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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청년 Jun 16. 2024

제 머리 위 유리 천장을 걷어내고 싶어요.

소수라는 이유로 차별폭력 당하는 IT여성 전문가 이야기


“저는 20년 가까이 IT 관련 일을 하고 있어요. 여성으로서 직장에서는 홍일점에 가깝습니다. 취직이 어려웠었어요. 많은 사회적 편견과 맞서야 했거든요. ‘결혼하면 애가 생기니 불편하다. 부품을 조립해야 하는 일이 많은데 못할 것이다. 밤사이 위급상황에 호출하기 힘들 것이다. 등’이다 열거하기 힘듭니다. 묵묵히 굳건히 버티고 있었어요.


이런 편견에 맞서, 당당히 성장하기 위해 박사과정을 밟았어요. 과정 중간에 공유해야 할 것 같아서 상사에게 보고했죠. 뜻밖의 반응을 봤어요. 엄청나게 놀라면서 얼굴에 배신감, 화남, 어이없음이 범벅된 상사의 표정을요.


얼마 지나지 않아 제 자리는 좌천됩니다. 비품 관리하고 복사하는 허드레일하는 자리로 발령을 받아요. 제 전문분야인 서버 관리 일을 못 하게 된 거죠. 하늘이 무너졌어요. 철저히 외면당하고 멸시당하는 제 모습을 봤죠. 점심시간도 힘들었어요. 밥이 넘어가지 않았어요. 아이 셋을 키우고 있어요. 남편 혼자 벌어서는 힘들어요.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경제적 니즈는 내 기분대로 행동할 수 없게 했어요. 참아야 했어요.

마음의 안정이 필요했고, 사무실에 있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어요. 숨을 쉬어야 했어요.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절로 향했어요. 부처님께 절을 올리는 것도 몰랐어요. 절을 몇 번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어요. 다시 회사로 향하려는데 스님 한 분이 나오셔서 제게 밥 먹고 가라더군요. 머뭇거렸더니 저를 설득하시며 밥을 주셨어요. 밥이 넘어갔어요. 절밥은 먹을 수 있더라고요.

절밥의 힘인지, 스님의 영향인지, 부처님의 어루만짐인지 긍정의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비품 관리하는 자리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박사논문에 집중할 수 있겠구나’, ‘나를 괴롭히는 힘든 사람들과 거리를 둘 수 있구나’ 기회임을 자각했어요. 현 상황을 비극의 시선으로 볼 필요가 없음에 마음의 여유가 생기더라고요. 그나마 찾아온 훈풍이었죠.

저는 아직도 직책이 대리입니다. 후배들이 치고 올라가는 것을 보고 있어요. 제 머리 위에 파란 하늘이 보여요. 나와 저 파란 하늘 사이에는 투명한 유리 천장이 있어요. 저 유리문을 부수고 날아오르고 싶어요. 그러나 용기가 없어요. 방법도 잘 모르겠어요. 아직 막내가 초등생이고 돈이 필요하니 벌어야 해요.”



위의 이야기는 실제 모기업 여성 IT 전문가의 이야기다. 충격이었다. 내 귀를 의심했다. 아직도 이런 현실이 기업 안에 존재하다니. 우리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성차별과 불평등의 현주소다. 21세기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직장에서 편견과 차별에 맞서 싸워야 하는 현실이 답답하다. 자식이 있어서 유리를 깨지 못하고 조용히 어깨를 움츠려야만 하는 그녀의 결정이 더욱 마음을 아리게 한다.

그녀를 동료들이 배척하고 왕따 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수는 약자다. 남녀 비율이 비슷했다면 이렇게까지 소외당하지는 않을 수 있었을 것 같다. 동질성은 보이지 않는 연대감을 준다. 연대감은 힘으로 작용한다. 다수는 힘을 의미한다. 그녀의 남성 동료들은 뭉쳐서 힘을 행사하고 있다. 딱 한 명인 그녀에게.

그녀의 박사 자격 취득은 결국 권위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녀의 IT 권위취득은 상대적으로 자신들의 능력을 깎아내릴 수도 있다는 논리가 생긴다. 그녀를 우대하느니 없애버리는 전략을 쓴 것이다. 좌천 발령은 개인의 자존감을 무너뜨려 스스로 물러나게 하는 비열한 방법으로 기업에서 흔하게 쓴다. 해고는 노조의 눈치를 봐야 하고 회사의 이미지에도 타격이 갈 수 있으니 말이다.

특히 IT 업계는 남성 중심적인 조직문화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여성 전문가들이 자기 능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환경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반대로 남성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직군도 있을 것이다. 소수이기 때문이다. 소수는 힘에 밀린다.

회사에서 학비를 지원한 것도 아니다. 스스로 역량을 개발하고 성장한 직원을 기업은 왜 등한시하는가? 기업에 더 유용하게 쓸 고급인력이 되었으면 감사패를 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비단 중간관리자만의 자질문제인가.

듣다가 흥분해서 ‘회장실로 직행해라’ 말했다. 이미 동료들로부터 만신창이가 된 그녀에게 그럴 용기는 없어 보였다. 조용히 건강 챙기면서 살고 싶다 말한다. 가정과 일을 양립해야 하는 그녀의 소박한 소망은 유리 천장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아 찾았던 절에서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던 스님이 연락이 왔다고 한다. 물김치 담갔다며 가져가라고. 네가 좋아하니 좀 넉넉히 만들었다고.


이게 뭐야....이 잠시 정적.

그리고 숨을 멈춘채 차오르는 묵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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