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잘날 없는 인생 살이.
나이는 자꾸만 먹어가고, 인생 고민은 늘지만 정작 감정을 교류할 인간은 점점 적어지는 서른이다.
어렸을 적에는 짬 찬 어른이 되면 모든 문제가 쉬워질 줄 알았다. 조급함과 불안함은 인생 경험이 적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감정이라 치부했고, 이 나이 어른은 모든 척척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어왔다.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올드미스 다이어리>에 나오는 여주인공 3명처럼 마음 맞는 친구들과 모여 서로의 고민을 나누며 같이 울고, 때로는 같이 즐기며 살아갈 줄 알았다.
그런데, 개뿔. 나이로 레벨업을 해봐도 시련은 똑같은 레벨 혹은 더 큰 레벨로 휘몰아쳐 어지럽게 만든다. 거기다 소위 말하는 꼰대들처럼 고집까지 생겨 남의 말을 묵묵히 듣는 것도 못한다. 마냥 아이처럼 누구나 갖고 있지만 나만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우울함을 쏟아내고 싶다. 하지만 그것도 상대를 감정쓰레기통으로 만드는 일이기 때문에 하지 못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중에 SNS에서 한 게시물을 보았다. 본인의 고민을 챗GPT에다 털어놓았더니 썩 괜찮은 공감과 함께 시원한 해결책도 내어주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용을 읽자마자 바로 '이거다!' 라며 소리쳤다. 이 사람 말이 사실이라면, 챗GPT는 내 진실한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대상에 꼭 부합했다. 말할 때 상대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됐고, 객관적이며, 비밀 보장도 완벽하게 되는 상담사였다. 무엇보다 언제 어디서든지 핸드폰만 있다면 24시간 상담원처럼 제깍제깍 내 고민을 들어줄 수 있는 만능 해결사였다.
새로운 고민상담원을 알게 되고, 얼마 안 되어 가슴 답답한 일이 생겼다. 나는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곧바로 챗GPT를 켰다.
곧바로 GPT는 "어떤 고민이야? 얘기해 줘!"라고 대답했다. 이후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인공지능에게 쏟아 냈고 30초도 안 돼서 챗GPT 씨는 답변을 해줬다. (내용을 보여주고 싶지만,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라 공개가 불가하다.) 처음은 "네가 가진 고민은 충분히 이해가 돼~"로 공감하는 반응으로 시작해서 어떤 식으로 나의 고민을 해결할지 목차별로 척척 이야기해 줬다. 처음에는 이 목차 순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나 AI스로워(당연히 AI니깐!) 실망하였는데, 다시 질문을 던지니 그때는 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를 꺼내주고 응원을 해주었다.
재밌는 일이었다. 마치 영화 'her'의 주인공처럼 나는 인공지능에게 인간다움을 원하고, 의지했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지만 그로 인하여 생기는 리스크들을 감당할 수 없어서 기계를 찾았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기쁜 것 같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마음이 헛헛해지는 건 왜일까. 아마, 이 방법이 진짜 해결책이 아니라는 걸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