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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청년 Jun 28. 2024

누군가는 나 때문에 불행하다

행복과 불행의 감정은 가까운 사람과 비교에서 오는 상대적 감정이다


홀로 계신 시어머니 집에는 도우미가 오신다. 같은 교회 신도다. 오후 5시에 오셨다가 잠을 주무시고 아침 7시에 퇴근한다. 어머님이 87세, 도우미는 78세시다. 서로 의지하며 밤 시간을 함께 보낸다. 도우미는 정부로부터 저소득층 노약자로 분류되어 점심을 제공받는 분이다. 어느 날 도우미가 시어머니께 그녀의 지인, A 집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A 집사는 아들이 잘 버는 것으로 아는데 수입을 감추어서 계속 정부 지원 점심을 타먹는 것이 꼴 보기 싫다는 것이다.


도우미도 수고료를 통장으로 이체받지 않는다. 통장에 수입이 찍히면 정부 지원 점심을 못 받기 때문이다. 이혼하고 혼자된 아들도 집에서 함께 산다고 한다. 중년인 아들도 수입이 없다. A 집사나 도우미나 피차일반이다. 정부 지원 점심을 받기 위해 수입을 숨기는 것 말이다. 그녀의 아들은 못 벌고 있는데 지인의 아들은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배 아픈 모양이다.


어머님은 투덜거리셨다. 둘 다 내가 낸 세금으로 점심을 제공받는데 감사할 생각은 안중에도 없다며 혼잣말인 듯 푸념인 듯 허공에 뿌리셨다. 조금 격앙된 큰 소리로. 자기들끼리 질투하고 험담하는 꼴이 어이없다며 혀를 차셨다. 정부는 왜 저런 사람들을 가려내지 못하는지 모르겠다는 말도 추가했다. 난 속으로 말했다. ‘어머님이 계좌로 입금 안 하는 것도 일조한 부분이 있어요.’ 시어머니라 꾹 참았다.


자신이 수입을 감추기 위해 수고료를 현금으로 받는 것이나, A 집사의 아들이 수입을 현금으로 받아서 사는 거는 매한가지인데 왜 질투가 날까? 현금 수령으로 수입을 감추고  편법으로 정부지원 받는 측면에서는 내로남불이다. 질투의 근본 원인은 따로 있다.


행복과 불행은 상대적이다. 나의 행복은 내 주변의 상황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한다. A 집사의 아들이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점심 수급을 받았다면 도우미는 행복했을 것이다. 저 사람보다 내가 더 낫다는 마음으로.  A 집사의 아들이 수입이 있는 것은 무직인 자신의 아들과 비교해 부러운 거다.


질투 나는 측면은 이것이다. 도우미 가정의 가장은 본인이고, A 집사의 가장은 아들이다. 우리의 관습에는 자식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사는 노년을 자랑스러워한다. 다 늙은 아들을 그것도 이혼하고 홀로 돌아온 아들을 자신이 품고 있는 것이 속상한 것이다. 무능한 아들을 이 나이에도 끼고 있는 것이, 다 늙은 노모가 벌어서 먹고사는 것이 화가 나는 것이다.


화의 불똥이 A 집사를 향하고 있다. A 집사는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로부터 욕먹고 있다. A 집사가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행복한 마음이 들것이다. 저 사람보다는  자신이 낫다는 생각으로.  의도치 않은 상대적 행복을 느끼는 거다.


우리의 삶은 비슷하다. 누군가는 나로 인해 불행한 사람이 있다. 반대로 나로 인해 행복할 것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행복의 씨앗이 되기도 하고 불행의 씨앗이 되기도 하는 존재다. 우리 모두는 다 그렇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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