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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영 Apr 17. 2022

가면 사나이와 반딧불이 (2)

하루는 맑고 시원한 물이 흐르는 계곡으로 반딧불이가 사나이를 데려갔습니다. 

하늘에 떠 있던 달과 별들이 흐르는 물결에 따라 찰랑거리고 있었습니다. 

반딧불이는 가느다란 다리를 물속에 넣어보았습니다. 

계곡물의 시원함이 날개 끝까지 짜릿하게 퍼져나갔습니다.

“사나이야, 너도 어서 발을 담가봐. 무척 시원해.”

사나이는 이번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혹시나 거친 물결들이 자신을 영원히 삼켜 버릴까봐 걱정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놀기에는 너무 위험해. 반딧불이야, 너도 어서 나가자.”

우뚝 솟은 바위 위에 서 사나이는 발가락 하나도 물에 닿지 않았습니다.      


그때, 돌 밑에 숨어있던 개구리 한 마리가 “폴짝” 튀어 올랐습니다. 

사나이는 너무 놀란 나머지, 몸의 중심을 잃으며 흐르는 계곡 속으로 빠져버렸습니다. 

재빨리 넘실거리는 물결들이 사나이의 온 몸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사나이가 모난 돌에 다치지 않게끔, 물결들은 무사히 그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주었습니다.

반딧불이가 사나이에게로 날아와 말했습니다. 

“수영을 아주 잘하는 걸? 거기서 발장구만 친다면 더 멋진 수영이 될 것 같아.”     


밧딧불이의 말대로 사나이는 계곡 물 속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발장구를 첨벙첨벙 치며 물결들 사이를 지나다녔습니다.

사나이는 더 이상 물결들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물결들을 믿는 순간부터, 사나이는 물속에서 무척이나 자유롭게 헤엄을 칠 수 있었습니다. 

유유히 사나이가 계곡 물 속을 헤엄쳐 다녔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물의 요정처럼 근사하고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지나가던 물고기들과 개구리들이 찬사를 보냈지만, 이번에도 사나이는 모든 것이 다 반딧불이 덕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두운 밤 속에서 사나이는 반짝반짝 빛나는 반딧불이를 한참동안 바라보았습니다.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 만 같았습니다. 

“너는 정말 특별해. 이 세상에서 빛을 내는 존재는 오직 너뿐 일 거야.” 

사나이가 눈부신 반딧불이를 보며 말했습니다.

그에 비해 자신은 몹시도 초라한 존재 같았습니다.  

그런 사나이를 보며 반딧불이가 말했습니다. 

“사나이야, 나도 그래. 너도 내게 이 세상 어떤 존재보다 특별한 사람이야.” 

반딧불이의 말에 사나이는 무척이나 행복했습니다.      


사나이는 반딧불이에게 꽃다발을 선물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밤이 오기 전, 숲속에 있는 하얀 꽃밭으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반딧불이가 좋아하는 하얀 들꽃이 잔뜩 피어져 있었습니다. 

사나이는 반딧불이를 위해 꽃을 꺾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서쪽에서 온 커다란 바람이 사나이를 덮치고 말았습니다.   

바람은 반딧불이에게 줄 하얀 들꽃을 가져가고, 사나이의 가면까지도 가져가버렸습니다. 

사나이의 끔찍한 얼굴이 훤히 드러났습니다. 

사나이는 빠르게 나무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문을 잠가 아무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반딧불이가 사나이를 찾아왔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사나이는 반딧불이가 진짜 자신의 모습을 알게 된다면 실망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가면을 만들 때까지 절대 나가지 않았습니다. 

반딧불이는 사나이가 보고 싶었습니다. 

다음날 밤, 그 다음날 밤, 또 그 다음날 밤에도 사나이를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사나이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기다림에 지친 반딧불이는 더 이상 사나이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사나이가 새로운 가면을 완성했을 때에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사나이는 다시 혼자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사나이는 밤을 기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어두운 밤은 별처럼 아름다웠던 반딧불이가 생각나 괴로웠습니다. 

사나이는 무척이나 후회했습니다. 

그날 사나이가 잃어버린 건 가면이 아니었습니다. 

유일했던 친구 반딧불이를 잃어버렸다는 걸 사나이는 뒤늦게 깨 닳았습니다. 

사나이는 반딧불이를 매일매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반딧불이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사나이는 몹시 슬펐습니다. 

사나이의 가면 속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파란 하늘과 햇살이 가득한 오후였습니다. 

사나이는 하늘에 떠 있는 눈부신 햇살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두 손을 꼭 모으며 해님에게 말했습니다. 

“해님, 해님. 반딧불이와 다시 친구가 되게 해주세요.”

눈부신 햇살 속에서 검은 벌레 한 마리가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검은 벌레는 아주 작은 점 같았습니다. 

코앞에서 보아도 작고 검은 것 빼고는 특별한 점이 없었습니다.  

사나이는 왜 평범한 벌레가 자신에게 왔는지 궁금했습니다.      


“나야, 나. 반딧불이.”

검은 벌레는 자신을 반딧불이라고 말했습니다. 

누구보다 특별하고 아름다웠던 반딧불이는 사실, 검고 초라한 벌레였습니다. 

그동안 깜깜한 밤의 어둠이 반딧불이의 본래 모습을 가려주었던 것입니다. 

“내 모습을 보고 실망했니?”

반딧불이가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사나이는 반딧불이를 바라보았습니다. 

검은 벌레가 반딧불이라는 것을 알고부터, 사나이에게 검은 벌레는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절대 초라하지 않았고, 다른 벌레들처럼 평범하지도 않았습니다. 

여전히 반딧불이는 아름답게 눈부신 사나이의 친구였습니다.      


사나이는 가면을 벗었습니다. 

바람이 사나이의 가면을 가져간 것이 아닙니다.  

사나이가 반딧불이를 위해 직접 가면을 벗은 것이었습니다.  

사나이는 반딧불이가 자신을 싫어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반딧불이는 사나이의 진짜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반딧불이가 말했습니다. 

“고마워. 사나이야.”

반딧불이는 사나이의 얼굴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나이가 어떤 모습이던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반딧불이에게는 사나이가 아름답고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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