받는지도 잘 몰랐던 수당. 줄 때는 매달 5만 원씩 야금야금 주더니 토해야 하는 돈은 백만 원에 육박한다.



나는 돈을 벌려고 일을 하는 걸까 돈을 쓰려고 일을 하는 걸까. 일 한다는 핑계로 스트레스받았다는 이유로 너무 많은 시발비용을 써왔다. 이렇게 다시 돈을 환수해야 하는 일이 생길 줄도 모르고.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은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속 편한 생각으로 살았다.



공무원은 지구에 존재하는 가장 안정적인 직업이라고들 한다. 나는 그 가장 안정적인 일에 종사하고 있는데 불행이라는 놈은 내 뒤통수를 후려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불운이 잘못한 것은 없다. 세상은 확실지 않은 것들 투성이인데, 내 인생은 틀림없을 것이라 믿는 모순덩어리인 내가 잘못이다.



돈이 없으면, 벌면 된다. 세상이 너무한 게 아니다. 안이했던 스스로를 자책하고 싶지도 않다. 모든 불행과 불운을 막아내겠다고 골키퍼처럼 양팔과 양발을 쫙 벌리고 서있지만 소용없다. 불행은 스트라이커가 차는 축구공처럼 오지 않고 끈적한 여름날을 식히는 장맛비처럼 내린다. 비가 내리면 맞아야지 빗방울을 피할 수가 있나.






나는 공무원을 하기 전엔 동물병원에서 일을 했었다. 예전에는 임상수의사와 공무원의 임금 차이가 이렇게 심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배로 차이가 난다.


임상수의사는 돈을 많이 받는 대신 체력적으로 힘들었고 생명을 다룬다는 부담이 극심했다. 공무원은 상대적으로 월급이 적지만 매출에 대한 압박에서 자유롭고 죽음과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다.


나는 내가 돌보는 환자가 죽으면 내 안의 무언가도 같이 죽곤 했다. 그게 싫어서 공무원을 하고 있지만 가끔씩 뒤를 돌아본다. 내 사명을 회피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태어난 이유, 청춘을 공부에 바친 이유, 전쟁터 같은 동물병원에서 치열하게 일했던 이유. 그게 단지 일신이 편하고자 그뿐이었을까.


사람마다 직업을 택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게 돈이든 명예든 자아의 실현이든,  뭐든 나쁠 건 없다. 사람마다 직장을 택하는 이유도 다양하다. 그게 연봉이든 워라밸이든 사내문화든 뭐가 됐든 좋다. 그게 인생의 우선순위나 가치관과 궤를 같이 한다면 말이다.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도 10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혹은 그 일을 하지 않는지 잘 모르겠다. 이 일을 하면서도 저 일을 돌아보고, 이 직장에 있어도 저 직장을 기웃거린다.


소명도 중요하고 돈도 중요하고 명예도 중요하고 워라밸도 중요하다. 결국은 이도저도 아니게 된다. 여러 개를 만족시키려다 보니 하나도 제대로 충족하지 못한다.


백마 탄 왕자님이 아니라 백마 탄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스티브 잡스가 말했던 좋아 미쳐서 하는 일, 그 과정이 죽을 만큼 고통스러워도 하고 싶던 일이기에 그마저도 참고 밀고 나갈 수 있는 일 말이다. 워라밸이 박살 나도 괜찮을 정도로 내가 살아있음을 이곳에 나의 사명이 있음을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음을 느끼게 하는 일 말이다.


평생 그런 일을 찾을 수 없으면 나는 무엇으로 이 텅 빈 삶을 채우며 살아야 할까. 대가 없이 누군가를 도우는 일이 해답일 수 있다.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어쩌면 유일하게 충만한 삶일지도 모른다.



장미가 없는 꽃집에서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삶은 비참하다'라는 카토리 싱고의 대사가 있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나 자신으로 나를 아끼면서도 기꺼이 타인을 도울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




주저리주저리, 그냥 돈 환수당할 생각에 암담해서 뇌에 있는 모든 글자를 찍어내고 있다. 이런 개그지같은 세상. 근데 어쩌면 가로 막을 일을 호미로 막아낸 걸지도 모른다.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두운 거라면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게 안 좋은 것만은 아니다. 뉴진스님이 말했듯 얼마나 더 잘 되려고 이렇게 힘들까,라고 생각해 본다.


'인생은 비스킷통과 같아서 처음부터 좋아하는 맛을 다 먹어버리면 나중엔 싫어하는 맛만 남는다. 지금 겪어두면 나중에 편해진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서 미도리가 했던 말인데 이 역시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그런 느낌, 그런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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