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벌한 부부의 고성식 취미생활
비가 추적추적 오는 어느 날 밤, 나는 잔뜩 긴장한 채로 당직 근무 중인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피가 막 나와… 어떡해?”
“죽었어…?”
“아니.. 아직 살아있어…거의 까딱까딱하긴 해.”
남편은 전화 너머로 벌벌 떠는 나를 진정시키며, 그냥 그것을 내버려 두라 말했다. 내일 본인이 와서 처리하겠다고. 하지만 이미 피가 범벅이었고, 벌써부터 고약한 냄새가 집을 뒤덮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게 들어온 미션은 내가 처리해야만 했다.
“진짜 하게? 내장까지 따야 하잖아.”
“… 일단 전화 끊어봐. 내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비장하게 주방으로 향했다. 내가 오늘 처리해야 할 대상은 다름 아닌 갓 잡은 광어 한 마리와 삼치 두 마리. 나는 오늘 그들의 숨을 거두고, 내장을 따 껍질까지 벗겨내야 한다. 내 인생 처음으로 날 생선을 손질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우린 사실 방생 사이즈를 제외하곤 이렇다 할 크기의 생선을 낚아본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남편도 나도 둘 다 생선을 만지거나 손질할 일이 이전까진 없었다. 둘이서 낚시할 때 누군가 입질이 온 것 같으면, 은근하게 서로의 얼굴에서 ‘진짜 잡히면 어떡하지?’라는 불안한 눈빛이 스치는 것이 그 이유다.
하지만, 우리가 생선 손질을 못한다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남편 직장동료 한 분이 직접 잡은 광어 한 마리와 삼치 두 마리를 나눠주러 들르며, 우리 집은 비상이 걸렸다. 남편은 당직이었고, 생선은 오늘 손질이 되어야 했다. 잡은 생선을 나눠주신 것도 감사한데 손질까지 부탁드릴 수도 없거니와, 그분과 계절이 좋을 땐, 일주일에 한 번씩 같이 낚시를 가는 사이인데, ‘사실 저희 생선 한 마리도 못 잡아봐서, 둘 다 생선 손질할 줄 몰라요…ㅎㅎ’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동해 자연산 생선 세 마리가 들어있는 두레박을 건네받은 내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머릿속에서는 ‘어떡하지. 어떡하지.’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이미 양도받은 이상 어쩔 수 없었다. 곧장 집으로 들어와 싱크대에 두레박을 내려놓았다. 생선들의 마지막 헐떡거림을 차마 볼 수 없어서, 나는 우비를 입고 밖으로 나왔다. 비 오는 거무스름한 저녁, 나는 마트로 향했다. 이들을 도저히 맨손, 맨정신으로 처리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목장갑과 소주 한 병을 샀다.
집에 도착하니 싱크대는 잠잠했다. 나는 긴장감에 콧김을 씩씩 뿜어대며 소주잔에 소주를 따라 원 샷 했다. 그러곤 유튜브를 세팅한 후 두 손에 목장갑을 꼈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 물러설 수도 없다. 회 센터에서 자주 봐왔던 어머님들의 절도 있는 동작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나는 식재료를 손질할 뿐이다. 나는 빠르고 확실하게 대상을 처리할 것이다.
결국, 세 마리 손질에 꼬박 2시간이 걸렸다.
자연산 광어와 삼치에서 발라낸 살은 반 주먹도 되지 않았다. 회라고 부르긴 영 어려운 형태의 잘게 찢긴 생선 살들만 남았다. 심지어 비늘과 잔가시가 자꾸만 살에 붙어대서 얼마 없는 살점을 흐르는 물에 빨래를 해댔다. 그 결과, 마트에서 마감 직전으로 파는 떨이 세꼬시회도 이 모양, 이 맛에 비하면 프리미엄 회로 대접받아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완성도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한 단계 성장한 나 자신만 있을 뿐!
30년 회 인생에, 드디어 회를 뜨는구나!
다음 날 근무를 끝내고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나는 전날의 무용담을 신나게 늘어놓았다. ‘이게 또 횟집에서 떠오는 거랑 맛이 다르다~ 회 안 떠본 사람은 상상도 못할 맛이다~’ 한참을 나의 이야기를 듣던 남편은 일어나 낚시 짐을 챙기기 시작하며 내게 물었다.
“내가 그동안 생선 처리하기 싫어서 안 잡았는데, 이제 잡아오면 여보가 손질해 줄 수 있지?”
하지만 호기롭게 집을 나선 남편은 그날 저녁도 빈손으로 돌아왔다… 다음 회 뜨기 연습은 아직 더 먼 것 같지만, 또다시 살벌한 의뢰가 들어온다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나는 전보다 더 빠르고 확실하게 대상을 처리할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