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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고래 May 19. 2023

틈으로 보이는 상

알프레드 히치콕의 관음증 3부작

영화를 포함해서, 미디어를 소비하는 것은 일종의 관음증으로도 볼 수 있다. SNS를 통해서는 주변 사람들의 일상을, 예능을 통해서는 유명인들의 일상을,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서는 만들어진 인물들의 모습을 훔쳐보는 것이다. 특히 영화와 드라마는 현실과 유사한 허구의 인물을 만들어 둔 뒤 그 인물의 인식이나 동의 없이 그들의 생각, 감정, 경험에 접근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스크린 넘어 인물들을 지켜보며, 그들의 행동에서 메시지를 얻어가거나 그들의 행동을 평가하게 된다. 즉 관찰자의 역할을 맡아 안전하고 초연한 곳에서 타인의 삶을 응시하는 관음증적 체험을 한다.


이는 오랜 시각으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으로 꼽히는 알프레드 히치콕 또한 관음증이라는 테마를 영화 내에서 주요하게 활용한 바 있다. <이창>(1954), <현기증>(1958), <싸이코>(1960) 세 편의 영화는 서스펜스의 아버지가 만든 훌륭한 스릴러 영화인 동시에 관음증에 대한 요소가 담겨 있다. 타인을 훔쳐보는 장면은 세 영화 모두에서 사건의 핵심이 되고, 서스펜스를 형성하며 결과적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동시에 영화를 통해 훔쳐본다는 사실을 관객 또한 의식하게 만든다.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스포일러를 피하실 분들은 읽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이창> - 이웃을 바라보는 제프리

<이창>은 관음증 자체를 주제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사진작가 제프리는 다리 부상으로 인해 자택에서 나갈 수 없는 상태이다. 재활까지 남은 지루한 시간 동안, 그는 이창을 통해 이웃을 훔쳐보며 시간을 보낸다. 이웃 건물에는 노부부와 신혼부부가 공존하고, 매력적인 여성과 홀로 우울함에 빠진 여성이 공존하며, 성공한 가장과 성공으로 향하려 하는 음악가가 공존한다. 그중 한 사람이 실종된 것을 제프리가 가장 먼저 발견하여 살인사건의 발생을 의심하게 되고, 관객은 그의 시선을 따라 함께 범인을 추격한다.

<이창> - 관음 행위의 관객이 참여자가 되는 순간

감독은 오로지 제프리의 집과 그가 바라보는 창문만을 피사체로 제한했고, 관객은 그에 따라 제프리가 보는 시선대로 사건을 바라보게 된다. 예컨대 1층의 이웃이 혼자만의 연회를 가지는 장면을 목격했을 때 이를 우울한 사건으로 바라보는 제프리의 시선이 개입되고, 그에 따라 그 여인을 우울한 사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마찬가지로 살인범으로 의심되는 사람이 등장했을 때도 제프리의 시선에 함께 참여하며 그를 의심하고 수사에 함께 참여하며 그가 겪는 즐거움과 긴장감을 함께 체험하게 된다. 이는 관객을 관음 행위의 관객을 넘어 참여자로 만든다. 영화 속에서는 제프리의 애인 리사와 간병인 스텔라가 그 예로 직접 등장한다. 처음에 제프리의 이웃을 훔쳐보는 행위를 못마땅하게 보던 둘은 살인 사건이 의심되는 순간부터 가장 적극적인 참여자로 변한다. 영화 속 관음증의 요소들이 영화 자체가 가지는 특성과 겹치며, 관객은 행위의 참여자로서 영화의 관음증적인 특징을 인식하게 된다.


<현기증> - 호텔 창문 건너 바라보는 주디

<이창>에서 관음증이 사건을 해결하는 긍정적인 측면에서 멈춘 것과 달리, <현기증>은 집착의 시작으로 훔쳐보는 행위를 강조한다. 형사 스코티는 범인 추적 중에 발생한 사건으로 근무를 잠시 쉬고 있는 중, 자기 아내 매들린의 뒤를 밟아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받는다. 이를 수행하던 중 스코티는 매들린에게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의 죽음을 막지 못한다. 그러나 이윽고 매들린과 똑같은 외모를 가진 주디가 등장하고, 스코티는 다시 주디의 뒤를 밟는 방식으로 그녀와 가까워지려고 한다.

