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무서운 시계 - 시계관의 살인(2)

시계가 주는 강박적인 공포, <시계관의 살인>

by 금파랑

[원작: 시계관의 살인(The Clock Mansion Murders, 時計館の殺人-1991), 저자: 아야츠지 유키토]

[드라마: 시계관의 살인(時計館の殺人), 훌루(Hulu)에서 2026년 방영]


우리는 시계로 시간을 재고, 때를 지배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실은 그 반대로, 시계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시간'에 의해 육체와 정신이 구속되고, 지배당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 <시계관의 살인> 495페이지에서 발췌


3.jpg 출처: https://news.hulu.jp/tokeikan_6/

(아래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작 소설 <시계관의 살인>과 이를 바탕으로 제작된 동명의 드라마의 결말까지 모두 지난 3월 20일 공개되었다. 장단점을 교차해 가며 리뷰를 적어보고자 한다. 먼저 아쉬웠던 점을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올드(Old)한 원작에 충실한 올드한 연출.

소설 <시계관의 살인>이 출간된 해는 1991년, 지금은 2026년이니 발표된 지 꽤 오래된 축에 속한다. 그러다 보니 작중 범인이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이 조금 예스럽긴 하다. 이 작품의 감독 '우치카타 아키라'는 원작이 있는 작품을 훼손하지 않고 충실하게 재현하기로 이름난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현대적 감성으로 받아들이기엔 말 그대로 '올드한' 부분이 있었다. 일본 드라마 특유의 이런 감성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에 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 줄어든 시시야 가도미(a.k.a. 시마다 기요시)의 추리 클라이맥스.

이 소설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결말의 약 30페이지의 비중을 할애하는 "관 시리즈" 공인 탐정, '시시야'의 추리 장면일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적인 사정이 작용한 것일까. 드라마에서는 이 단독 추리 시퀀스의 몇몇을 가와미나미에게 넘겨 줌에 따라 그 비중이 줄었다. 원작의 그 빈틈없는 추리 장면을 어떻게 재현해 낼까를 굉장히 기대했던 사람으로서 아쉬움이 남는다. 배우인 아오키 무네타카(青木崇高, Munetaka Aoki)가 해당 장면을 소화해 낼 역량이 충분한데도 말이다.


kfvn8jifvcv1ipk2nmvpth09qfjkvu.jpg 출처: https://www.hulu.jp/tokeikannosatsujin


위와 같은 몇 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좋았던 점을 들자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복잡한 시간차 트릭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한 친절한 교차 연출.

핵심 트릭인 '구관'과 '신관'의 다르게 흐르는 시간을 두 개의 브라운관 TV로 교차하는 연출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 이 까다로운 트릭을 한 번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하물며 드라마로 이 내용을 처음 접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설명하기란 꽤 힘들었을 텐데, 감독이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드라마가 1970년대부터 1990년대를 배경으로 다루고 있는 만큼, 그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브라운관 TV의 존재가 반가웠다. 각각 왼쪽 화면에서는 실제 시간, 오른쪽 화면에서는 조작된 시간을 보여주며 시청자의 이해를 돕는다.


또한 범인의 굳건한 알리바이를 깨부술 수 있었던 타임라인 대조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구관 내부에서 있었던 살인사건들이 일어난 시점과, 범인의 알리바이가 증명되지 않는 시간을 비교한 시간대조표를 종이에 직접 인쇄하고, 해당하는 시간의 부분을 잘라 붙여 시점이 뒤로 밀리는 것을 설명한다. 무릇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은 추상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개념을 학습하고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그것을 물리적으로 구체화하는 것, 시각적 사고 혹은 키네스테틱 학습(Kinesthetic Learning)이라 불리는 방법을 활용하는 것이다. 손으로 직접 타임라인을 옮기고 배치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이해를 돕는 친절한 시도가 엿보인다.


두 번째, 조연 캐릭터의 몰개성화를 방지하려 노력한 부가적인 시퀀스.

이 작품에 대한 다양한 리뷰를 접했는데, 부정적인 의견 중 하나는 바로 '조연들의 몰개성화'. 즉, 오로지 죽임을 당하기 위해서 마치 그들이 도구처럼 쓰고 버려진다는 것이었다. 감독은 이런 점을 인식했는지, 드라마에서는 '우류'와 '가와미나미' 간의 감정적인 신을 두어 개 정도 삽입하여 자칫 소모품화될 수 있는 캐릭터에 숨을 불어넣어 주려 노력했다.


나처럼 <시계관의 살인>을 읽거나 본 사람이라면, 조연 중 '우류 미사오'라는 친구가 꽤 기억에 남을 것이다. 작중 건축학을 전공한 대학생으로, 탐정 캐릭터인 시시야만큼이나 이성적이고 머리가 좋다. 호기심은 많지만 지적이고 냉정한 면모가 조금 부족한 캐릭터인 가와미나미를 마지막까지 열심히 도와주는 책사 비슷한 역할이다. 우류와 가와미나미는 둘 다 커다란 연쇄살인사건에 휘말려 수많은 친구들을 잃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 두 캐릭터 간의 감정적인 연대와 유대감을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빛과 소리로 훌륭하게 그려낸 시계탑의 내부.

소설 <시계관의 살인>에서 떠올리기 힘들었던 장면 중 하나는 바로 시계탑이 무너지기 직전의 묘사였다. 전체가 벽돌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던 시계탑의 벽면의 일부가 알고 보니 색유리였고, 카운트다운이 끝나며 그 사이를 채우고 있던 공간에서 모래가 빠져나간다. 그리고 텅 빈 색유리들을 통해 햇빛이 쏟아져 오며 작중의 시의 한 구절, '시간은 끝이나고, 성당에 일곱 개의 색이 비치고'라는 부분을 제대로 재현한다. 원작을 읽으면서는 그 장면의 아름다움이랄지, 장엄함을 제대로 상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 장면을 굉장히 충실하게 그리고 미적으로도 만족스럽게 그려내려고 애썼다. 마치 우리가 스테인드 글라스를 보며 아름다움을 느끼듯이, 빛의 생동감과 산란이 빚어내는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또한 소리 자체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는 것을 여실히 알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메이킹 영상에서 본 시계탑 세트는 실제로는 1층 반짜리 정도 높이에 불과했다. 원작에 묘사된 것만으로도 4층을 훌쩍 넘는 거대한 시계탑 세트를 1층부터 전부 제작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똑같은 구조라면 한 층만 만든 후, 그 장면을 복사·붙여넣기하는 것이 경제적이다. 따라서 작품 내 등장하는 모든 시계탑 장면에서, 실제 촬영 당시에는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소리가 울리는 반향이 있었을 리는 만무했을 것이다. 나중에 편집 과정에서 모든 메아리 소리를 후보정했음에 틀림없는데, 섬세한 작업의 결과가 느껴졌다.


1.png 출처: https://news.hulu.jp/tokeikan_6/




이 작품을 접하며 꼭 언급하고 싶었던 마지막 하나, 바로 배우 그리고 제작진에 대해서도 더 이야기하고 싶은 점이 있지만 다음 포스팅에서 언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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