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맞수 열전> 그 뒷이야기 02

나라를 위한 애국, 나라가 원한 애국 - 하세가와 데루 vs 오노다 히로

by 역사교사의 나날들


아마 개인적으로는 가장 애착을 가지는 주제가 아닐까 싶다. 동아시아사 수업을 하면서 중일전쟁과 애국 문제를 결부시켜 다루는 방향으로 구상하였던 하세가와 데루 vs 오노다 히로 수업은 마치 나의 시그니처 수업처럼 되었던 것 같다.


해당 수업 경험을 전국역사교사모임 회보지, 학술지 논문의 수업 사례, 한중일 평화교재 실천 교류회 발표문 등 이래저래 다양한 글들로 생산하기도 했었다. 이 브런치 공간에도 전국역사교사모임 회보지에 투고되었던 내용의 글을 포스팅한 적이 있다.


한 번은 교무실에 앉아있는데 구미의 한 고등학교 선생님께서 해당 수업 이야기를 모임 회보지에서 읽었다며, 수업 이야기가 참 재미있었다고 학교로 전화까지 주신 일도 있었다. 나에게는 그래서 참 고맙고, 의미있는 주제이다. 이 책의 저자 중 한 분도 이 주제로 수업을 해보시고 학생들이 재미있어했다고 말씀을 해주신적도 있다.


해당 주제의 부제인 '나라를 위한 애국, 나라가 원한 애국'은 동아시아사 수업 때 하세가와와 오노다의 애국을 평했던 한 학생의 워딩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그 친구는 하세가와 데루의 애국을 나라를 '위한' 것으로, 오노다 히로의 애국을 나라가 '원한' 것으로 해석하였는데 운율도 있고, 꽤 적절한 해석인 듯하여 제목에 차용하였다. 당시 내 기억이 맞다면, 타투이스트가 꿈이었던 친구였는데, 잘 지내는지 모르겠다. 혹시 이 글을 본다면 고마움을 전한다.


사실 세상 아래 완벽히 독창적인 것은 없는지라.... 하세가와 데루에 대해서는 처음 동아시아사 수업을 맡았던 2013년, 중일전쟁 당시 일본인으로서 중국에서 반전방송에 참여했다는 2줄 정도의 서술을 보고, 자료를 찾기 시작하던 중 이동욱 선생님의 수업 자료가 많은 도움을 주었었다. 이전에 참여했던 작업이었던 <역사 선생님이 들려주는 친절한 동아시아사> 책에서도 하세가와 데루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사실 이 주제는 다음 번에 소개 할 주제였던 박열 vs 가네코 후미코 주제와 합쳐질 뻔 하기도 하였다. 하세가와, 류런 부부 vs 박열, 가네코 후미코 부부 라는 주제가 될 뻔 했던 것이다. 아마 국가를 넘어선 연대와 저항을 몸소 보여준 부부 맞수로서 다루어도 꽤 재미있는 구도였을 것 같긴하다.


한중일 평화 교류 실천 교류회에서 하세가와 vs 오노다 수업을 발표했었는데, 발표문을 미리 본 일본의 한 선생님께서 하세가와 데루 평전을 사서 나에게 선물로 주셨었다. 석사 때 이후로 일본어를 거의 전혀 보지 않아 지금은 히라가나조차 헷갈리는 상황이고, 사실 이 책을 받았을 때도 일본어는 거의 하지 못하는 수준이었어서 대략 한자 위주로만 살펴보던 책이었는데, 이 책 때문에 하세가와 데루를 소재로 중국과 일본의 합작 드라마가 제작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에도 하세가와 데루의 '애국'을 기리는 많은 사람들이 일본과 중국 내에 있다는 사실도 이후 여러 자료를 통해 알게 되었다. 하세가와 데루는 중일연대의 상징으로서도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망향의 별.png 하세가와 데루의 삶을 다룬 중일 합작 드라마 1980년 <망향의 별> 중 한 장면. 오른쪽이 하세가와 데루 역을 맡은 일본 배우 구리하라 코마키이다.

그의 남편인 류런도 참 사연이 많은 듯하다. 만주국 국비 유학생 출신으로 일본에 유학을 왔으나 일본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활동들을 하였고, 류런이라는 이름도 사실 가명이라고 한다. 그는 하세가와를 만나기 전 사실 원래 부인이 있었다고 한다.

망향의 별.png 자무쓰 시에 위치한 하세가와 데루와 류런의 애국열사릉. 왼쪽은 하세가와 데루의 딸 아사코이고 오른쪽은 배우 구리하라 코마키이다.

