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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수 Aug 21. 2021

가장 기뻤던 날의 기억

엄마의 암 선고


언젠가 친구들과 기억에 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최초의 기억은 무엇인지, 가장 기뻤던 기억은 무엇인지 따위의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나는 가장 기뻤던 날을 꺼내려니 도통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확실히 기쁨과 행복엔 인색한 편인가 싶었다. 기쁨 중에 제일이라 하기엔 소박한 일화들만 머리를 스쳤다. 친구들은 다들 저마다 자기 경험을 꺼냈다. 한 친구는 회사에 침을 뱉고 그만두던 날, 자신이 가장 싫어하던 것에서 벗어난 때가 바로 그날이었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그 이야기에 한 사건이 떠올랐다.


  나의 대학생활은 심심하고 고단했다. 학비와 용돈을 스스로 충당하겠다며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같이 일을 하는 친구들은 월급을 모아서 방학 동안 배낭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살림도 마음도 적당히 가난했던 나에게 한 두 달의 일탈은 사치스러운 이야기였다. 나의 적당함은 일주일의 기차여행을 허락하는 정도였다. 어디를 다녀올까 이렇게 저렇게 궁리하고 있는데 엄마가 차분히 말을 걸었다. 건강검진 결과가 좋지 않단다. 폐암이라고 큰 병원에 가보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육친의 덕이 없다더니 팔자는 틀리는 법이 없구나.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는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된 사람처럼 자신은 물론 내 신변까지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학교는 계속 다닐 수 있겠냐는 이야기부터, 엄마의 아동복 가게를 내가 봐야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엄마의 병원도 내가 따라다니길 바란다는 말을 덧붙였다. 내가 열아홉이 된 이후로는 대학 입학도 졸업도 알아서 하라더니 엄마는 그제야 내 진로를 정해주기 시작했다. 군 복무 중인 귀한 아들에겐 비밀로 하라고 당부했다. 그 말에 암에 걸렸다는 엄마보다 내가 안쓰러워져 마음이 내려앉았다. 나의 마음은 이미 고아가 되어 있었다.


  내 계획은 크게 달라졌다. 아르바이트를 관두고 휴학을 해야 하나, 아니 먼저 엄마를 모시고 병원부터 가봐야 하나. 그보다 먼저 친구를 만나야겠다는 결론을 냈다. 우리 엄마가 너무 불쌍하다느니, 지금껏 혼자서 우리 키우느라 그렇게 고생만 했던 엄마가 안쓰럽다느니,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될지 모르겠다느니, 친구에게 안겨서 그럴싸한 마음들만 게워내고 위로를 받았다. 친구는 괜찮을 거라고, 암이라고 다 큰일 나는 거 아니지 않느냐는 위로를 건넸다. ‘네 말대로 큰일이 아니면 또 어떻게 하지. 적당히 아픈 엄마는 나를 얼마나 더 가난하게 만들까.’ 스스로도 차마 뱉어낼 수 없다고 여겨지는 이야기는 깊숙이 삼켜 버렸다.

  

  일을 쉬고 엄마를 따라 암센터에 갔다. 폐암이라던 엄마가 유방암 전문의와 면담을 했다. 의사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으려니 나는 뭔가 이상했다. 엄마가 전해준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들렸다.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가슴에 작은 멍울이 있어 조직검사를 요한다는 검진 결과를 폐암으로 만든 엄마의 성급함에 안도했다. 집에 오는데 오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왔다. 무슨 일 있는 것처럼 해놓고 아무 말을 안 해준단다. 나는 아니라고, 아무 일도 없다고 했다. 엄마가 괜히 관심을 받고 싶었나 보다고, 앞으로 엄마한테 마음을 더 써야 되겠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다시 내 계획들을 떠올렸다. 10년은 더 지난, 내 인생에서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일에서 벗어난, 어쩌면 기뻤던 것도 같은 이상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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