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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 Aug 23. 2023

여름엔 아이스 우롱티

 

 6월 말의 대만은 뜨거웠다. 친구들과 월 2만 원씩 모으기 시작한 여행 곗돈이 꽤 모였다. 통장을 핑계로 오랜 친구들과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가기로 했다. 휴가를 맞춰 쓸 수 있는 날이 길지 않아 2박 3일 일정으로 가깝게 다녀올 수 있는 대만을 선택했다. 대만에 다녀온 뒤로 찌는 듯한 여름 날씨의 척도는 대만이 되었다. ‘와 진짜 오늘은 대만보다 덥다’와 같은 식이 되었다.


 모든 음식이 입맛에 잘 맞아 놀라울 정도였지만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음식은 4명 만장일치로 애플망고였다. 그래서 여행 마지막 날 가장 맛있었던 음식을 꼽는 대화에서 망고는 제외하고 이야기하기로 했다. 친구들은 딘타이펑, 빙수 등의 음식을 꼽았지만 내 마음속 1순위는 우롱차다.


 버블티 러버이자 커피를 못 마시는 내게 대만은 천국 같은 곳이었다. 아, 물론 날씨를 빼고 음식만 이야기했을 경우다. 어딜 가나 버블티 집이 있고, 편의점에는 차 종류가 무척 다양했다. 식당에 가면 물 대신 차를 내주는 가게가 많았다.


 한국에서는 커피를 못 마시는 것이 단점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밥 먹고 아아로 개운하게 내려주는 느낌이 뭘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커피를 마시는 느낌은 뭘까. 점심시간에 누군가가 사주는 카페에서 모두 아아를 고를 때, 혼자 가격이 천 원은 더 비싼 티나 주스류를 마시며 눈치 보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다.


 대만에서는 커피를 못 마셔도 크게 상관없을 것 같다. 티문화가 무척 발달했으니. 더운 날 시원하게 에어컨이 나오는 식당에서 마시는 뜨거운 우롱차도 좋고, 반대로 차가운 우롱차를 보리차처럼 벌컥벌컥 들이켜면 갈증이 다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십여 년 전 아르바이트를 하던 버블티 가게에서 우롱티를 처음 맛본 후 가장 좋아하는 차는 변함없이 우롱티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홍차나 녹차에 밀려 우롱티의 존재는 크지 않다. 최근에 많이 늘어났다고는 해도 카페에서 우롱티를 파는 것을 보면 반가운 마음이 들 정도랄까. 게다가 피치 우롱, 리치 우롱 등 가향이 되지 않은 순수 우롱티를 파는 곳은 많지 않아 그만큼 소비자층이 적은 것 같아 아쉽다.


 여행 마지막 날 한국인 필수 코스인 까르푸에서 40개입 우롱티 티백을 샀다. 큰 마트에 가지 못해 선택의 여지도 별로 없었고, 지칠대로 지친 후에 간 마트라 급하게 대충 산 것인데 노다지였다. 고급 티도 아니고 대용량 마트표 티백인데 티백 안에 찻잎이 가득 들어서 물을 부으면 아주 티백이 터질듯 빵빵하게 차오른다. 여행을 다녀온 뒤로 2-3일마다 저녁에 뜨거운 물에 티백을 우리고 식혀 냉장고에 넣어둔다. 아침에 일어나서 차가운 우롱티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한다. 뜨거운 티도 매력이 있지만 여름 아이스 우롱티는 갈증을 싹 날려주고 속이 시원해지는 기분이 든다. 여행지에서 느꼈던 그 개운함이 되살아나는 맛이다. 달달한 디저트를 먹을 때 특히 맛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 때 이런 기분일까.


 8월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곧 서울 여름의 상징인 한강 수영장도 문을 닫는다고 하고,  대부분의 해수욕장이 8월 말 폐장한다. 매일 저녁 우롱티를 우리면서 생각한다. 이 여름도 끝나가는구나. 한두 달 뒤면 저녁에 미리 냉장고에 넣어둔 머리가 띵해지도록 차가운 우롱티 대신 뜨거운 물을 끓이게 되겠구나. 2023년 여름을 떠올리면 목구멍부터 뱃속까지 시원해지는 우롱티의 고소하고 씁쓸한 뒷 맛이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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