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가 주는 강박적인 공포, <시계관의 살인>
[원작: 시계관의 살인(The Clock Mansion Murders, 時計館の殺人-1991), 저자: 아야츠지 유키토]
[드라마: 시계관의 살인(時計館の殺人), 훌루(Hulu)에서 2026년 방영]
그가 지은 건물에는, 글쎄 뭐랄까, 이 사회의 압박으로부터 한없이 자유롭고자 하는 어떤 '장(場)' 이 존재한단 말이야. 그런 기분이 들어. 거기에는 물론 설계를 의뢰한 인간이 사육해 온 '악몽'도 다분이 섞여 있을 것이고....... 아니, 오히려 그쪽이 메인인지도 모르지.
- <시계관의 살인> 345페이지에서 발췌
소설, 그리고 드라마라는 두 다른 장르로 그려낸 <시계관의 살인>에 대한 마지막 총평을 남겨보고자 한다.
1. 상상 속의 시계관을 멋지게 구현해 낸 미장센의 힘.
제작진 및 출연진의 인터뷰를 통해 전작 <십각관의 살인>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자본이 투자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미술팀 및 소품팀이 쏟아부은 노력의 결과가 여실히 느껴진다. 구관, 신관, 시계탑, 그리고 납골당까지 포함하고 있는 거대한 규모의 저택을 생생하게 재현해냈다.
이 작품의 포인트는 뭐니뭐니해도 "시계" 그 자체가 아닐까. 108개라는 압도적인 개수를 자랑하는 다양한 시계의 컬렉션을 화면으로 직접 보니 그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모자이크 타일 벽시계"였다. 쉽게 찾을 수 없는 양식의 시계인지라 원작을 여러 번 읽으면서도 상상하기 어려웠는데, 이 작품 중 가장 으스스하게 느껴지는 것 중 하나가 되었을 정도로 뛰어난 묘사를 자랑한다.
정체 모를 살인마가 시곗바늘을 돌려 벽 너머로 숨겨져 있는 비밀 통로를 연다. 방 안에 은둔해 있어 괜찮을 거라고 안심했던 피해자를, 생각지도 못했던 경로로 덮쳐오는 해당 장면은 섬뜩하기 그지없다. 가히 이 작품의 백미나 다름없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2. 탄탄한 원작, 그리고 이에 대한 충실함.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는 굉장히 유명한 추리소설 시리즈 중 하나이다. 소위 말해 '빠도 많고, 까도 많은' 이 시리즈 중에서도 <시계관의 살인>은 최고작으로 종종 꼽힐 정도로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한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관심이 생겼다면 다른 건 몰라도 <시계관의 살인>만큼은 꼭 한 번쯤 읽어 보기를 바란다. (E-book으로도 접할 수 있다.)
원작 소설의 애독자로서, 드라마를 보는 내내 소설책을 옆에 끼고 틈틈이 비교해가며 읽었다. 드라마 <시계관의 살인>은 말 그대로 대사 한 줄 한 줄, 사소한 상황 묘사 하나하나까지 아주 충실하게 원작을 따라간다. 나처럼 이 시리즈의 팬이라면 아주 흡족하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3. 10년 차의 찰떡 같은 합을 자랑하는 감독과 배우.
감독 '우치카타 아키라(Akira Uchikata)'는 일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익숙한 이름일 것이다. 일본에서 리메이크된 <시그널>, <밀고는 부른다>, <고고한 메스> 등의 작품으로 유명하다. 주연 배우 '아오키 무네타카(Munetaka Aoki)'와는 무려 10년 전 작품 <살인분석반> 시리즈부터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 온 사이다.
드라마 <시계관의 살인>은 이 둘이 의기투합한 여섯 번째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연출 내내 적재적소에 이 배우를 아주 영리하게 활용하는 것이 보인다. 감독은 매우 잘 알고 있음에 틀림없다. 어떤 장면에서, 어떤 각도에서 이 배우가 가장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지를 말이다.
원작에서 "호리호리하고 큰 키와 여우 같은 성격"을 가졌다고 묘사되는 '시시야'를 아오키 무네타카가 아닌 모습으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살인분석반> 시리즈의 무뚝뚝하고 투박한 성격의 형사 '타카노'와는 여러모로 대척점에 서 있는 매력을 가진 캐릭터인데, 이렇게 널뛰는 역할마저도 자연스럽게 소화해내는 연기력이 돋보인다.
여담으로, 배우 아오키 무네타카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배우 아오키 무네타카의 가장 큰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목소리다. 그가 출연한 한국 영화 <범죄도시 3>에서 보는 것처럼 몸도 잘 쓰는 배우이지만, 목소리도 참으로 잘 사용한다. 으레 연극이나 드라마를 보는 관중들은 배우의 대사가 지나치게 길고 많으면 오히려 불안해지곤 한다. 대사의 맥락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압박감, 혹은 통제권의 상실 등 자연스러운 사람의 심리가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만 이 배우의 장점 중 하나는 오히려 대사가 길어질수록 더 안정적으로 들린다는 것이다. 그의 깔끔하고 훌륭한 발음 역시 그 이유겠지만, 상당히 입체적으로 들리는 그의 목소리도 한몫할 것이다. 아오키 무네타카라는 배우는 연기할 때 그런 느낌이 든다. 목소리에서 공간감과 질감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그러한 그의 목소리는 강한 설득력이 필요한 '탐정'과 마치 찰떡같이 들어맞는다. 그가 주연 배우로서 두각을 나타나게 된 캐릭터는 바로 <살인분석반> 시리즈의 '타카노 히데아키'였다. 경시청 수사 1과의 형사 '타카노' 역시 <시계관의 살인>의 추리작가 '시시야'와 마찬가지로 해당 작품의 키를 쥐고 있는 탐정 역할이다.
모름지기 탐정이란 사건의 진상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난해한 트릭의 이치를 납득시켜야 한다. 그가 맡은 탐정 캐릭터는 강렬한 흡입력으로 이런 까다로운 과제를 곧잘 해결해 내곤 한다. 그는 배우 데뷔 십 년이 넘어 출연하게 된 <살인분석반> 시리즈에서 제대로 빛을 보았다. 다른 장르도 아닌 바로 추리물에서 그의 잠재력이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는 점도 바로 이런 면에서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마치 영국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추리물의 정석, 클래식 중의 클래식인 <셜록>을 통해 일약 라이징 스타로 떠오른 모습이 겹쳐 보인다. 공교롭게도 베네딕트 역시 목소리가 좋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