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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세핀 Oct 10. 2023

BIFF 2023 소소한 기록들

Maybe I'm not too old for this




 벌써 세 번째 부국제다! 매년 가보겠다고 마음은 먹지만, 정말 갈 마음이 생겨서 부산행 티켓을 끊고, 숙소를 예약하는 것은 또 차원이 다른 일이다. 갈 때마다 쉽고도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생 때 시네필이라는 왠지 의기양양해 보이는 배지를 달고 참석했을 때는 일종의 사명감을 안고 되도록 많은 영화를 보려고 했다면, 좋아하는 배우가 무대인사를 한다고 해서 달려간 두 번째 부국제에서는 영화를 보기보다 사진을 많이 찍었다. 벌써 차가워진 바닷바람이 부는 해변가에 앉아 빛나는 눈빛 때로는 지친 눈빛으로 자신의 영화를 소개하는 무대 위의 사람들은 눈빛이 어떻든 간에 멋있어 보였다. 그래서 나도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이번에는 마음가짐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다. 대구에 갈 일이 생겨서 하루 먼저 부산에 내려가 시간 되는 만큼 영화를 보고 오자 정도가 마음가짐이라면 그것이었다. 요즘 말하는 MBTI 유형 중에 제일가는 J라면 서러울 정도의 통제형이라 1박 2일의 짧은 일정 중에 영화 보는 일정을 꾸깃꾸깃 쑤셔 넣었다. 그리고 예매창이 열린 날 운 좋게도 보고 싶었던 영화 네 편을 모두 예매할 수 있었다. 




그래서 1일 차


 도착한 날은 날이 선선하니 좋았다. 아침 기차를 타고 와서 그런지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 돼지국밥 맛집을 오는 길에 검색해 보았다. 효율성을 무척이나 중시하는 사람이기에, 영화 보는 곳 근처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카카오 지도에 돼지국밥을 검색해 보았고, 무려 4점이 넘는 국밥집을 찾았다. 


#수변최고돼지국밥 (센텀벡스코점)

홀로 여행객을 위한 1인석 완비

5분 안에 나오는 국밥

다진 양념 들어가는 국밥 

고기가 꽤 많이 들었음 

첫끼를 맛있고 따뜻하게 먹음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착석-주문-식사 시스템


 나오니까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벡스코에서 행사하는 사람들, 부국제 가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식당인 것 같았다. 이렇게 돼지국밥을 클리어했다. 왜 그 지역에 가면 꼭 왜 특산물 같은 것을 먹어야 하는 걸까? 사실 서울에서도... 아니 전국 어디에서도 먹을 수 있잖아! (모르겠다.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있다.)


<패스트 라이브즈 Past Lives>

 그렇게 든든하게 먹고 하늘연극장으로 향했다. 하늘연극장에서 볼 영화는 <패스트 라이브즈 Past Lives>다. A24에서 제작한 영화이고, A24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우하고 있는 나는 광고 포스팅이 올라왔을 때부터 보고 싶었다. 이 영화 도대체 한국에 언제 들어오나 했는데, 부산에서 만나게 되어 무척이나 즐겁고 신났다. 그리고 멀티플렉스가 아닌 무대가 있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니.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한 번 이곳에서 영화를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 보는 감각을 새롭게 해주는 장소였다. 


  

 영화는 좋았다. 공감 가는 부분도 많았고, 내 첫사랑 생각도 나면서, 내가 노라(주인공)라면 어떻게 했을까 고민도 해보고. 전생과 다음 생이 있다면, 지금 내가 느끼는 이런 인연들이 내가 모르는 때부터 엮여 있던 것이라면...


 가볍게 보고 나온 영화지만 역시 사람의 삶을 촘촘하게 담은 영화라서 내 인생을 대입해서 생각해 보는 것 같다. 감독인 셀린 송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하니 그 디테일이 이해되기도 했다. 영화를 본 후 유태오 배우와 함께하는 GV도 좋았다. 그의 소년미는 영화 전반에 살아있고, 실제로도 생생했다. 


에이치 에이 앤 디 에스 오 엠 이


 이 영화는 편하게 보기 시작했지만 오히려 후폭풍이 강렬한 영화였다. 볼 때는 웃겨서 킥킥대기도, 익숙한 감정이라고 생각하면서 보다가도 막이 내려버리니 마음 한 곳이 저미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후폭풍이 강렬한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기도 한데, 그런 면에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 두 개를 소개하면 이 영화를 왜 좋아하는지 이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갑자기 내가 좋아하는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 (Take this waltz)

네버 렛 미고 (Never let me go)


부산시립미술관

저릿한 마음을 안고 향한 곳은 부산시립미술관이다. 바로 옆에 이우환 공간도 있어서 두 곳 모두 방문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전시는 아래와 같다. 

《극장 Post Media and Site》전

《과거는 자신이 줄거리를 갖고 있음을 드러낸다》전

*상설 전시 제외


부산시립미술관


 기억에 남는 작품들은 부산시립미술관의 역대 전시 포스터, 팸플릿들을 모아 놓은 것(수집품을 좋아한다...)과 전시 중인 작품들을 슬라이드에 담아 한 컷씩 스크린으로 볼 수 있게 해 놓은 전시들이다. 리노베이션을 앞두고 있어서 미술관 건물을 이루는 골조를 볼 수 있는 점도 좋았다. 