<현기증> - 꽃 가게에서 몰래 바라보는 주디의 모습

영화 속에서 스코티가 매들린과 주디에게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모두 훔쳐보는 장면으로 나타난다. 매들린에게는 차량으로 뒤를 밟으며 차창 너머 바라보다 사랑에 빠지고, 주디의 존재를 알게 된 뒤로는 주디가 가는 쇼핑몰, 호텔 등을 쫓아가며 틈 사이로 바라보다 사랑에 빠진다. 새로운 촬영 기법의 활용으로 널리 알려진 영화답게 훔쳐보는 장면 또한 클로즈업이나 카메라의 움직임을 통해 표현하여, 관객이 함께 몰입해 관찰자이자 공범으로 행동을 지켜보게 만든다. 영화에서는 의뢰받은 흥신소 업무의 형태에서 사적인 스킹으로 이어지는 갈수록 심화한 욕망의 형태와 엿보기에 한정된 왜곡된 욕망으로 오히려 바로 앞을 바라보지 못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에서 관음증의 증폭과 연속성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싸이코> - 구멍을 통해 바라보는 노먼 베이츠

<싸이코>는 관음증의 결과로 발생하는 비극을 보여준다. 베이츠 모텔의 주인 노먼 베이츠는 관리실 액자 뒤에 숨긴 틈으로 바로 옆 방에 묵은 투숙객들의 모습을 지켜본다. 이는 누군가가 저지르는 살인으로 귀결되며, 노먼 베이츠는 자신의 욕망에서 파생된 범죄의 흔적을 묵묵히 치운다. 영화에서 관음증은 완전히 범죄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훔쳐보는 장면 또한 <이창>에서 건물의 열린 창문 너머 바라보거나 <현기증>에서 쇼핑몰의 사람 틈으로 보는 간접적인 방식이 아니라 옆방을 훔쳐보고자 의도적으로 파놓은 구멍으로 바라보는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결과로 발생하는 살인에도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싸이코> - 모두가 함께 바라보는 첫 살인사건

히치콕은 관객의 관음증적 경험을 한층 강화하였다. 우선 노먼 베이츠가 훔쳐보는 장면을 매우 디테일하게 묘사하여 노먼의 세계로 관객을 이입시킨다. 나아가 화면에 노먼이 없을 때에도 의도적으로 관객을 관음증의 위치에 놓고 사건을 보게 만든다. 널리 알려진 샤워 중 살해당하는 장면은 우리도 모르게 폭력 행위를 목격하면서 관음하던 행위 자체에 대해 놀라도록 한다. 노먼의 시선을 따라가다가 함께 발각되는 순간은 관객 자신도 노먼과 마찬가지로 관음증적 욕망을 통해 영화를 관람하고 있음을 확인시킨다.


세 편의 영화를 연결 지어서 보면, 관객은 <이창>에서 영화의 관음증적인 특징을 인식하게 되고, <현기증>에서 그 부정적인 측면을 확인하며, <싸이코>에서 관람에 관음증적 욕망이 관여됨을 확인하게 된다. 또한 세 영화 모두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하는데, 어떤 상황에서는 그 시선이 사건을 해결하기도 하고, 어떤 상황에서는 유발하기도 하며, 어떤 상황에서는 사건의 시작과 해결 모두에 관여됨으로써 영화를 포함한 미디어의 양면적 특성 모두를 보여준다. 결국 히치콕은 미디어 소비의 관음증적 특성을 통해 관객의 수동적인 위치를 제시한다. 이는 관객이 그에 따라 끌려가며 서스펜스를 느끼는 동시에 미디어를 선택하고 소비하는 자신의 시선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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