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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영 Oct 19. 2022

우리 동네 형님들을 소개합니다

내가 변태라는 사실을 문득 실감할 때가 있다. 페인트나 매니큐어 냄새를 좋아한다던가, 여드름 압출 영상을 보며 희열을 느낄 때 나 자신이 변태라는 것을 자각한다. 그리고 또 길에서 고양이들을 만날 때면 내 변태 본능은 끌어 오른다.


고양이는 참 이상한 동물이다. 동그라면서도 뾰족한 것 같고, 또 귀여우면서도 앙칼지다. 내가 저에게 다가오는 것은 허락하지 않으면서 본인이 내게 다가오는 건 상관없다는 식으로 건방지게 군다. 근데 또 그 밀당(?)에 끌려가는 나는 변태처럼 애정을 돌려받을 수 없는 걸 알면서도 저 생물에게 푹 빠지고야 만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콧대가 높아도 그게 매력이라 사랑을 할 수밖에 없는 동물. 그것이 바로 고양이들이다.


우리 동네에는  구역마다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양이 형님들이 있다. 성별이 여자인지, 남자인지는  모르지만 마치 자리를 지키고 있는 폼이 소싯적 구역을 점령한 조직 보스와도 같아 나는 항상 형님들이라고 부른다. 오늘은 우리 동네의 형님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다.



가장 첫 번째로 소개해 드릴 형님은 점박이 형님이다.


흰색, 검은색 젖소 무늬에 입술 주변은 짜장면이 잔뜩 묻은 듯한 점이 특징이다. 이 형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눈빛은 마치 늑대의 고독한 카리스마가 잔뜩 묻어져 있어 선뜻 한 대 맞을까 두렵지만, 누구보다 마음이 따뜻하고 친절한 분이시다. 내가 다가기도 전에 네 발로 뛰어 반겨주시고 곁에 오래 맴돌아 준다. 그럼 나는 눈치껏 형님이 좋아하는 궁디팡팡으로 5분 정도 서비스를 해야 이 구역 통행을 안전하게 허락받을 수 있다. 내가 이 주변을 항상 평온하게 지나갈 수 있는 건 아마 형님께서 나를 예쁘게 봐주시어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는 걸 지도 모른다. 그래서 항상 점박이 형님께 감사하다.



나오셨다, 두 번째 형님.


우리 동네 형님들 중에 나랑 가장 막역한 삼색이 형님이다. 이사 오고 처음으로 내게 본인 엉덩이를 맡겨준 고마운 은인. 형님이 계신 구역은 항상 지나가는 길이기 때문에 몇몇 다른 형님들의 눈빛에 압도될 때가 있어 긴장했는데, 다행히 삼색이 형님이 나를 예뻐해 준 뒤로부터 마음 편하게 다니게 되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그런 형님의 애정이 내게만 특별한 것인 줄 알고 착각했다. 하지만 우연히 수많은 사람들에게 애교를 부리는 것을 포착하여 마음이 잠시 상했지만, 얼굴값 하는 고양이를 사랑한 내 죄라고 생각하며 나도 더 사랑받기 위해 무릎을 바닥에 거의 닿다시피 맞이한다.



삼색이 형님이랑 가장 친한 할배 형님.


이 형님이야 말로 진짜 '형님'이라는 칭호에 가장 적합한 분이시다. 사실 나와 할배 형님은 별로 안 친하다. 삼색이 형님이랑 내가 놀고 있을 때에도 본인 자리에 묵묵히 앉아 심드렁하게 지켜보는 거 말고는 리액션을 별로 안 해주는 편이시다. 한 번도 곁을 내어 주신 적은 없지만, 그래도 나는 알 수 있다. 할배 형님이 아주 따뜻하고 넓은 마음을 가지신 분이라는 걸. 대부분 할배 형님은 삼색이 형님을 떠나지 않고 함께 다니며 사람들이 두 분을 찾을 때에도 본인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이상 자리를 급히 피하거나 화내지 않으신다. 그저 할배 형님은 성격상 멀리서 지켜보고, 과묵하게 있는 것을 좋아할 뿐이다. 그래서 나 또한 늘 마음으로만 형님을 존경하고 예뻐한다.



그 외에 동네 형님들.


친하지는 않지만 가끔 길을 지나가다 보면 쉬거나 어딜 바쁘게 가고 있는 형님들을 마주치게 된다. 대부분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여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게 큰 특징. 전혀 서운하지 않고 오히려 동네에서 내쫓지 않아 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특히, 두 번째 사진에 형님 두 분은 삼색이와 할배 형님처럼 단짝으로 같이 다니며 골목골목 사방을 순찰 다니신다. 그중 치즈 형님은 동네 고양이 중 가장 예쁘다고 소문난 미묘의 고양이. 나도 한때 홀딱 반해 고양이 간식을 뇌물로 바쳤으나, 거리가 좀 가까웠던 탓인지 산혼철조를(이누야샤 손톱 기술) 당하고 말았다. 주제를 모르고 선을 넘은 거 같아 나중에 만나면 사과드리고 싶다.


이로써 우리 동네 형님들에 대한 소개가 끝이 났다. 하나같이 털도 얼굴도 성격도 다르지만 모두 사랑스럽다는 게 특징이다. 타지에서 서울로 이사를 와 적응을 못할 무렵, 여러 고양이 형님들을 만나며 따뜻함과 사랑스러움을 느꼈다. 내게 친한 이웃사촌과 동네 친구는 없지만, 그래도 나는 이 동네가 너무 좋다. 함께 공존해 사는 고양이 형님들과 그런 형님들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동물과 사람이 모두 행복하고 건강하게 이곳에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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