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와 고래, 마이어로위츠 이야기, 결혼 이야기
동화는 결혼으로 흔히 마무리된다. 이는 관계가 이어지며 이야기가 끝나는 이상적인 결말을 그린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대개의 관계가 영원하지 못하고, 끊어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관계의 종료는 슬픔과 고통이 수반되는데, 이를 어떻게 처리하냐도 중요한 문제가 된다. 영화는 이를 때로는 유머 있게 다루고, 때로는 잠잠하게 지켜보며 같은 일을 겪었거나 겪을 사람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제공해준다.
노아 바움백 감독은 관계의 종결을 가장 잘 그리는 감독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가까운 관계인 가족이 해체되는 이야기를 많이 만들어 왔다. 처음 두 사람이 만나 연결되며 어떤 행복한 순간들을 가졌는지는 영화 밖에 두고, 부부의 이혼 전후로 인물들이 겪는 감정적 변화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그 종결이 미치는 영향을 더욱 깊게 제시한다. 감독 본인이 부모님의 이혼을 겪고 성장하여 자신도 이혼을 경험한 만큼, 관련된 모든 인물의 심리를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오징어와 고래>(2005), <마이어로위츠 이야기 (제대로 고른 신작)>(2017), <결혼 이야기>(2019) 세 편은 그의 방식으로 깨어진 관계 속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혼은 가장 가까웠던 관계가 끊어지는 과정이다. 그리고 대개 이미 성숙한 어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성적인 어른으로서, 서로에게 장기적으로 상처를 덜 주는 방식으로 이혼을 선택한다. 하지만 상처 없는 마무리를 지향하더라도 늘 상처받는 사람이 존재한다. 특히 그들 사이에 남은 아이에게 상처를 남긴다. <결혼 이야기>의 아들 헨리에게도 그랬고, <마이어로위츠 이야기>의 다 큰 세 남매 대니, 진, 매튜에게도 그랬다.
<오징어와 고래>의 월트와 프랭크는 부모의 이혼 자체를 예상하지 못해서, 더욱 큰 상처를 받는다. 이혼을 선포하기 바로 전날에 가졌던 다툼도 흔히 발생하는 일로 넘겼고, 아버지 버나드의 커리어가 꺾이며 가졌던 불안함과 어머니 조안이 여러 차례 저질렀던 외도 모두 눈치채지 못했다. 둘은 다른 방식으로 방황하는데, 이는 부모의 모습과 닮았다. 첫째 월트는 연인에게 허세와 자기 과시 속에 마음대로 행동하다가, 더 매력적인 이성을 위해 그녀를 바로 버린다. 하지만 노리고 있던 이성은 아버지와 연인 관계여서 다시 옛 연인 곁만 맴돌게 된다. 지극히 자기중심적으로 관계를 바라보는 월트의 모습은 늘 자신이 부부 관계에서 애정 측면에 있어서나 경제적, 사회적 위치로나 갑이라고 인식하고 행동하던 아버지의 모습과 닮았다. 둘째 프랭크는 애정의 결핍을 성적 일탈로 해결한다. 학교 곳곳에서 자위행위를 하며 사방에 자신의 성적 흔적을 남긴다. 이는 남편 버나드에게 받는 홀대를 여러 차례의 외도로 해소하고 이혼이 결정되자마자 바로 집에 다른 남자를 데려오는 어머니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다. 둘은 보고 배운 상처를 주는 방식대로 행동하며, 자신이 받은 상처를 드러낸다.
관계의 종결 과정은 결정 때 생각했던 것만큼 수월하지도 않다. 생활 모두가 얽혀 있었기에, 이를 풀어나가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둘만의 고민으로 해결하려고 할 때는 늘 놓친 부분이 존재해서 종결 과정이 늘어지고, 법적인 수단을 썼을 때는 정이라고는 없는 결정 속에 더 큰 피해를 입는다. 당연하게도, 그 과정에서 관계의 종결을 결정한 당사자들 또한 어려움을 겪는다.
<결혼 이야기>는 찰리와 니콜이 이혼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미 별거하고 있었기에 결정은 어려움이 없었고, 처음에는 둘 다 소송 없는 깔끔한 이별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니콜이 먼저 변호사를 선임하며 법적 분쟁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칼 같은 변호사들의 모습에서 불안함을 느낀 찰리는 온건한 변호사를 통한 평화로운 이혼을 지향하지만, 소송에서 밀리자 마찬가지로 냉혹한 변호사를 선임한다. 둘은 이후 최선을 다해 상대를 깎아내리기 위해 노력한다. 아이에게는 피해가 덜 가게 하려던 목표와 달리 아들 헨리를 양육권 확보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와인 한 잔 마신 니콜을 술에 찌들어 육아에 소홀한 아내로 표현하는 등 서로에게 소소하게 가졌던 추억까지 상대를 공격하려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마침내 서로를 향해 가지고 있던 감정들을 모두 토해낼 때, 두 사람은 서로에게 영원히 남을 상처를 주었음을 깨닫게 된다. 영화 속 소송에는 승패가 존재하지만, 각자 들인 비용과 시간, 받은 상처를 생각했을 때 모두 패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관계의 종결은 흔적을 오래 남긴다. 이를 통해 받은 상처를 극복하려면 그 상처를 직접 마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노아 바움백 감독을 비롯해 많은 출연진이 이혼을 실제 경험해본 사람들인 것 또한 그 일부라고 볼 수도 있다. <오징어와 고래>에서는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상태에서 영화가 마무리되었고, 앞으로 이를 회복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결혼 이야기>의 부부도 마찬가지이다. 반면 <마이어로위츠 이야기>는 이혼으로부터 한참 지난 시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에, 마침내 인물들이 과거를 직시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마이어로위츠 이야기>의 가장 해롤드 마이어로위츠는 두 차례 이혼과 세 차례 결혼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첫 번째 부인과는 대니와 진, 두 번째 부인과는 매튜를 가졌다. 매번 새로운 가정을 만드는 사이 세 자식에게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상처가 누적되었다. 대니는 아버지가 애정을 주지 않으면서 자신을 하인 부리듯 다뤄서 상처받았고, 매튜는 반대로 아버지의 과도한 관심 속에 예술가가 꼭 되었어야 한다며 다른 방식으로 성공을 거둔 지금까지도 비꼬는 점에 상처받았다. 둘은 독립한 이후 가진 결혼에서도 불안함을 느꼈고, 그 결과로 대니는 이혼당하고 매튜는 별거 중이다. 세 남매는 오랫동안 서먹하게 지냈지만, 해롤드가 혼수상태에 빠진 이후 그를 간호하며 처음으로 가까워지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감춰둔 상처를 계속 숨길 수는 없었고, 마침내 그동안 가졌던 열등감과 멸시를 표출하며 다툰다. 오랫동안 말하지 못한 부분들을 털어놓자 뒤늦게 상처의 원인을 직시하고, 그 틈에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진의 마음도 보게 된다.
상처를 주고 상처가 남았지만, 세 영화 모두에서 관계의 종결 자체는 피할 수 없었다. 오히려 영화 속 상황을 생각해보았을 때, 관계의 지속은 더 큰 상처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인물들은 관계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미숙함 속에 격한 행동이 발생했고, 추가적인 피해를 만들었다. 그렇게 상처를 주고받은 과정은 늘 최악의 상황으로 이끌었다. 좋지 않은 마무리를 보여주는 세 이야기를 통해, 꼭 결혼이라는 가장 강한 관계뿐만이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맺을 좋은 마무리를 고민해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