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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강원 Nov 03. 2024

음악으로 동화된다는 것. 온쉼표 기회 <그림동화>

피아노 너머 커튼을 치지 않은 창밖 풍경은 불 켜진 아파트였다. 주말 가을 저녁의 아파트 풍광은 다들 나들이를 갔는지 드문드문 불이 켜져 있었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이들 덕분에 불이 켜졌다 꺼졌다 하는 풍광이 더해졌다. 이러한 풍광은 우리네 ‘삶’ 그 자체였다.


첫 곡 아르보 패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은 저마다 다른 감상이 이뤄졌겠지만 내게는 이런 삶의 풍광이 곡을 감상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반복되는 음형은 우리네 일상처럼 단조로운 삶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었으며, 연주의 흐름에 따라 인간적인 순간부터 깊은 울림을 선사하는 순간까지. 비슷한 듯 다양한 형태의 우리네 삶을 잘 담아내고 있었다.


물론 첼로의 연주만 볼 때 피아졸라의 ‘아베마리아’가 더 깊은 울림을 선사하였지만, 삶과 연관 지어 감상의 길로 인도한 것은 결국 패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이지 않았나 싶다.


이 외에 기록해 볼만한 부분이 있다면, 플루트의 연주만 볼 때 드뷔시의 ‘골리웍의 케이크워크’가 익살스러운 춤곡의 형태가 잘 살아나는 편이었으며, 트리오 관점에서 보면 몇 가지 자잘한 부분을 모른 척 넘어간다고 볼 때, 슈만의 ‘내밀하게’가 노래하는 관점에서 좋은 연주를 들려줬다.


연주자와 관객 사이의 거리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던 공간 특성상 연주자의 작은 호흡까지 느낄 수 있었다는 점에서 감정에 동화되는 부분이 효과적으로 작용하였던 것 같다.


특히 이날의 공연은 저마다 다양한 형태의 후원자들이 모였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래서인지 연주자들은 나름대로 헌사를 하듯 마지막을 꾸몄다. 이로써 동화된 감정은 관객뿐만 아니라 연주자에게도 고루 뿌려지지 않았을까.


-안일구, 김진경, 이승원

-프로그램:

아르보 패르트, 거울 속의 거울

피아졸라, 아베 마리아

드보르자크, 나를 혼자 내버려두오

드뷔시, 아마빛 머리의 소녀, 골리웍의 케이크워크, 달빛

슈만, 그림동화 4악장


슈만, 앨범소품(다채로운 소품 중), 왜?(환상소곡집 중), 내밀하게(다비드동맹무곡 중)

생상스, 아베 마리아


드뷔시, 피아노 트리오 G장조 1악장

베버, ‘목동의 애가’ 플루트 트리오 3악장

라벨,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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