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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담하는 쏘쏘엄마 Aug 07. 2022

부부 공감 대화의 시작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ft. 야식 전쟁)



육퇴 후에 남편과 야식을 먹는다.



이 문장만 봤을 때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그 속엔 어떤 기대가 있고, 어떤 기억이 들어가 있나?



"야식을 먹는다"라는 의미는 내게 어떤 것일까?

이것에 대해 떠오르는 것이 바로 야식에 대한 "나"의 "정의"다.


야식 이야기는 잠깐 미뤄두고...


정의는 국어사전에 의하면 "어떤 말이나 사물의 뜻을 명백히 밝혀 규정함"이다.

어떤 일이나 어떤 상황에 대한 내용을 나나 상대편이 잘 알 수 있도록 명확하게 밝혀서 말하는 것.



우리는 같은 문장을 보더라도 다르게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마치 내가 느끼는 대로 상대도 느낄 거라고 가정하지만,

사실 그것을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다 보면은 "같은 상황"에 대해서도 서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정의"가 좀 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상담에서는 내담자가 표현하는 단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그것이 중요한 지점이라면 내담자에게 정확한 의미를 묻는다. 예를 들어, 우울하다고 호소하는 내담자에게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다.


"00씨, 00씨에게 우울하다는 의미는 뭐예요?"


우울이라고 표현했지만, 우울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명확하게 아는 것이 공감적 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야식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아이들을 재우기 전에 남편과 출출하니 야식으로 라면을 끓여 먹자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너무 배가 고프니,

자기 먼저 집안일을 하고 나서 라면을 끓여먹고 애들이 자고 나면 내 라면을 끓여준다는 것이다.


갑자기 너무 화가 났다.

화를 삑 하고 내버리고 구시렁대면서 방에 들어가 버렸다. 너무 화가 나서 아이들을 재우면서도 한숨을 푹푹 쉬었다.

남편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왜 화가 나는 건지 물어보자 더 화가 난 나는 "그것도 몰라?"라고 말하고 침묵했다. (물론 씩씩거리면서)


남편은 화가 날 순 있어도 얘가 왜 이렇게까지 화가 난 건지 이해를 못 했을 것이다.

나 역시도 내가 왜 이렇게까지 화가 났는지 애들을 재우면서 생각해 봤다.


"나도 배고픈데 남편이 먼저 먹는대서 얄밉나?"  →  그렇게 배가 고프지 않음

"아기들 재우는 게 힘든데 날 배려하지 않는 남편에게 서운한가?" →  난 재울 때 누워있으면 되지만 남편은 집안일을 함


내 불편한 마음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문득 한 사건이 떠올랐다.


예전에 가족이 강릉에 여행 갔을 때, 밤에 함께 야식을 먹으려고 닭강정을 사 왔다.

나는 여행 마지막 날, 아이를 재우고 남편과 같이 닭강정을 먹으면서 분위기 있게 함께 대화를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다.

근데 호텔에서 내가 아이를 재우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남편이 닭강정을 하나씩 빼먹었다.


행복이가 자고 내가 기대에 찬 얼굴로 "오빠! 이제 잔다. 우리 닭강정 먹을까?" 했는데

남편이 빨갛게 된 입술을 닦으며 "응 난 다 먹었어~ 이제 너 먹으면 돼"라고 하며 손흥민 축구를 봤다.

닭강정을 봤더니 반이 줄어있었다.


그때도 너무너무 화가 나서, 엄청나게 화를 빽하고 내버렸다.

남편은 왜 화가 났는지 그 당시에도 이해하지 못했는데 나도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서, 씩씩거리며 닭강정을 먹었다.


강릉 닭강정 사건과 오늘의 라면 사건.

무엇이 문제인지 명확하게 보였다. 그러자 내 감정과 생각, 어떻게 대화해야 할지가 비교적 명확해졌다.


우리는 "야식"에 대해서 생각하고 정의 내리는 바가 다른 것 같았다.


나는 "야식을 먹는다"라는 건 배를 채우는 것보다 함께 먹으며 대화한다는 의미가 더 컸다.

내 야식의 정의는 "대화"였다.

그러니 야식을 먼저 먹어버리는 남편의 행동은 나에게 있어서 "난 너와 대화하고 싶지 않아"라는 메시지로 느껴졌다.


남편은 나와 다르겠지. 예측은 되지만 정확하게 물어보고 싶었다.

아이들을 재운 후에 물어봤다.


"오빠, 나는 라면을 먹자고 했을 때, 애들 재우고 같이 라면을 끓여 먹으면서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그런 이야기들을 좀 나누고 싶었어. 난 야식을 먹으면서 오빠랑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게 먹는 그 자체보다 더 즐겁거든. 그런데 혼자 먹고 나중에 나한테 끓여준다니까 화가 나고 서운해졌어. 나는 너랑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아라고 느껴졌던 것 같아."


남편은 그제야 이해가 됐다는 듯 이야기했다.


"나는 그런 줄 몰랐어. 나는 그냥 배가 고팠을 뿐이야"


남편다운 대답이었지만 다시 한번 물어봤다.


"그러게 오빠는 야식을 먹는다는 게 그냥 배를 채운다는 의미가 강한 것 같아서. 맞아?"


"응, 그거 말고 또 뭐가 있어? ㅋㅋㅋㅋㅋㅋㅋㅋ"


남편스러운 유쾌한 대답에 같이 낄낄거렸다.


그렇다. 야식의 의미는 우리 서로에게 다른 정의를 갖고 있었다.


나 : 함께 교류하고, 이야기하며, 분위기 있는 시간. 맛있는 걸 나누는 시간

남편 : 밤에 배고프니까 일단 배를 채우는 시간


..........


같이 웃다가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아 근데 나는 아니야, 난 야식이 배를 채운다는 의미가 아니고, 함께 대화를 나눈다는 의미가 더 커. 그래서 나는 야식을 먹기로 했으면 나를 기다려줬으면 좋겠어. 그래서 배 채우기 위해서 허겁지겁 먹기보다는, 같이 이야기도 나누고 좀 분위기 있게 먹었으면 좋겠어."


그렇게 우리는 같이 라면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물론 남편이 원하는 대로 배도 채워가며, 함께 그 시간을 재밌게 잘 보낼 수 있었다.





그렇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 그냥 화가 나고 토라지고 말 수도 있겠지만

거의 대부분은 이렇게 서로의 정의가 다른 경우가 많다.


이럴 땐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상대의 정의를 정확하게 물어보기만 해도 충분할 때가 많다.

서로의 정의를 명확하게 아는 것만으로도 공감이 되니까.  

나의 입장이 아니라 너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


그리고 서로의 정의를 확인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진솔할 수 있는 용기"인 것 같다.

내 마음속의 진심을 들여다보고 꺼내서 표현해 볼 수 있는 용기.

왜곡하거나 포장하거나 변명하지 않고, 나는 이랬는데 어는 어떤지에 대해서 물어볼 수 있는 용기.


진솔함은 전염이 된다.

단, 상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비난하지 않는, 적절한 진솔함.  

나의 진솔함은 분명 상대에게 와닿는다. 그의 진심을 들을 수 있는 문이 열린다.


그러니


이야기가 빙빙 돈다면,

도대체가 상대에게 계속 서운하고 화가 나는 행동이 있다면,

도무지 말을 해도 서로에 대해 이해가 안 된다면,


다시 처음부터

그 말, 행동, 생각, 사건에 대한 정의를 살펴볼 수 있었으면,

그것을 함께 진솔하게 나눌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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