부산시립미술관


 이우환 공간은 참... 뭐랄까 생각하고 느끼려고 하면 많은 것들을, 나의 막을 깰 수 있는 공간 같은데 아직은 내공이 부족한지... 언제쯤 저 바위가 하는 말이 들릴까 싶었다. 무엇이든지 들어보고자 <대화>라는 작품 앞에 꽤나 오랫동안 서서 생각했다. 나도 언젠가  들어보고 싶다. 네모와 동그라미가 하는 말들을 말이다.


부산시립미술관


키아로스타미는 작업 중 (Kiarostami at Work)

 잠깐 숙소에서 휴식하고 바로 두 번째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 <올리브 나무 사이로>의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삶과 작업을 조망한 다큐멘터리다. 사실 그의 영화는 하나도 보지 않았다. (시네필 맞음?) 왜 이 영화를 골랐냐 하면은 그때 마음이 기억이 나지 않지만, 봐야겠다 싶었나 보다. 그리고 보길 잘했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다른 감독들의 평에 따르면' 남들도 다 보는 일상이지만 그것을 다르게 보는 감독이라고 한다. 그의 영화를 아직 보지 않았지만 그의 작업 방식이나 생각들을 볼 수 있는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의 영화를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고, 아마 나는 그 영화들을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큐멘터리에서 짤막짤막하게 보여주었던 영화들의 발상이 새롭고도 진실되었기 때문이다. 거짓으로 만드는 창작품이지만, 꼭 작품에 드러나기를 바라는 것이 '진실성'이다. 가상의 인물, 가상의 상황이지만 자신의 이야기처럼 믿게 만드는 디테일한 솔직함. 또 한 번 넘어야 할 산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파리 아다망에서 만난 사람들 (On the Adamant)

 한 시간 정도 후에 바로 옆옆 관에서 다음 영화를 보았다. 파리 센 강에는 병원에서 운영하는 정신질환 센터 아다망이 떠 있다. 이곳에 출근하듯이 오는 사람들은 다 마음의 병을 각각 다르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감독은 그저 바라본다. 얼마나 편하게 촬영했으면 나오는 사람들이 카메라에 대고 자연스럽고 편하게 말을 했는지 신기할 정도다. 내가 그 한가운데 서서 이를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깊이 있게 물어보지도 않는다. 그들이 왜 그러는지 알아내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그저... 흐르는 강물처럼, 그 강물 위에 떠 있는 아다망에서 가만히 그들의 이야기를 정말로 듣는다. 그렇게 나도 이야기를 듣는다. 그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알아간다. 영화의 마지막 자막이 마음을 가만히 울린다. 세상엔 참 마음처럼 되지 않는 일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늦은 시간에 영화가 끝나서 더 이상 어떠한 영상도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숙소에서 잠이 들었다. 하루에 영화 세 편은 이제 무리인가 싶기도 하고. 씩씩하고 힘차게 영화를 섭렵하면서, 부국제 팸플릿에서 본 영화들을 하나씩 지워가면서 생기 있게 살던 어린 시절의 나는 몇 년 전 그 극장 중에 하나에 두고 왔나 싶을 정도로 피곤했다. 영화관마다 마주치는 생기 있는 어린 얼굴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처음 느껴보는 낯선 감정이었다. 




 둘째 날이 어슴프레 스며들었다. 스며드는 척했지만 들이닥친 느낌이다. 아침 9시 영화를 예매했다. 회복되지 않는 체력... 조식으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또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네 영화 모두 나의 기대작이라서 어쩔 수 없다. 하나도 놓칠 수 없다. 그렇게 선택한 영화는 미아 바시코프스카의 <클럽 제로 Club Zero>였다. 


클럽 제로 (Club Zero)

 미아 바시코프스카! 부국제에서 이 언니의 영화를 본 것이 벌써 두 번째다. 나에게는 어쩌면 믿고 보는 배우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난해한 영화에도 많이 출연하기는 해서 가끔은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이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는 역시나 새롭다. <클럽 제로 Club Zero>도 신묘했다. 신기하고 묘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은 영화였다. 영국의 최고급 사립학교에 온 학생 영양 교사가 아이들에게 새로운 식습관을 제시하고, 어딘가 상처받고 연약한 아이들은 그 선생님에게 매료된다는 이야기다. 현대판 피리 부는 사나이랄까, 영국판 사이비종교 입단 일화랄까... 영화를 보고 나서도 동굴에서 울리는 메아리 같은 그들의 합창이 계속 생각났다. 



 예매한 네 영화를 모두 보았다. 퀘스트를 깬 듯한 쾌감과 여전한 사서 고생 본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점심을 먹으러 전포역으로 향했다. 전포역에서 뭘 꼭 먹어야겠다는 것보다 부산에 올 때마다 가는 옷 가게를 들르기 위함이었는데, 이번 시즌에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없어서 쇼핑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식당에는 성공한 것 같다. 


#무구희

갑자기 눈에 들어온 샤부샤부 집

1인 바 자리 완비

내 속도에 맞게 밥 먹을 수 있는 편안한 곳

쌀국수를 선택하니 스리라차 소스를 제안해 주신 친절한 사장님



불꽃같이 흘러간 1박 2일 일정을 모두 마무리하고 후다닥 대구행 기차에 올라탔다. 머릿속에서 <리쎌 웨폰>의 "I'm too old for this."가 자꾸 떠올랐지만 또 한 번 해냈다. 그리고 또 올 것 같기도 하다... 


부산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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