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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기 Mar 02. 2023

은근슬쩍 새해가 밝았다.(라고 하기엔 벌써 3월이네.)

기록하는 2023년│Episode 91│2023.03.02

(*아무런 상관이 없는 토마토 샐러드 사진이다. 그냥 내가 좋아하고, 최근에 맛있게 먹었다)


마지막 글이 22년도 7월 2일, 에어컨을 설치했다는 것이었는데 벌써 봄이다. 그 사이 계절이 세 번이나 바뀌고 네 번째 계절이 찾아오고 있다. 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스치더니, 유난히도 춥던 겨울이 지나간다. 유행과는 상관없이 롱패딩 없이는 밖을 나서지 않던 날들이 엊그제 같은데, 오늘은 니트카디건 하나만 걸치고 출근했다. 아, 그런데 생각보다 춥다.


뭐든 첫날은 이상하게 설렌다. 오늘 3월의 첫 출근날은, 아무것도 아님에도 새로운 달의 첫 출근이라는 것만으로도 괜히 들뜨게 된다. 게다가 3월이라니. 새 날, 새 출발, 새 다짐 등 '새로움'과 유독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어제까지 몹시도 게으르고 엉망진창인 날들을 살았더라도, 괜히 오늘부터는 잘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분이다. 오늘 퇴근 후에는 귀찮다, 바쁘다는 이유로 미뤄뒀던 일을 하나는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출근길에 나선다. 그리고 더 재미있게 살아야겠다는 필요 없는 다짐도 함께 해본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닌지, 마침 브런치에서 알람이 왔다.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알람이다. 


작년 7월 마지막 글 이후 지금까지 브런치는 수도 없이 많은 알람을 울렸다. 감사하게도 누가 내 브런치를 구독했다는 알람부터, 어떤 글의 조회수가 얼마를 돌파했다는 알람, 내가 글을 쓰지 않은지 꽤 많은 날들이 지났다는 알람까지. 꽤 많은 알람이 울렸지만, 그 알람이 진짜로 나까지 닿지는 않았다. 그냥 볼 때마다 내가 뭔가를 놓치고, 꾸준히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찝찝했다. 그래서 오히려 알람이 울리면, 알람을 꺼버릴 뿐이었다.


그런데 오늘의 알람은 뭔가 달랐다. 알람이 특별했던 것인지, 새 달의 새 날이라 내 마음이 특별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울린 알람이 내게 와서 닿았다. 관심사가 무엇이냐는 어쩌면 굉장히 평범하기만 한 문장에 나는 내 관심사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요즘 나는 포장지에 꽂혔다. 


포장지라는 것을 좋아한 지는 꽤 되었지만, 부쩍 포장지에 빠졌다. 정확히 말하면 요즘에는 포장지에 큰돈을 쓰고 있다. 포장 재료를 사기 위해 반차를 내고 방산시장에도 가보고, 동대문 액세서리 상가에도 가봤다. 그리고 포장지 계정도 2개나 만들었다. 그리고 꿈도 구체적으로 생겼다. 바로 포장지 가게 사장님이 되는 것이다. 이름도 정했고, 공간 디자인도 (혼자) 해놓고, 어떤 브랜드의 포장지를 입점시키고 싶다는 생각까지 끝마쳤다. 내게 필요한 것은 이제 돈과 용기뿐이다. 둘 중 하나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둘 다 없다는 것이 문제다. 과연 내가 실제로 가게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나중 문제다. 어쨌든 우선 나는 지금 포장지 가게 사장님이 되고 싶다.


그래서 관심사가 무엇이냐고 묻는 브런치의 알림에, 나는 내 관심사인 포장지에 대해 어디엔가는 기록해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 뒤에 사라질 관심일지, 진짜로 포장지 가게 사장이 되는 과정일지 확신할 수 없지만, 어쨌든 그 과정을 어딘가에는 남겨 놓고 싶었다.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브런치에 들어왔다.


브런치에 들어오니, 작년 상반기 그래도 꾸준하게 적어놓았던 글들이 나를 반긴다. 새삼 재미있다. 내가 쓴 글이 재미있다는 것이 스스로 약간 어이없긴 한데, 뭐랄까 나 작년에 꽤 잘 살았나 싶다. 내 기억 속에도 없던 나의 작년 이맘때가 한 편의 글로 남아있다. 신나는 기분이다. 작년에 글을 쓸 때 분명 매일 즐거웠던 것은 아니다. 어쩔 때는 밀리고, 어쩔 때는 의무감으로 썼는데, 어쨌든 그 구구절절한 과정은 다 사라지고, 90개의 글만 남아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힘-기록의 힘이랄까, 꾸준함의 힘이랄까-을 이렇게 아주 사소한 곳에서 느낀다. 


그래서 작년만큼은 아니겠지만, 올해도 틈날 때마다 기록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그게 포장지에 대한 것이건, 먹은 것에 대한 것이건, 그것도 아니면 맨날 하는 반성과 후회에 대한 것이건, 적어볼 테다.


삼월의 첫 출근 날은 무엇인가 다짐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이다. 그리고 지금 내게 포장지라는 관심사가 분명히 있다는 것도, 참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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