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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ssion Azumma May 03. 2024

고3 스트레스

"엄마, 나 며칠 동안 제대로 못 먹고 먹으면 계속 토하고.. 너무 힘들어요"


기숙사 생활 중인 큰 딸이 전화가 왔다. 멀리 있는 아이, 아프다는 말만 들어도 심장이 덜컹한다. 요 며칠 계속 컨디션이 안 좋다고는 했지만 이 정도로 힘든지는 몰랐던 터라 차키를 집어 들고 발만 동동이다. 이미 밤 9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다. 이 시간에 응급실을 간들 이 의료대란 분위기에 뺑뺑이만 돌다 아이만 힘들게 할지도 모른다. 부산이면 모를까 대구는 어디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어쩌지..


"일단 어떻게든 버텨볼게요. 위액까지 다 토한 거 같아요. 속이 너무 아파서 눕지도 못하겠어요"


아이가 아프면 다 내 탓같다. 어릴 때 내가 못 키우고 할머니 손, 어린이집을 떠돌며 자란 탓에 유난히 잔병치레가 많은 아이다. 미안한 마음에 걱정만 한 보따리 앞선다. 


"엄마가 아침에 일찍 갈게. 바로 병원 가자. 그때까진 괜찮겠나?"


아이를 다독거리고 잠을 청해보라고 했다. 열은 없다니 일단은 다행이다. 잠만 좀 자도 괜찮을 텐데. 아차차.. 내일 중간고사라고 했는데 시험은 어쩌지? 고민하고 있으니 남편이 대뜸

 

"시험이 문제가 아가 아픈데! 내일 집으로 데꼬 온나!"


시험도 문제다 이 양반아! 고3 중간고사. 수시로 대학을 가야 하는 아이인데 중간고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모르는 저 무식쟁이 아빠를 우야면 좋노. 일단 시험이 3교시까지라고 하니까 그때까지만 버텨주면 좋으련만..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꼬맹이들(중1, 초6인데 아직도 내 눈엔 꼬맹이다) 단도리만 해놓고 바로 집을 나섰다. 두 시간이면 가는 길인데 왜 이렇게 멀게 느껴지는지 가는 동안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했다. 선생님이 일단 기숙사를 먼저 가봐 주시겠단다. 아이 상태 보고 어떻게 할지 의논하자고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사실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이 안 섰다. 시험만 아니면 병결처리하고 병원에 데려가면 될 일이다. 시험만 아니면.


잠시 후에 선생님이 아무래도 병결하고 병원을 바로 가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시험 치다 쓰러지기라도 하면 그것도 곤란하다. 아이는 밤새 토하고 아침에 물 한 모금도 못 마신 상태다. 되었다. 바로 위내시경으로 간다. 아이 학교 근처에 당일 위내시경이 가능한 곳이 있는지 알아보고 아이에겐 택시를 타고 오라고 했다. 아무래도 그게 빠를 것 같았다. 5분 차로 목적지에서 아이를 만났다. 퀭한 얼굴이 모성애를 또 자극한다. 에구에구 내 새끼.. 맘이 아프다. 


"시험은 어뜩해요? 흑흑"


"지금 시험이 문제가? 그걸로 대학 못 가면 어차피 못 가는 거고 운 좋으면 그래도 가는 거고. 기말고사 잘치면 되지 뭐. 하늘에 맡기삼"


그것도 위로랍시고 에그 못난 엄마야. 잠시 후 위내시경을 받으러 아이는 들어갔고 10분쯤 뒤에 간호사가 회복실로 불렀다.


"엄마, 나 아직 마취도 안 했는데 침대를 옮겼어요. 나 뭐 잘 못된 거 아니에요?"

"끝났어(요 년아..) ^^;;"


검사 결과는 이상이 없다. 애기 위처럼 다행히 깨끗하다. 그제야 한시름이 놓인다.


"예민한 여학생의 경우 종종 이렇게 위염증상처럼 나타나기도 합니다. 스트레스가 많은가 봐요. 고3이고 집에서 떨어져 있으니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스트레스 조절이 필요할 거 같습니다. 가능하진 않겠지만"

'네네.. 쓰앵님. 고3스트레스 우리도 겪었잖아요. 왜 모르겠어요.'


