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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ssion Azumma Apr 22. 2024

사춘기#2

친구가 전부는 아니란다

초여름에 들어선 혈기왕성한 시절의 아이들을 마른나무가 되어 가는 부모세대가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 계절을 나도 당신도 겪어왔지만 기억은 늘 저편에 있는 관계로 흐리멍덩한 그림자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때의 온기와 느낌은 기억할지 몰라도 감정의 색채를 기억하기란 도무지 쉽지가 않다. 계절이 변한 것처럼 세월도 변했고 우리 시대의 성장기와 지금의 아이들의 그것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지금 십 대의 고민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무엇일까? 대학? 인생? 미래? 물론 그들 중 몇몇은 진지하게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무엇을 할지, 그러기 위해서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행하는 아이들도 있다. 잔소리만 줄여 주면 알아서 헤쳐나갈 아이들이다. 그런 아이들은 대체로 친구관계도 원만하다. 친구가 1순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가장 큰 문제는 친구에 목매는 아이들. 친구 없이 학교생활이 불가한 아이들. 친구가 아니면 목표 자체가 설정이 안 되는 아이들. 이처럼 나는 친구가 청소년기의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감히 생각한다. 물론 좋은 친구관계를 이루고 있다면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그러나 친구를 위해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소멸시키는 아이들이 있어서 문제다.


'너 그러면 우리랑 못 놀아'

'네가 그랬다며? 이제 끝이야'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이런 말을 들으며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 무리에 끼고 싶어서 그들과 같은 취미를 공유하고 눈 밖에 나지 않으려 애쓰는 아이들.


내 친구 딸은 그런 친구들 때문에 힘들어하다가 전학까지 했다. 전학 후에는 괜찮았냐고? 그럴 리가! 자기 자신보다 친구가 1순위인 아이들은 장소가 바뀌고 주변 친구들이 새로이 조성된다 해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가 쉽지가 않다. '친구 없는 아이' 즉, 왕따가 되지 않기 위해 아니 그런 아이로 비치지 않으려고 그 안에 속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지금 아이들은 엄마들이 맘카페며 유치원 모임이며 해서 어릴 때부터 엄마가 친구를 만들어 준다. 친구가 없으면 이상한 아이라는 개념은 어쩌면 엄마들이 만들어 준 건지도 모른다. 나 또한 그랬다.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어느 날 아이가


"엄마. 나는 저 친구랑 안 친하고 싶은데 왜 같이 놀아야 해요?"


그때서야 내가 아이의 인생에 많이 개입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최근 앞서 말한 친구의 딸아이가 고등학교에 진학하고도 친구들 때문에 너무 힘들어해서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한동안 그 친구와 전화로 많은 이야기를 했다. 새로 전학한 중학교에서도 그 안에서 서열관계가 생겼다. 엄마는 알지 못하는 그들만의 세상인 것이다. 그 관계에서 벗어나고자 아예 그 친구들이 없는 고등학교로 진학했음에도 다시 친구문제로 괴로워하는 딸을 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단다. 내 친구는 항상 아이들과 엄마들이 함께 하는 모임을 가졌다. 그런 와중에 애들끼리 다툼이 생기면 친구는 늘 자기 아이에게 사과하라고 했다고 한다. 아이는 이유도 모른 체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려면 내가 먼저 사과해야 한다는 가치관이 생겼을 것이고 스스로 친구를 만드는 방법을 모르고 자랐을 것이다.


문제는 내 친구도 그런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누군가에게든 싫은 소리를 듣는 걸 불편해했다. 늘 양보하고 배려하고 내가 먼저 수그리면 관계는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알고 있어도 고치지 못하거나 아예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걸 암암리에 아이들에게 대물림하는 것이다.


우리 때는 골목에 나가서 만나는 아이들이 다 친구들이고 그렇게 어울려 고무줄도 뛰고 피구도 했다. 부모님은 먹고살기 바빠 대부분 집에 안계셨다. 지금처럼 사교육에 휘둘리던 때도 아니었고 게임을 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다. 그래서 좀 더 자유로운 친구관계가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때론 싸우기도 하지만 다음날 어색한 만남이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아무렇지 않게 어울리거나 네가 잘했니 내가 잘했니 싸우기도 했다. 남자애들은 심지어 주먹다짐도 많이 했다. 다툼은 힘들고 아프지만 그 관계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배우고 자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지금의 아이들은 그런 기회조차도 없다. 우리 때는 핸드폰이 없을 때니 졸업하고 집 전화가 바뀌거나 이사를 가면 자연스럽게 헤어지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무리에서 찍히기라도 하는 날엔 sns에서 득달같이 달려드니 도망갈 곳도 없다. 어릴 때부터 부모와 공감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이라면 털어놓고 고민을 나누기라도 하겠지만 생각보다 그런 대화가 없는 가정이 많다는 게 실제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 세대라고 왕따가 없었을까? 물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것과 비교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다.


자존감이 결여된 채 형성되는 인간관계는 본인을 피폐하게 만든다. 태어날 때부터 배려가 장착되어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학습되고 그게 편하다는 걸 깨치는 순간 나 자신은 없어진다. 그렇게 자신을 잃은 채 주변을 맞춰주기만 하는 아이는 그 속에 작은 화가 싹터 나중에 목구녕까지 가득 차 결국 정신까지 아프게 만든다. 인간관계는 상호작용이다. 일방적일 수가 없다. 내가 오롯이 서 있으면 내 주변에도 그런 친구들이 하나둘씩 생긴다. 그렇게 생각을 주고 받으며 돈독해지는 것이 친구다.


많은 친구가 있다고 과연 내가 좋은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가 없으면 친구가 왜 없는지를 아이와 얘기해봐야 하는데 왕따라도 당하고 있는 건 아닌가 의심부터 한다. 그러면서 따지고 꼬치꼬치 캐묻는다. 그렇게 해서는 아이의 진심을 들여다볼 수 없다. 그 길로 아이는 부모와의 대화의 문을 닫아버릴 것이다. 아이의 진심이 무엇인지 매일 꼼꼼히 살펴야 한다. 굳이 친구를 만들고 싶어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게 자신을 먼저 챙기느라 주변은 뒷전인 건지 친구들과 어울릴 용기가 없어서인지 요령껏 살피는 것도 부모의 자질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늘 이렇게 얘기한다.


"친구관계는 너무 중요해. 하지만, 억지로 만든 관계는 결국 깨어지게 마련이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나면 친구는 자연스럽게 생기더라고. 엄마도 초등학교 중학교 때 친구는 지금 거의 없어. 니들도 알겠지만 엄마랑 지금까지 친한 이모들은 다 고등학교 대학교 때 친구들이야. 시간이 흐를수록 나와 비슷한 성향이거나 또 나를 이해해 줄 수 있고 나 또한 이해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날 가능성이 더 높아지더라고. 철이 조금씩은 든다고 해야 할까? 좋은 친구 그렇지 못한 친구를 가리는 힘도 생기고 말이지. 지금 당장 친구가 없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 정말 소중한 친구는 우연처럼 또는 기적처럼 찾아오기도 하니까~엄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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