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야기 1
중국에도 저항하는 사람이 있나요?
대답은 저항하였고 저항하고 싶어하는 지식인, 인민의 '일부'가 있지만 세력은 되지 못하였고 중국 어딘가에서 숨죽이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중국에서도 2000년대까지는 언론의 자유가 제한적으로나마 허용되었다. 사회 전반적으로 정부를 온건하게 비판하는 구두 발언은 대체로 허용되었고 문서 형식으로는 약간의 제한이 있을 뿐이었다.
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그 상징적인 사건이 남방주말&신경보 언론탄압 사건이다. 다음의 기사의 일부이다.
"사건의 발단은 연초 중국 개혁파 언론의 상징인 <남방주말>의 신년 사설 제목과 내용이 광둥성 선전당국에 의해 공산당 통치를 찬양하는 내용으로 탈바꿈한 것이었다. <남방주말>은 애초 ‘중국의 꿈은 헌정의 꿈’이란 제목으로 정치개혁과 민주를 촉구하는 내용의 신년 사설을 작성했지만, 수정된 사설 제목은 ‘우리는 어느 시기보다 꿈에 가까이 다가가 있다’였다.
당국에 편집권을 침해당한 <남방주말> 기자들은 파업으로 맞섰고, 우여곡절 끝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광둥성 선전부의 사전검열을 없애고 파업 참가자들을 해고하지 않겠다는 해법이었다. 주요 언론이 당국의 검열에 맞서 20년 만에 공개 파업을 벌인 끝에 얻어낸 ‘작은 승리’였다.
하지만 사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베이징의 유력 일간지인 <신경보>가 <남방주말>을 비판하고 당국 입장을 옹호하는 <환구시보> 사설을 게재하라는 당국의 요구를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베이징시 당국은 사설을 전재하지 않으면 신경보를 폐간하겠다고 협박했고, 사장이 당국자의 면전에서 이를 거부하고 사의를 표명하자 편집국은 눈물바다가 됐다고 한다. 결국 문제의 사설은 대폭 축소돼 지면에 실렸다.
-한겨레, [사설] 중국 언론통제 실상 드러낸 ‘남방주말’ 사태, 2013.1.10 기사에서 인용
이 사건을 필두로 사회 곳곳에 당과 정부의 압력과 감시, 색출, 처벌이 횡행하게 되었다. 인민들은 빠르게 분위기를 감지하였다. 중국에서는 당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빠르고 신속하게 움직이며 당이 결정하면 인민은 따른다라는 구호는 허언이 아니다. 대약진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렇다고 하여 아무런 저항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은밀한 사건은 풍문처럼 떠돌았지만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 되어 버렸다. 누구도 감히 나서지 못하게 되었다.
이유는 어쩌면 간단하다. 저항을 분쇄하는 정권의 탄압의 정도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으며 기술의 발달로 더욱 저항이 어려워졌다. 더불어 옛 기억은 소환되었고 광장에는 모이지 못했다.
일정규모 이상의 모임은 모두 추적될 수 있고 인터넷 검열은 인공지능의 발달로 매우 빠르고 정확해졌을 것이다. 외부 정보는 철저히 차단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 당과 정부는 하이테크 기술의 도움으로 더 강력해졌다.
앞으로도 저항은 없을 것 같다. 팬데믹 시기의 몇몇 도시에서 일어난 소요사태는 불과 몇달만에 없던 잊혀진 일이 되었다. 이제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