되려 이상이 없다는 소리에 더 움츠러든 아이 등을 보니 짠하고 안쓰럽다. 진짜 아팠음 핑계라도 댈 텐데 그마저도 없어져서 엄살 아닌 엄살이 되어버린 게 마뜩잖은 거 같다. 밤새 아프다 투정 부린 게 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니 그럴 리가 없다는 표정이다. 


"엄마도 고3 때 변비로 응급실도 가고 그랬어. 너무 신경 쓰고 잘하려고 하지 않아도 되니까 이 시절도 즐겨. 입시 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나 보네 다 지나갈 거야~"

"엄마... 나 대학 가면 어떻게 해요?"

"대학이 대수가. 못 가면 못 가는대로~ 너 좋아하는 글이나 쓰면서 엄마랑 살지 뭐~~"


우리 아이만의 고민이겠나. 우리 아이는 표라도 났으니 그래 힘들구나 공감이라도 해 줄 수 있었지만 많은 아이들은 당연하게 참아가며 이 시절을 보내고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대한민국 모든 아이들이 안쓰럽다. 그렇다고 내 아이가 참을성이 없어서는 아니다. 지나간 시간이 너무 아까워 며칠을 끙끙거리더니 병이 난 모양이다. 지나야만 그때가 필요한 시간이었음을... 어른인 나도 매일매일 후회하는데 이제 스무 해도 살지 않은 아이는 오죽할까. 열심히 살았는데, 최선을 다했는데 왜 그걸 놓쳤을까 후회된다는 아이가 나는 기특하기만 하다. 


'너만 고3이냐 다들 참는데 너도 참아야지 엄살 부리지 마' 따위의 말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이마다 다르고 대학이 인생의 종착지는 아니지 않나. 그것보다 중요하고 소중한 것들이 세상에는 많다. 그 인생의 주인공은 본인이니까 선택도 노력도 결정도 본인에게 달려 있음을.. 그리고 그 인생의 책임 역시도 본인에게 있음을 에둘려 알려 주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현재 행복한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 일도 억지로가 아니라 힘들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 조금만 더 힘을 내야지! 스스로에게 파이팅을 외칠 수 있는 단단한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이가 원하는 걸 다 들어주는 엄마가 아니라 아이가 원하는 걸 스스로 찾고 도움닫기 하기 전 발판 정도는 되어줄 수 있는 엄마가 되어 주고 싶다. 


그렇게 며칠을 게워냈다는 아이는 좋아하는 돼지국밥을 잘도 먹었다. 아이를 기숙사에 데려다 놓고 돌아오는데 괜스레 눈물이 난다. 내년이면 성인인 아이가 아직도 내 눈엔 아가 같아서였을까? 아니면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고민하고 그러다 넘어진 아이를 직접 일으켜주지 못했다는 탓이 들어서였을까? 그날따라 날씨는 얼마나 좋은지. 며칠 내내 비바람이 불었는데 모든 구름이 다 걷힌 맑은 하늘을 보니 내 아이의 미래도 저렇게 될 거라는 믿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기특하게 잘 크고 있다. 내가 여기서 아이의 인생에 참견하는 건 아이를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일임에 분명하다. 인정하고 또 인정하고 들어주고 또 들어주자. 


엑셀과 브레이크를 적당히 밟아야 사고 없는 운전이 가능하다. 누군가는 엑셀을 심하게 또 누군가는 브레이크를 심하게 밟는다. 또 어떤 이는 정속운행으로 천천히 달리기도 한다. 정속운행만이 정답은 아니다. 어디서 어떤 장애물이 나에게 다가올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엑셀과 브레이크를 적당히 조절하는 어른이 되길. 적어도 본인의 선택이 잘못된 결과를 만들지 않는 어른이 되길 바랄 뿐이다. 그건 예방할 수 있는 일이니까. 크고 작은 접촉사고는 있을 수 있다. 룸미러 백미러 좌우 살피며 안전 운전을 하는 것처럼 인생의 조율자로서의 자질도 베스트 드라이버의 그것처럼 만들길 바란다. 


사진출처 © olga_kononenko,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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