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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월 Jul 27. 2021

임용고시, 교사, 자기 계발에 관하여

사회초년생의 성찰

나의 2020년은 수험생의 해였다. 수험생이라고도 할 수 있겠고, 취준생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나는 교육대학 4학년에 재학하면서 초등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임고생이었다. 분명 내가 교대를 입학할 때만 해도 초등임용고시는 '비교적 쉬운 고시'정도의 이미지였으나, 정작 내가 임고생이 되고 나서는 초등임용고시도 만만치 않은 시험이 되어 있었다. 90% 이하로 절대 떨어지지 않던 합격률은 전년도 60% 언저리까지 떨어졌고, 어디까지 곤두박질칠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나는 임용고시를 준비했다. 대부분의 고시가 비슷하겠지만 초등임용고시 또한 철저한 단순 암기 기반의 시험이었고, 나는 외우는 걸 싫어하는 이과 출신의 학생이었기에 임용고시에 대한 심리적 부담은 무척 컸다. 나는 암기를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않았다.


꽤나 임용고시 합격을 바라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경기도 초등임용고시에 합격하였고 현재 발령 대기 중이다. 석차 상 9월 1일 자 정기 발령이 날 것 같다. 나와 스터디를 함께한 2명을 포함한 3명이 모두 경기도 임용에 합격하였다. 사실 스터디원들은 평소에 보면 둘 다 너무 잘하기도 하고 열심히도 했어서 당연히 합격할 거라고 생각했고, 난 내가 제일 걱정이었다. 스터디에서 서로 문제를 내서 맞춰볼 때도 난 맞출 수 있는 문제가 거의 없었고, 내가 대략적인 개괄도를 겨우 겨우 그릴 수 있을 때 스터디원들은 이미 같은 내용에 대한 잔가지를 모두 그리는 수준이었다. 난 항상 스터디 내에서 부진아였다. 스터디할 때마다 나의 성취가 너무 낮아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만, 스터디원만큼만 하자!라는 생각으로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다. 결국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냥 무식하게 시험 전날까지 뭐라도 외워서 들어간 것이 내 합격에 큰 요인으로 작용한 것 같다.


임용고시 1차, 2차가 끝나고 결과가 발표될 때까지 정말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삐끗하는 순간 지옥 같은 1년을 더 보내야 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합격 확률이 높은 여자친구와의 시간이 어긋난다는 것이 너무나 큰 압박이었다. 그렇게 임용고시 공부를 시작한 2020년 2월부터 임용고시 최종 결과 발표가 있던 2021년 2월까지의 시간이 흘러갔다.


합격의 기쁨도 잠시, 생각보다 올해 2월은 바쁘게 흘러갔다. 신규교사 대상 연수를 3박 4일로 듣고, 같은 시기에 기간제 교사 자리를 알아봐야 했고 각종 서류 제출, 신체검사 등도 해야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지내다가 3월부터는 기간제 교사로 일하기 시작해서 갑자기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그냥 임용고시 결과를 기다리는 임고생 겸 대학생이었는데, 한 달 만에 신분이 사회초년생으로 바뀌었다. 기간제 교사는 보통 집 근처에서 많이들 구하는데, 나는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나의 모교에서 기간제 교사를 하게 되었다. 내가 초등학생으로 다녔던 학교를 선생님으로 다시 다니게 되니까 무척 감회가 새롭더라.


사회초년생이라고 하면 뭐랄까 사회생활에 적응하는 것을 힘들어하고, 업무적인 실수가 잦아 허구한 날 상사에게 깨지는 그런 이미지가 있었다. 나도 대학생 시절 신발가게 알바를 할 때 엄청 혼났었다. 그래서 기간제 교사 초반인 3월에는 많이 긴장했었다. 실수를 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고, 다른 교사분들과 의사소통할 때도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근무를 계속하다 보니 생각보다 나의 초등학교 교사로서의 역량은 꽤나 충분한 편이었고, 다른 교사분들도 나를 존중해주셔서 굳이 스트레스받을 필요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다른 교사분들이 나에게 이것저것을 많이 물어보시더라.


오히려 문제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의외로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교사로서의 성취보다는 칼퇴근, 수다 떨기 등을 신경 쓰더라. 수업의 질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으며 본인의 안위를 그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선생님들이 많았다. 기본적인 근태도 좋지 않았다. 물론 모든 학교에서 모든 선생님들이 이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초년생의 학교에서 이런 선생님들이 절대 다수인 것은 내게 의구심을 주기 충분했다. 1년 동안 정말 치열하게 살면서 학교에 왔는데, 그 결과물이 저런 선생님들과 같다고? 실망스러웠다. 임고생 때는 막연히 임용고시에 합격해서 교사로 일하게 되면 삶의 질이 많이 올라갈 것이라 생각했지만, 저런 선생님들을 매일같이 보고 있자니 답답하더라.


내가 마주친 현실에 안주한다면 그들과 똑같아질 것 같았고,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난 적어도 일 잘하는 교사, 수업 열심히 하는 교사로 동료 교사와 학생, 학부모에게 돋보이고 싶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출퇴근만 반복한다면 난 그 삶에 절대 만족하지 못할 것 같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게 난 내가 스스로 해본 적이 거의 없는 자기 계발을 시작했다. 규칙적인 운동하기, 운전 배우기, 토익 점수 올리기, JLPT N3 공부하기 등등. 내가 원하는 목표를 정하고 하나하나 실천에 옮겼다. 원래 나는 자기 계발 따위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런 자기 계발 목표가 오히려 내 삶을 압박하는 스트레스가 될 때도 많았다. 힘들게 출근해서 일하다가 퇴근했는데, 자기 계발을 위해 출근을 다시 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더라. 그런데, 3~4개월 동안 억지로라도 이 흐름을 유지하다 보니 난 어느새 스쿼트 100kg을 10번 정도는 들 수 있게 되었고, 아직 주차는 많이 어렵지만 도로주행은 무난히 할 수 있게 되었으며 토익도 고득점 하는 등 다양한 성취를 얻게 되었다. 꽤나 많은 성취가 있어서 보람차고 알차게 지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즐거웠다.


난 임용고시에 합격한다면 공무원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인생에서 공부를 할 일이 많이 줄어들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임용고시를 본 이후로 자기 계발을 하면서 보니 인생은 공부의 연속인 것 같다. 삶의 모든 부분이 어쩌면 공부일지도 모르겠다. 차선을 변경하는 법, 후면 주차를 하는 법, 부상 없이 벤치프레스를 하는 법, 데스크탑pc를 조립하는 법, 재테크하는 법 모두 공부다. 공부와 연습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반짝이는 교사, 반짝이는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를 하면서 살아갈까 한다. 내가 세상에서 모르는 건 너무 많고, 알아서 나쁠 것 하나 없어 보인다. 이번 방학에는 재테크를 위한 경제 공부를 시작했다. 경제 문외한이었어서 너무 어렵더라. 하지만 하다 보면 언젠간 경제도 알 것 같은 순간이 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늘도 힘차게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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