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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 Jul 24. 2023

수박을 자르다가

 동그란 수박을 썰어 네모난 밀폐용기에 담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꼬투리가 생긴다. 이 꼬투리는 김밥 꼬투리와는 다르게 가운데 부분에 비해 덜 달고 밍밍하여 갈아서 소르베나 주스를 만들어 먹는다. 나는 당을 더하는 게 싫거니와 또 무언가를 하는 게 귀찮기도 해서 꼬투리만 모아 따로 밀폐용기에 담아둔다. 나중에 냉장고에서 수박을 꺼내 먹을 때, 맛있고 반듯한 가운데 부분부터 먹을 것인가, 꼬투리 부분을 빨리 처치해 버릴까 늘 고민한다.


 요리하는 사람의 마음인가. 잠깐의 내적 갈등 끝에 꼬투리를 먹고 달고 반듯한 가운데 부분은 가족을 위해 남겨둔다. 제과 수업을 들을 때도 그랬다. 제품이 완성되어 맛보기를 할 때 수강생들은 모두 약속한 듯 제일 모양이 안 나왔거나 어딘가 터지거나 찌그러지거나 하여튼 조금이라도 흠이 있는 제품을 먼저 먹었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가장 예쁘고 잘 된 걸로 먹어보라고, 그래야 판매하는 제품의 맛을 제대로 안다고 하셨다. 그래도 수강생들은 예쁘게 잘 만들어진 작품은 더 예쁘게 포장해서 들고 가고, 모양이 좀 안 예쁘거나 망가진 것만 먹었다.


 조금 원망스럽기도 하다. 똑같이 동그란 모양의 멜론도 사과도 복숭아도 가운데가 더 달고 맛있진 않다. 어느 부분을 먹어도 같은 맛이 나는데 유독 수박만 가운데 부분일수록 달다. 큰 수박을 혼자 먹긴 힘드니 누군가와 나눠 먹어야 하는데 가운데만 먹는 사람과 꼬투리를 먹는 사람이 나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투리는 수박을 손질하는 내 몫이 된다.


 수박의 중심부로 갈수록 겉 부분에 비해 씨가 많다. 가장 맛있는 부분을 차지하려면 이 정도 번거로움은 감수해야 한다는 세상의 이치를 말해주는 듯이. 수박을 포함한 모든 과일은 일교차가 클수록 더 달고 맛있게 자란다. 즉, 일교차로 고생 좀 한 놈이 더 상품이 된다. 수박 하나에 세상이 담겨 있는 것 같다. 


 혼자서 30분 동안 8kg이나 되는 수박을 손질하다 보니 오만 생각이 다 든다. 큰 밀폐용기 두 개를 꽉 채워 냉장고에 넣고 음식물 쓰레기도 2리터짜리 2 봉지나 나왔다. 정갈하게 담긴 수박을 보면 든든하고 뿌듯하다가도 또 음식물 쓰레기 버리러 갈 생각에 귀찮아서 한숨이 난다. 손질하면서 야금야금 먹어 치운 자투리 수박 때문에 배가 부르다. 내일은 가장 반듯하고 예쁜 모양의 수박을 내가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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