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0. 27.
전자책(e-book)이 처음 출시가 되었을 때, 앞으로는 종이 책이 사라질 것으로 예측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디지털 서점이 활성화되고, 오프라인 상권은 죽을 것이라고 예상했죠. 그런데 이런 종이 책이 의외로 아날로그 감성을 일깨우는 훌륭한 공간디자인 요소로써 예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제가 학생일 때만 해도 코엑스는 가장 활성화된 모임 장소 중의 하나였는데요,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지게 되었음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몇 해 전 진행된 공간 리노베이션은 성공적이지 못한 사례로 불리기도 했죠. 하지만 최근 신세계그룹이 인수 후 스타필드로 명칭이 바뀌고 일부 공간들이 새롭게 리뉴얼되면서 활기를 찾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올봄 오픈한 별마당도서관은 그간 다소 침체를 겪었던 코엑스 몰을 활성화하는 것과 동시에 쇼핑과 문화 그리고 다양한 이벤트가 같이 공존하는 국내의 대표적인 복합 문화 공간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코엑스 몰 일부(아뜨리움) 공간을 활용한 별마당도서관은 ‘책을 펼쳐 꿈을 품을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코엑스 몰 안팎으로 여러 방향에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총면적 2,800㎡(약 850평)에 2개 층으로 구성된 별마당도서관 전경
▲ 방문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13m의 대형 서가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대형 서가 3개를 연결하는 브리지 공간과 이 공간에 숨어있는 상업 공간들입니다. 둘러보면서 기획이 굉장히 영리하다고 생각을 했는데요. 사람들은 브리지 공간을 넘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이 상업 공간을 거쳐 갈 수밖에 없는 동선이기 때문이죠. 꼭 필요한 공간에 적재적소의 상공간을 배치하면서 이윤추구도 같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방문객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브리지 공간 뒤편(왼쪽), 자유롭게 둘러보고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작은 공간들(오른쪽)
문화 코드는 오프라인 공간을 형성할 때 핵심적인 키워드 중 하나입니다. 특히 상업 공간은 무엇보다도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요소를 발산해야 방문객을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은 중요한 디자인 기획 요소라 할 수 있죠. 별마당도서관은 이런 감성을 자극해서 성공한 케이스가 아닐까 합니다. 다소 불편할지라도 직접 만지면서 느껴보는 책의 감성은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들고 머물고 싶게 합니다. 굳이 특별한 볼일이 없더라도 여유 시간에 산책 겸 편하게 들리고 싶은 공간인 거죠. 책을 매개로 따뜻하고 편안한 감성이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공간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디자인할 때 한 번쯤 생각해보는 기본 콘셉트가 있습니다. 바로 ‘라이브러리’인데요. 특정 주제를 가지고 관련된 서가를 만들거나 은유적으로 분위기를 구성하는 기획 등 ‘라이브러리’ 주제로 여러 가지 방법의 공간 스토리를 재미있게 구성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라이브러리’라는 어감에서 느껴지는 문화 감성은 덤으로 차용할 수 있죠.
여기 또 다른 ‘라이브러리’ 콘셉트로 명소가 된 공간이 있습니다. 바로 CGV에서 만든 씨네라이브러리인데요. 182석 규모의 씨네라이브러리는 원래 극장이었던 상영관 하나를 리모델링하여 도서관으로 바꾼 공간입니다. 이곳이 매력적인 이유는 영화관이라는 아날로그 감성이 가득한 공간에, 종이책이 가지는 또 다른 아날로그 감성을 결합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물론, 호기심에라도 한번쯤은 들려보고 싶은 공간을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이왕 보려 했던 영화라면 이곳을 한 번쯤 찾게 되지 않을까요?
▲ 계단식 구조와 전면 스크린을 그대로 두어 리노베이션 전 기존 상영관의 느낌을 그대로 살린 씨네라이브러리
씨네라이브러리는 ‘영화를 읽다’라는 콘셉트에 맞게 다양한 영화 관련 서적을 비치하고 있고, 실제 영화 촬영에 이용된 소품들로 공간 스타일링을 하고 있습니다. 일부 서가는 유명 감독이나 영화인들의 추천 도서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요. 실제 추천인의 자필 사인과 추천 글 있어 책을 통해 서로 소통하는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 영화인 100인의 추천도서가 눈에 띄는 서가
▲ 집중해서 책을 볼 수 있도록 충분한 좌석과 개별 스탠드를 배치, 조도가 낮고 은은한 조명으로 계획
리프레쉬가 필요할 때, 혼자만의 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싶을 때, 영화 한 편 예매하고 영화 시간을 기다리며 책 한 권 읽어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될 것 입니다. 실제 수익을 창출하지는 못해도 이런 공간을 통해 브랜드는 잊히지 않고 영속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도서관은 아니지만, 이번 탐색을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공간은 통의동 보안 서점이었습니다. 핫 플레이스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텐데요. 보안여관 신관 카페 일상다반사 건물 지하에는 보안서점이 있습니다. 낮에는 서점 겸 북카페로, 밤에는 바(bar)로 변신하는 이곳은 보안여관의 재생 공간, 아날로그 코드의 연장 선상에 있는 곳입니다. 디지털 시대에 ‘서점’은 책을 판매한다는 고유의 기능에서 다소 변형되어 문화와 감성의 키워드로 살아남았습니다. 보안서점 또한 그런 공간입니다. 어떠한 책을 ‘사기’ 위해 방문하는 공간이 아닌, 어쩌다 우연히 들렸다가 마음에 들어, 또는 잠시 앉아 독서를 하다가 소장하고 싶어, 책을 구매하게 만드는 공간인 거죠. 그래서 보안서점은 대놓고 책을 판매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밤에는 가벼운 라운지 바로 변신하는 두 얼굴의 공간입니다.
▲ 손글씨가 돋보이는 입구 간판(왼쪽), 보안서점의 자유분방한 콘셉트가 느껴지는 내부 벽면(오른쪽)
▲ 음료와 독서를 할 수 있는 내부 전경
▲ 저녁 시간에 운영되는 보안술집(왼쪽), 과거 건물터를 확인할 수 있도록 유리로 마감한 내부 바닥(오른쪽)
대형 서점이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보안서점처럼 작지만 특별한 독립서점들이 많이 생겼다고 합니다. 대형서점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여유와 위트가 있어 소소한 매력이 넘치는 곳들이죠. 하루 날 잡아 이런 공간들만 찾아 방문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또 다른 도시놀이가 될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어쩌면 우연히 인생의 책을 만날 수도 있겠죠.
다시 흑백 필름 사진이 유행하고, 블루투스 스피커가 발전해도 여전히 턴테이블을 찾는 사람들이 꾸준해 있는 것처럼 디지털시대에서도 아날로그는 죽지 않고 독특한 매력으로 다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습니다. 때때로 인문학적인 감성을 일깨우고 싶을 때 여러분들도 오늘 소개한 공간들을 한번 방문해보는 것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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