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수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었다. 남편이 쳐다보기도 싫다 고민하는 다른 친구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시작한 말이다.
“신혼시절, 남편이 한 푼도 안 가져왔던 3년의 시간이 있었어. 게다가 첫 아이가 신생아 시절 심장에 문제까지 있었지. 아무 신에게나 다짜고짜 빌면서 병원을 전전긍긍했어. 역경은 겹쳐서 온다더니 내가 딱 그랬어.
서해안 고속도로 공사에 참여했던 남편은 사고로 다리를 다친 적도 있어. 남편을 업고 시제를 모시기 위해 산을 올랐던 기억.... 조상 모시는 것에 진심인 집안이라 어쩔 수가 없더라. 그 남편이 지금은 나를 내조해. 밥을 준비하고,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같이 퇴근하기 위해 내 직장 앞까지 와. 앞으로는 나를 위해 남은 인생 바치고 싶대.
내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거 한 가지 뭔지 알아? 절대 남편이 부끄러워할 만한 말을 안 한 거야. 왜 돈을 안 벌어오냐, 왜 그것밖에 못하냐, 내 인생 이게 뭐냐 이런 말들. 애들 아빠, 가장을 떠나 그 사람도 한 인간이잖아. 내가 존중받고 싶듯 남편도 그럴 것이다 생각한 거지.”
인생의 대해를 항해하는 두 선원, 그것이 바로 부부다. 처음엔 서로의 배에 올라 함께 노를 젓는 것으로 시작한다. 행복만을 꿈꾸며 시작하는 공생관계의 시작이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고, 강점을 더하며 물살을 가른다.
시간이 흐르면서 부부는 하나의 배를 공동으로 운영하는 동업자가 된다. 가정이라는 배를 함께 이끈다. 사업과 마찬가지로 가정 동업 또한 순탄치 않은 것이 모든 부부가 맞닥뜨리는 숙명이다. 예측 불가능한 일들의 연속이고, 폭풍우를 만나고, 때로는 암초에 부딪힌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함께. 카뮈의 말이다. "행복한 결혼이란 없다. 오직 공동의 문제 해결자들이 있을 뿐이다." 부부관계의 본질을 이보다 더 정확히 꿰뚫고 말이 있을까?
문제를 해결해야 더 큰 바다로 나아갈 수 있다. 실패한 동업은 깊은 상처를 남긴다. 사업실패는 돈을 날리지만 부부실패는 가정의 붕괴다. 사업은 다시 일으키면 상처가 치유되지만 가정은 좀처럼 치유가 어렵다.
동업 실패의 주된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나'라는 기여의 지나친 부각이다. "내가 더 많이 노를 젓는다", "내 방향이 더 맞다"라는 주장이 오갈 때, 그 배는 이미 위험에 빠진 것이다. 마치 동업 파트너가 자신의 공로만을 내세우다 회사가 좌초되는 것처럼.
모든 부부에게 찾아오는 위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해답은 '우리'라는 관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개인의 공헌을 따지기보다는 함께 항해하는 과정에 집중하는 마인드라고 할까. 때로는 한 사람이 더 많이 노를 젓고, 다른 사람의 방향 감각을 인정하고 힘을 실어 준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이 '우리의 항해'라는 큰 그림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거다.
결혼생활을 긴 항해에 비유한다면, 공생은 출항이고 동업은 중간 기착지일 뿐이다. 진정한 목표는 그 너머에 있다. 서로의 존재 자체로 충만함을 느끼는 단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관계. 그것이 바로 모든 부부가 꿈꾸는 이상향이 아닐까.
부부의 여정은 단순히 두 사람이 함께 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두 개의 삶이 하나로 합쳐져새로운 우주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이 우주 속에서는 '나'와 '너'는 점차 희미해지고, '우리'라는 단단함이 빛을 발하게 된다. 그 빛은 어떤 폭풍우도 꿰뚫을 수 있는 등대가 되어 줄 것이다.
성공적인 부부관계의 비밀은 '함께'라는 단어에 있다.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성장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평생의 동반자'가 아닐까? 고난을 극복한 영화에서 주인공 커플은 한결같이 말없는 미소를 교환한다. ‘우리 함께 멋지게 해냈어’라고 말이다.
수하는 남편과 퇴근하며 회사 근처에서 저녁 데이트를 자주 즐긴단다. 주말에는 평일에 못 준 관심을 온전히 남편에게 쏟는다. 그녀를 위해 남은 인생을 바친다는 남편에게. 수하에겐 젊은 시절 그녀를 힘들게 했던 기억은 아픈 기억이 아니다. 항해 중에 만난 난관이었을 뿐이다. 그 역경을 함께 헤쳐 나갔기에 눈빛을 교환하는 중이다. ‘우리 함께 멋지게 해내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