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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 Oct 25. 2023

모로 가도 계란말이

  어쩐지 남이 요리하는걸 보고 있으면 평온해진다. 그래서 도시락 만드는 유튜브 영상을 즐겨 본다. 누군가를 위한 점심 식사를 준비하는 이른 새벽의 분주한 움직임은 어딘가 더 따뜻하다. 자신의 점심 도시락을 챙기는 직장인, 아들을 위해 도시락을 싸는 워킹맘, 아이를 위한 캐릭터 도시락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 주부 유튜브도 몇 개 보는데 집집마다 거의 매일 아침 계란말이가 등장한다. 얼마나 자주 만들면 직사각형 전용 팬 없이 둥근 후라이팬으로 네모 반듯한 계란말이를 뚝딱 만들어낸다. 매 번 나오는 반찬인데도 계란말이 만드는 장면은 지루하기보다는 흥미롭고 재미있다.


 식구들이 잠든 새벽 정적을 깨우는 계란 깨는 소리에 이어 경쾌하게 계란을 풀어 계란물을 만드는 리듬, 너무 높지 않은 온도로 달군 후라이팬에 계란 물을 부었을때 지글거리는 소리, 단단하게 네모 각져 감긴 노랗고 예쁜 계란말이를 썰어 단면을 볼 때의 쾌감이 있다.


 계란말이의 매력은 속재료에 따라 다양하게 변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 엄마는 다진 햄과 야채를 볶아 모짜렐라 치즈와 함께  속을 두툼하게 채우고 돌돌 말아 내 주먹만큼 두꺼운 계란말이를 만들어 주었다. 속이 꽉 찬 피자 같은 계란말이에 케찹만 뿌리면 밥 한 그릇도 뚝딱 비울 수 있었다.


 밖에서 사먹는 계란말이는 또 다른 매력이다. 한식집에서 파는 계란말이는 계란물을 얇게 부쳐 나이테처럼 결이 살아 있는게 특징이다. 기름을 넉넉하게 두르고 센 불에 부쳐낸 계란말이의 끝을 붙잡으면 주루룩 말린 계란이 풀리기도 한다. 백반 집에서 는 기본 반찬으로 자주 나오는데 갓 부쳐 솜씨 좋게 만 따끈따끈한 계란말이를 일행과 한두개씩 집어먹다보면 어느새 바닥이 나 아쉽다. 흔한 반찬이지만 더 달라고 요구하기는 어쩐지 조심스러워 슬쩍 눈치를 보면서 접시를 내밀어 두어개 더 받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 없다. 


 위에서 언급한 유튜브에서 만드는 도시락용 계란말이는 편식하는 아이를 위해 아이가 아직 먹지 않는 야채를 잘게 다져서 몰래 계란물에 풀어 숨겨 말기도 하고, 가운데 맛살을 넣어 모양과 맛을 내기도 한다. 스틱치즈도 넣고, 낫또도 넣고, 고기도 넣고, 김도 넣고, 명란도 넣고 그날 그날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넣는다. 계란말이에는 뭘 넣어도 잘 어울리고 맛이 좋다. 물론 아무것도 넣지 않고 계란만 말아도 맛있고, 일본식으로 다시마물을 넣고 카스테라처럼 빵빵하고 달짝지근하게 만들어도 좋다.


 계란말이의 가장 좋은 점은 어쨌든 마무리만 잘 하면 된다는 것이다. 계란물을 여러번 부어 마는 과정에서 중간에 조금 실수가 있었다 해도 마지막 라운드에서 예쁘게 말면 예쁜 계란말이가 된다. 빨리 익히려고 아예 처음에는 동그랗고빠르게 저어 한 번 말아두고 시작하기도 한다. 계란물을 풀기도 귀찮을 때는 아예 후라이팬에 바로 계란을 깨서 후라이팬에서 바로 풀면서 말기도 한다. 말긴 했는데 좀 불안하다 싶을 때는 김발에 싸서 모양을 잡거나 계란말이 틀에 넣어 하트, 별 모양으로 예쁘게 만들 수도 있다. 하다가 정 안되겠을 때는 재빠르게 휘휘 풀어 스크램블 에그로 변신시키기도 한다. 얼마든지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게 계란말이다. 조금 태우거나 아예 모양을 잡지 못한다해도 이래도 저래도 맛있다. 


 계란말이를 만드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 말다가 실수 좀 해도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고, 실수해도 맛과 영양은 달라지지 않고, 다양한 변주도 가능하고, 오늘의 계란말이가 실패해도 내일의 계란말이가 있다는 마음으로 주눅들지 말자고 다짐한다. 찢어지거나 태우면 안되서 손 떨며 만드는 지단이 아니다. 나만 안 되는 것 같은 수란도 아니다. 실수해도 실패해도 가슴 펴고 당당하게 살자. 모로가도 마지막에 잘 말기만 하면 계란말이처럼.


태블릿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는 글과 그림을 함께 올려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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