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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첸 Mar 13. 2023

1-3. 싸우는 것이 아니라고요? (스스로 생각하는법)

선생님과 학생이 말싸움하는 것을 목격한다면?


아시아인들의 특징에 대해서 들어본적이 있는가? 바로 토론을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특히 예의범절을 중요시하고 유교사상을 뿌리로 하는 대한민국에서는 다른 사람의 기분이 상할 것 같은 말을 쉽게 하지 못한다. 예의를 가지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이 너무 과하다면 자신의 의견을 내지 못하고 상대방의 눈치만 보는 소심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정확하게 내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미국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있다. 바로 토론이다. 토론이라고 하면 입론, 반론, 결론을 생각하며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나와 다른 의견이나 생각을 가진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흥분하거나 화를 내지 않는 매너를 지키는 것은 당연히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때 처음으로 미국에 가서 이러한 문화를 경험했다. 할머니가 미국에 사는 이모를 보려고 방문하는 것을 따라간 것이었다. 영어도 제대로 할 줄 몰랐지만, 여름 방학동안 한국분이 운영하시는 영어캠프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친구들을 사귀었다. 그 친구들은 한국 부모님 밑에서 자란 한국인이지만 어려서부터 미국에서 생활을 해서 영어를 자연스럽게 잘 사용했다. 나랑 비슷한 나이 또래의 형, 누나, 친구들과 미국의 놀거리를 방문하고 같이 운동을 하고 같이 활동을 하는 것이 정말 재미있었다.




 프로그램과 선생님 친구들은 너무 좋지만 매일 오전에는 영어공부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심지어 수업은 영어로 진행을 했다. 영어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선생님의 말씀을 경청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나에게 질문을 하면 멋쩍게 웃어버렸다. 그런데 오전 수업시간마다 선생님과 싸우는 친구가 있었다. 나랑 나이는 똑같은 여학생이었는데 친구들과는 한국말을 해주지만, 수업을 할때는 영어로도 말을 잘하는 친구였다. 그 친구는 선생님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으면 중간에 꼭 손을 들었다.


“선생님, 저 질문있는데요?”


당시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나는 질문이 있다는 말밖에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당돌하게 손을 들고 질문을 하는 그 여학생의 모습이 선명하다. 선생님은 여학생의 질문을 듣고 답변을 해주셨다. 그리고 다시 여학생은 선생님께 질문을 했다. 그렇게 몇 번의 대화를 주고 받다보면 선생님은 다른 학생들에게 질문을 돌렸다. 한번은 수업이 끝나고 점심을 먹으러 이동해야 되는데, 그 여학생과 선생님의 대화가 끝나지 않았다. 선생님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자신의 말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여학생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너무 버릇없이 말하는 것 같은데, 선생님한테 안 혼나려나?!


몇 번의 질문과 답변이 이어지자 그 여학생은 만족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여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부모님께 예의를 중요하게 배우고, 선생님께 순종하는 것을 배운 나에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데 저렇게까지 강력하게 말을 하지? 어떻게 선생님은 학생이 저렇게 말하는데 화를 내시지 않지? 내 머릿속으로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께 내가 가지고 있는 의문들에 대해서 한국말로 물어봤다.


“선생님, 아까 그 친구랑 무슨 말을 하신거에요? 아까 둘이 싸우시는 것 같던데.. ”

“우리가?!”


선생님은 나를 한번 쳐다보고 깔깔깔 웃으시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셨다.


“우리는 Debate를 했단다. 우리가 수업시간에 배우고 연습하는 것이 바로 Debate야”

“Debate요?”

“응, 맞아! 한국말로는 토론이라고 들어봤지? 아까 나는 그 친구와 초등학교 이성교제에 대해서 찬성과 반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단다. 각자 다른 의견을 가지고 상대방을 설득시키는거지”



그렇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지만, 필자는 토론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건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이다. 선생님의 말을 듣고 꼬치꼬치 캐묻는 듯한 질문을 많이 하는 것이 무례하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필자가 가지고 있는 편견이었다. 선생님은 그 여학생은 초등학교 저학년때부터 미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토론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말로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라고 설명해주셨다. 그때부터 그 여학생을 보는 필자의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선생님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똑부러지게 말하는 모습.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고민하고 다시 질문하는 모습. 그것은 무례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 진정으로 소통하고 있는 것이었다.




토론. 영어로는 Debate라고 하는데 그 어원은 라틴어의 ‘debattuere’에서 유래되어 ‘나누다’라는 뜻의 ‘de’와 ‘겨루다, 시합, 싸움’을 뜻하는 ‘battuere’의 합성어이다. 어원에서 알 수 있듯이 토론이라는 것의 전제는 다른 사람과 겨루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겨룬다는 것은 무턱대고 그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노력을 인정하고 나의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스포츠 시합에서도 서로의 팀에서 최선을 다해 훈련하고는 경기를 통해서 겨루는 것처럼 말이다. 다른 사람과 겨루어야 내가 어떠한 사람인지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즉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겨룬다는 표현 자체에 왠지 모를 불편함과 부담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겨루는 행위 자체는 상대방을 알아가고 진심으로 소통하는 과정이며, 무엇보다 나의 생각과 나 자신을 알아가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당연히 상대방에 대한 예의는 필수적으로 전제될때 말이다. 


앞서 필자가 언급했던 여학생의 모습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자. 그 여학생이 수업시간을 방해했는가? 선생님을 존중하지 못한 태도를 보였는가?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공격적으로 말했는가? 아니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자신의 생각을 전달한 것이다. 선생님의 생각에 무조건적으로 동의한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학생이었던 것이다.  그 여학생은 누구보다 선생님과 깊이있게 소통을 했을 것이고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정리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필자가 이 책을 통해서 전달하려고 하는 바는 바로 이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주체적으로 말하고 움직일 수 있는 아이를 만드는 것.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자신이 해야 할 공부가 무엇인지 알고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독립적인 아이. 그런 아이를 만드는 것은 바로 부모의 손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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