오노다 히로의 경우에는 학부 시절 일본 근현대사 강의 때 들었던 두명의 패잔병의 이야기가 머릿 속에 맴돌아 이를 다시 검색하다 보다 명확히 알게 되었다. 오노다 히로 외에 내 기억 속에 있던 또 다른 패잔병은 요코이 쇼이치였다. 이 인물은 괌에서 패잔병으로 숨어지내다가 1970년대가 넘어가서야 발견되었다. 그러나 오노다 히로와는 사뭇 다른 점이 요코이의 경우는 어떤 신념보다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숨어서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요코이 쇼이치.jpg 또 다른 패잔병 요코이 쇼이치. 괌에서 발견되었다. 일본 언론은 오노다와 그의 만남을 추진하였으나 '천황께서 주신 칼로 땅을 팠다'는 이유로 오노다가 요코이를 만나는 걸 거절했다.

오노다 히로에 대해서 검색을 하면서 '오노다 재단'에서 운영하는 오노다 자연학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오노다가 '교육인'으로서 문부성의 상도 받은 사실을 오노다 재단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구글 번역기의 힘). 그리고 그를 소재로 한 '종전' 기념 다큐멘터리들이 일본에서 제작되곤 했던 사실도 알게 되었다.

오노다 10000일.jpg 영화 <오노다, 정글에서 보낸 10000일> 포스터. 서구 특유의 오리엔탈리즘과 맞물리며 필리핀 원주민의 시각과 전쟁에 대한 반성이 결여되었다고 비판받기도 하였다.

책 작업 후반에 일본 패잔병에 대해 다룬 두 개의 영어 단행본을 조금 살펴보게 되었는데, 여기서 '나카무라 데루오'라는 오노다 히로보다 몇 달 더 늦게 1974년 인도네시아 지역에서 '항복'한 진짜 '마지막 황군'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인물을 너무 늦게 알게 된 것이 참 안타까웠다. 이 인물이야말로 동아시아 지역의 경계라는 경계는 모두 걸려있는 인물이었다. 이 인물은 일본제국군이었지만 대만 원주민 출신이었다. 식민지인 출신으로서 차별을 받기도 하고, '같은' 대만 출신의 일본제국군들에게도 '원주민'으로서 차별을 받은 흔적이 보이기도 한다. 그가 발견되었을 때 오노다 히로만큼 이슈가 되지 않았던 것도 그의 출신 때문이었고, 그는 식민지인이었기에 적절한 '보상'도 받기 힘들었던 것 같다. 결국 그는 대만 쪽으로 귀국하게 된 듯 하다.


참 재미있는게, 대만 쪽 정치인들은 이 인물이 일본제국군으로서의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 때문에 이슈화되는 것이 좀 부담스러워했음에도 일본으로부터 보상을 받지 못하자 국민들과 함께 기금을 모아 나카무라에게 주었다고 한다.

나카무라테루오.jpg 정글에서 나온 나카무라 테루오. 화환을 걸고 있지만 어리둥절한 표정이 가시질 않는다.

책에서 이 사람의 아주 개인적인 개인사도 다루고 있었는데, 이 사람이 원래 부인이 있었는데 부인은 당연히 남편이 죽은 줄 알고 새로운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가 돌아오면서 문제가 발생했고, 그 원주민 사회에서 사람들이 새 남편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주겠다고 압력을 넣으면서 결국 나카무라와 원래 부인이 같이 살게 되었다고 한다.


만약 이 인물을 작업 초반 경에 알게 되었다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하세가와 데루, 류런 vs 박열, 가네코 후미코로 가고 오노다 히로 vs 나카무라 테루오 패잔병 시리즈로 갔어도 좋았을 것 같다. 칼럼으로 요코이 쇼이치를 다루어보고. 또 국적과 국가를 뛰어넘어 제국주의에 저항한 부부 역사인물을 발굴해서 다루었으면 좋았었겠다고도 생각이 든다.


이 주제에 구상했었던 칼럼은 '안우생'이었다. 안중근의 조카이기도 하고, 에스페란티스트이기도 했던 그는 에스페란토어를 통해 하세가와 데루와 간접적인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세가와를 칭찬하는 시를 에스페란토어로 쓰기도 했었으니. 안우생은 1930년대 후반 경부터 임시정부와 관련하여 독립운동에 관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언어적 능력이 매우 뛰어나 외교적인 부분에서 힘썼던 것 같다. 해방 이후에도 백범 김구 진영에서 활동했다가 잠시 잠적하여 사람들이 납북 내지는 죽음을 예상했었는데, 북한 쪽으로 가서 활동한 것이 드러났다. 아마 이 부분 때문에 국내에서는 약간 생소한 인물이 아닐까 싶다. 현재 북한 애국열사릉에 묻혀있다고 한다. 그러나 칼럼의 개수를 맞추다보니 탈락한 이야기라 못내 아쉽다.

안우생 묘.jpg 북한 애국열사릉의 안우생 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