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잃어버린 나의 우주

by 자향자

2002년 월드컵을 한 해 앞두고 있던 중학교 3학년 시절, 부모님께서 생애 처음으로 내게 핸드폰을 선물해 주셨다. 근검절약이 일상이셨던 부모님이었지만, 자식의 성화에 끝끝내 핸드폰 하나를 내 손에 쥐어주셨다. 또래보다 조금 늦게 발을 들인 새로운 세계. 그 세계는 특별함으로 가득했다.



아직도 기억난다. 삼성 애니콜. 폴더형 피처폰. 256 컬러, 16화음. 지금 보면 웃음이 나오는 초라한 스펙이지만, 당시 16살 소년이었던 나의 마음은 날아갈 듯이 기뻤고 거짓말을 조금 더 보태 마치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느낌이었다. (우주를 가진 느낌이랄까.)



단문 문자 메시지 한 줄에 마음이 흔들리고, 핸드폰에 내장된 재미없는 게임을 연신 두드리기도 하며 나만의 작은 우주를 펼쳐갔다. 내게 있어 첫 핸드폰은 그저 단순한 기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건너가는 다리였다.



세월이 한참이나 흘렀다. 이제는 핸드폰이 아닌 스마트폰이라 불리는 기계 하나가모든 세상을 연결한다. 귀찮은 은행을 방문하지 않아도 되고, 따로 시간을 내 쇼핑몰을 들리지 않아도 된다. 오프라인의 만남조차도 이제 작은 화면 안에서 이룰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기능을 품은 지금의 스마트폰은 나를 더 이상 설레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오히려 피곤함을 느낄 때가 많다. 죽어버린 수십 개의 카톡방, 넘쳐흐르는 정보들 덕분에 당최 내가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내가 뒤쳐진 것은 아닌지 불안감이 생길 뿐이다.



마흔을 앞둔 지금, 어느 날 문득 첫 핸드폰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마도 그 시절의 ‘순수한 설렘’을 재확인하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삶이 복잡해질수록 우리는 아무런 이유 없는 단순한 추억을 회상하며 당시의 소박한 기쁨의 감정을 찾아 나선다.



돌이켜보면, 생애 첫 핸드폰은 ‘처음으로 가진 나만의 세계’였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더욱더 거대하고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며, 나만의 새로운 설렘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 행복은 경험이 아니라 기억이라고들 하지 않는가.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이날을 되돌아봤을 때 중학교 시절 첫 핸드폰을 선물 받았을 때만큼의 소중한 추억이 남아있길 바란다. 다시 가슴 떨리는 일을 찾아 나서야 할 시점인가 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하프 연습, 어디까지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